대화의 기본은 '말하기'와 '듣기'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듣는 사람이 이를 정확하게 이해했을 때 대화는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하고자 하는 말을 쉽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향한 배려와 애정이 담긴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말만 아니라 상대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함께 전해질 때, 대화는 한결 부드러워지고 관계도 더욱 따뜻해진다.
“몇 시에 와요?” 아내가 전화로 물었을 때, 남편은 “일곱 시에 갈 거야”라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여덟 시에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남편에게 “일곱 시에 온다기에 그 시간에 맞춰 식사를 준비했는데 왜 이렇게 늦었어요?” 하며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자 남편은 자신이 언제 일곱 시에 도착한다고 했느냐며 난색을 지었다. “몇 시에 와요?”라는 물음을, 아내는 집에 도착하는 시각을, 남편은 회사에서 출발하는 시각을 말한 것이었다.
대화의 기본은 ‘말하기’와 ‘듣기’다. 말하는 사람이 메시지를 자신의 의도대로 전달하여 듣는 사람이 이를 정확하게 이해했을 때 대화는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어법이나 발음은 물론 목소리의 크기도 적당하며, 청력과 이해력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통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흔히 발생한다.
소통이 서로 뜻이 통하여 오해가 없음을 의미하듯, 말하는 사람은 동그라미를 뜻하는데 듣는 사람이 세모로 인식한다면 불통이 되고 만다. 그렇게 뜻이 통하지 않고 엉뚱하게 전달되면 사소한 일로도 오해와 갈등이 생길 수 있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불필요한 수고와 시간을 낭비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언어를 구사할 줄 안다는 이유로, 자신은 의사 전달을 분명하게 하노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소통은 단지 말을 전하는 데 있지 않고, 상대가 그 뜻을 알아듣는 데 있다. 하기 쉬운 말이 상대방이 듣기에도 쉬우면 좋으련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입에서 나가는 말, 귀로 들어가는 말
말에는 의도가 있다. 보이지 않는 마음속 의도를 상대에게 전하는 데 필요한 도구가 언어다. 언어가 입 밖으로 나갈 때는 말하는 사람의 지식과 경험, 기대, 가치관 등의 영향을 받는다. 그 언어는 듣는 사람의 청각을 통해 정보화하여 뇌로 전달되는데, 그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듣는 사람의 지식과 경험, 기대, 가치관 등의 영향을 받는다.
한마디로,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 재해석된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말하는 사람이 전하고자 하는 의도와 듣는 사람이 파악한 의도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이로 인해 같은 말을 들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이해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누군가에게 “얼굴이 보름달 같다”고 말하면 ‘얼굴이 환하고 피부가 좋아 보인다’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고, ‘얼굴이 동그랗고 커 보인다’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는 이유다.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또 다른 요소로 ‘허위 합의 효과’를 들 수 있다. 이는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똑같이 생각할 거라고 착각하는 심리 현상을 말한다. 자신의 말이나 생각, 행동이 보편적이라고 여기는 자기중심성이 낳은 오류다. 일방적으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을 기대하는 이런 심리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말처럼 듣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말하면서도 상대방이 제대로 알아듣고 이해하기를 바라게 만든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의중은 본인만 알기에,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는 없는 법. 사람마다 언어를 사용하고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므로, 말한 사람에게서 나간 언어가 반드시 듣는 사람의 귀에 100%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을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렇듯 청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과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리를 이해한다면, 의사소통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 내가 말하고 있다고 믿는 것, 내가 말하는 것, 그대가 듣고 싶어 하는 것, 그대가 듣고 있다고 믿는 것, 그대가 듣는 것, 그대가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 그대가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것, 그대가 이해하는 것, 내 생각과 그대의 이해 사이에 이렇게 열 가지 가능성이 있기에 우리의 의사소통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시도를 해야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상상력 사전』
제대로 알아듣기 전에 제대로 말하기가 먼저
자신은 제대로 말한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거나 말한 의도와 전혀 다른 행동을 취하면 화자는 청자를 이렇게 탓한다. “왜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그러면 청자는 발끈하며 맞받아친다. “똑바로 말해야 알아듣지!”
이렇게 서로 답답해하는 상황에서 좀 더 억울한 쪽은 ‘청자’다. “왜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라는 말에는 ‘내 말에는 아무 문제 없다’, ‘이 정도로 말하면 충분하다’, ‘알아서 이해하라’, ‘이해하지 못하는 건 네 잘못이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고압적인 자세와 일방통행식 대화, 불통의 책임을 떠넘기는 행위는 상대방의 불만을 사고 갈등만 조장할 뿐, 원만한 대화에 이르기 어렵다.
