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타인과 연결되지 못하고 세상에 홀로 떨어진 듯한 고통스럽고 불쾌한 감정이다. 근심과 걱정, 무력감과 짜증, 분노 등 다른 부정적인 감정까지 끌어오고, 무엇보다 행복감을 크게 잠식시키는 요인이기에 결과적으로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외로움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리고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존재 가치를 깨닫는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정에 소속되는 이치는, 외롭지 않은 인생의 기반으로 주어지는 큰 선물이 아닐까.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 ‘척 놀런드’는 비행기 추락 사고로 표류하다 무인도에 홀로 갇힌다.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는 생존법을 터득하며 점차 섬 생활에 적응해간다. 그러나 생존만으로는 삶의 의미가 충족되지 않는 듯 얼굴에 생기가 없다. 그 이유는 바로, 외로움 때문이다.
전 세계가 거대한 무인도라도 된 것일까. ‘척 놀런드’처럼 외로움에 빠진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18년 미국의 카이저가족재단이 진행한 설문에 미국인과 영국인 성인 5명 중 1명은 ‘외롭거나 사회적 고립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2019년 서울연구원이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로는 응답자의 51%가 외로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한 리서치 회사의 분석 결과, 2020년 소비 트렌드 역시 ‘외로움’으로 꼽혔다.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짐에 따라 1인 가구를 겨냥한 마케팅이 활기를 띠는 것. 혼자서 끼니를 때우기 편한 즉석식품 판매량의 증가는 물론, 반려동물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이어서 인공지능 반려 로봇까지 출시될 전망이다. 미국에서는 같이 산책하거나 대화 상대가 되어주는 사업도 시행 중이다.
영국은 외로움을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해 관련 복지 시스템을 담당할 장관을 임명했다. 여타 선진국에서도 외로움을 단지 개인의 불행이 아닌 사회 공동체의 건강을 위협하는 적으로 보고 대책을 강구 중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외롭지 않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그 누구도 외롭지 않은 가정부터 조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외로움은 어디서 오는가?
일상으로 지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안겨주고 자신을 돌아보려면 사람은 어느 정도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시간이 필요 이상 길어지면 외로워진다. 외로움은 타인과 연결되지 못하고 세상에 홀로 떨어진 듯한 고통스럽고 불쾌한 감정이다. 근심과 걱정, 무력감과 짜증, 분노 등 다른 부정적인 감정까지 끌어오고, 무엇보다 행복감을 크게 잠식시키는 요인이기에 결과적으로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환경적으로 고립되면 외로움을 느낄 가능성이 커지지만, 주위에 사람이 많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족이나 친구·동료와의 관계와 건강 상태, 사회적 활동 여부 등이 실질적으로 외로움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 그중에서도 관계의 단절이 가장 큰 요인인데, 특히 가족에게서 소외되면 사회에서 겪는 그 어떤 외로움보다 더하다. 서울연구원의 조사 결과, 가정생활에 만족하는 사람이 외로움을 느낄 확률은 14%에 불과한 데 비해, 가정생활에 만족하지 못할 경우는 47%로 높게 나왔다. 가정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과의 소통 부족’이었다. 가족 구성원 간에 대화의 빈도가 낮고 무관심할 때, 거절, 무시, 불평등, 분노 등이 만연할 때 외로움 체감 비율은 높아진다.
그렇다면 가족을 비롯한 타인과의 감정 교류가 활발하지 않을 때 쓸쓸한 느낌이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관계와 소속에 대한 욕구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호작용을 구하는 인간의 뇌는 다른 사람과 즐겁게 의사소통하며 함께할 때 힘을 얻는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면 타인과의 관계 형성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을 터, 어찌 보면 외로움이 서로 유대감을 갖도록 노력하게 만드는 매개 역할을 한다. 우리 몸에 에너지가 필요할 때 뇌가 음식을 먹으라는 신호를 배고픔으로 보내는 것처럼, 외로움은 우리 뇌가 다른 사람과의 건강한 교류가 필요하다고 보내는 신호와도 같은 것이다.
외로움이 건강을 해친다
외로움은 누구나 때때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이지만 만성이 되면 단순히 정서적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외로움이 진짜로 몸을 아프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공중보건위생국장을 지낸 비벡 H. 머시 박사는, 여러 명 중 한 사람이 소외되는 상황을 연출한 뒤 무리에서 배제당한 피실험자의 뇌를 fMRI로 찍었더니 실제로 신체적 공격을 당할 때와 같은 부위가 활성화되었다는 실험 결과를 그의 저서에 소개했다. 섬유근통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끼면 통증이 더욱 심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건강 심리학(Health Psychology) 저널에 소개되기도 했다.