소통을 잘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도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자신의 의도가 듣는 사람에게 어떻게 전달되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고려하여 말한다. 대충 툭 던지듯 말해놓고 상대가 찰떡같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건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다. 듣는 사람도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귀 기울여야 하지만, 먼저는 상대가 오해없이 알아듣게 말해야 한다. 이는 화자의 책임과 의무이기도 하다.
어떤 식으로 말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은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내가 한 말이 의도와 다르게 전달되어 오해와 갈등을 불러왔다면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도록 노력하자. 제대로 말했니, 못 들었니, 하는 소모적인 논쟁은 의미 없다.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거나, 말을 이해 못 한다며 상대를 탓하기 전에 평소 자신의 언어 습관이 어떠한지, 어떻게 하면 듣는 사람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쉽게 말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자. 그런 인식의 변화만으로도 화법에 큰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방이 무슨 말을 들었느냐가 중요하다."
미국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상대방이 알아듣기 쉽게 말하려면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 T. Hall)은 의사소통 이론에서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주로 아시아와 남미 국가가 해당하는 전자의 경우 언어보다는 대화의 전후 사정, 상황과 분위기 등에 의존하는 한편, 미국과 유럽이 해당하는 후자는 의사 표현을 언어 자체에 의존하므로 비교적 직설적이고 정확하게 표현한다. 예를 들면 여러 명이 있는 장소에서 날씨가 더워 에어컨을 틀고 싶을 때, 고맥락 문화권은 “덥지 않아요?”라고 말하지만 저맥락 문화권은 “에어컨 좀 틀어줄 수 있나요?” 하고 말한다.
때에 따라 간접적으로 돌려 말하는 방법이 상대에게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일을 부탁하거나 중요한 내용을 설명할 때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저맥락 문화의 화법을 쓰는 것이 좋다. 구체적인 말은 불필요한 부분까지 속속들이 하는 말과는 다르다. 단순히 말의 양을 늘리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무리 없이 인지할 수 있도록 명확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많다, 넓다, 잘, 진짜, 빨리 등 형용사와 부사 대신 수치로 표현하고, 전문용어, 신조어, 약자, 외래어 대신 누구나 아는 쉬운 단어를 선택하는 식이다.
가족이 함께 외출하기로 했는데 한 사람이 준비가 늦어져 “조금만 기다려”라고 말한 경우, 나머지 가족은 어느 정도 기다리다가 “아직도 안 됐어?” 하고 묻게 된다. 그러면 준비하는 사람은 그 나름대로 “서두르고 있는데 왜 자꾸 재촉하느냐”며 역정 내기 쉽다. 그럴 때 처음부터 “삼십 분 안에 준비할게”라며 예상 준비 시간을 알려주면 나머지 가족도 이를 인지하고 여유 있게 기다릴 마음이 생긴다.
추상적으로 애매모호하게 표현하거나 혹은 상대방이 내 말을 이해 못 하면 물어올 거라는 생각에 대강 말하면, 듣는 이가 말하는 이의 의중을 미루어 짐작해 파악해야 하는 어려움을 떠안게 된다. 나에게는 당연한 내용이라도 상대에게는 생소하거나 어려울지 모른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상대방은 상황에 대한 이해력, 판단력이 높아지고 다시 질문하는 번거로움도 덜게 된다. 결과적으로 갈등과 오해의 소지는 줄어든다.
*추상적인 표현을 구체적으로 바꾸어 말하기
“손님이 많이 왔어.” → “손님이 30명 정도 왔어.”
“엄청 넓어.” → “축구장만 한 크기야.”
“이따 다시 전화할게요.” → “삼십 분 안에 다시 전화할게요.”
“별로 안 비싸요.” → “만 원 이내예요.”
(자녀에게) “예쁘게 앉아.” → “허리를 펴고 똑바로 앉아.”
“거의 다 왔어.” → “십 분 안에 도착할 거야.”
(택시 기사에게) “빨리 좀 가주세요.” → “제가 이십 분 안에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는데, 가능할까요?”
하기 쉬운 말이 듣기에는 어렵고, 듣기 쉬운 말이 하는 데는 어렵다. 대체로 하기 쉬운 말은 화자 중심적이고, 듣기 쉬운 말은 청자 중심적이다. 효과적이고 원만한 대화를 위해서는 청자 중심적인 말하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고자 하는 말이 상대에게 이해하기 쉽게, 제대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표현을 찾는 번거로움과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생각하는 수고로움이 필요한데, 이는 화려한 말의 기술이라기보다는 배려와 애정에 가깝다. 말만 아니라 상대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함께 전해질 때, 대화는 한결 부드러워지고 관계도 더욱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