외로움은 노인의 치매 발생률도 증가시킨다. 미국 플로리다 대학교의 연구진은 50세 이상의 미국인 1만2000여 명을 대상으로 외로움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10년간 분석했다. 연구 기간 중 1104명이 치매에 걸렸는데,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가 낮은 사람의 치매 위험이 40%나 높았다. 성별, 인종, 교육 수준에 상관없이 결과는 같았다. 그 밖에도 외로움은 면역력을 떨어뜨려 병에 취약하게 만든다거나, 심혈관 질환 같은 위험 요소를 불러와 장기적으로 사망률을 높인다는 등 외로움이 뇌와 신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유의미한 연구 결과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외로움으로 인한 질병이 일반적인 신체 질환보다 더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도 경고한다.
1960년대,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이 거주하던 펜실베이니아주 로세토 마을 사람들은 유난히 건강하기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들의 건강 비결은 유전, 식생활, 운동 등 물리적인 데 있지 않고 서로를 가족처럼 믿고 협동하는 유대감에 있었다. 여기서 상호 존중의 공동체 문화가 질병을 줄이고 개인의 건강을 증대시킨다는 뜻의 ‘로세토 효과’가 생겨났다.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좋은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만큼이나 건강한 삶에 필수적이다.
즐거운 대화, 남을 돕는 일이 외로움을 물리친다
시카고대학 뇌신경센터 존 카치오포 박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외로움은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주변 환경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는 데서부터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건강과 행복을 앗아가는 외로움을 어떻게 떨쳐내야 할까. 소외될까 두려워 의미 없는 모임에 나간다거나, 무언가에 중독된다거나, 혹은 타인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등 외로움을 잘못된 방법으로 억지로 해소하면 시간 낭비는 물론 여러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럼 온라인상에서 새롭게 인맥을 형성하는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외로움이 덜할까? IT 기술의 발달은 많은 이들을 온라인상에서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해주었지만, 모순적이게도 현실에서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더욱 유발하고 고립되게 만들었다. SNS상의 감정 없는 대화, 일방적인 보여주기식 게시물로는 진정한 소통에 이를 수 없고, 거기에 의존할수록 대면 의사소통 능력은 떨어진다. 얼마나 많은 사람과 알고 지내느냐보다는, 단 한 사람이라도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영국의 한 연구팀은 연로한 부모를 자주 찾아가면 부모가 치매에 걸릴 확률이 낮아진다고 발표했다. 가족의 사랑만큼 외로움 해소와 건강에 큰 힘이 되는 것도 없다. 가족과 화목하게 지내려 노력하면 가족 외에 다른 사람들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 가족의 말을 잘 듣고 공감해주는 일, 작은 일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궁금해하는 일, 상대방의 장점과 배울 점을 발견하고 이를 칭찬해주는 일, 재미있는 이야기로 웃음을 터트리는 일 등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이 들게 하는 상호작용이다. 사랑과 감사, 응원의 말을 자주 전하는 것도 유대감을 높이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가족과 즐거운 감정을 함께하는 경험 속에서 외로움은 자연히 해소된다.
사람은 누군가를 돕거나 보살필 때 성취감을 느끼며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으로 만족감을 얻는다. 소소하게나마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친절을 베풀면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만족감은 외로움을 물리치는 확실한 예방책이다. 그러나 타인과의 친밀감을 원하는 만큼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않으면 외로워질 수 있으니, 타인의 자율을 존중하고 적정한 거리 유지에 주의해야 한다.
서두에 말한 영화 속에서, 무인도에 갇힌 주인공은 외로움을 털어내고자 배구공에 이름을 붙여주고 마치 사람을 대하듯 말을 건다. 그와 같이 고립에서 벗어나려면 함께 이야기할 대상이 필요하다. 외로움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리고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존재 가치를 깨닫는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정에 소속되어 보살핌을 받고 훗날에는 가족을 보살피는 위치에 서는 이치는, 외롭지 않은 인생의 기반으로 주어지는 큰 선물이 아닐까.
소중한 아내, 남편, 부모, 자녀가 혹여라도 외롭지는 않은지 관심을 가지고 먼저 손을 내밀어보자.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자. 가족을 외롭지 않게 하는 일은, 곧 나 자신을 외롭지 않게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