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

집의 진정한 가치는 건물이 아닌 그 안에 사는 가족에게 달려 있다. 좋은 집은 가족의 행복으로 지은 집이다.
집은 단순히 건축물이라는 물리적 의미를 넘어 삶을 담는 그릇이자,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한 공간이다.

집에서 따뜻한 위로와 힘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플 때 같이 아파하고 기쁠 때 같이 기뻐해주는 가족이 함께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리에서, 어머니는 어머니의 자리에서, 또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각자가 가정에 충실하며 서로 이해하고 아껴주는 시간 속에, 집은 그 어느 곳보다 따뜻하고 행복한 공간으로 완성되어 간다.

가족의 사랑과 희생과 배려와 양보로 지어진 집은 그 어떤 강풍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을 튼튼한 집이 된다.
까치는 집 짓기 선수다. 나뭇가지를 촘촘하게 엮어 만든 둥지는 웬만한 비바람에도 끄떡없다. 비버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운 집 짓기 대장이다. 하천을 통나무로 막아 댐을 만들고 하천 가운데 나무와 돌, 흙으로 섬 같은 집을 짓는다. 벌도 빼놓을 수 없다. 육각형의 벌집은 최소한의 재료로 최고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구조다.

이밖에도 여러 동물이 집을 짓는다. 집 짓는 데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도 만만치 않다. 그렇게 공들여 집을 짓는 이유는 자신을 보호하고 새끼를 낳아 기르기 위해서다. 한마디로 집 짓기는 생존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선택이다.

사람도 집을 짓는다.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로 의(衣)·식(食)·주(住)를 꼽듯, 먹는 것 입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집이다. 우리는 집에서 먹고 쉬고 양육하고 잠을 자며 일상적인 생활을 이어나간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생기를 잃어 금세 낡고 허물어진다. 집은 사람이 살아야 집이고, 사람은 집을 필요로 한다. 외부의 위험과 기상 조건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주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집. 집과 사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집(House)과 집(Home)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 꽃피고 새 우는 집 내 집뿐이리 / 오! 사랑 나의 집 / 즐거운 나의 벗 내 집뿐이리’

미국의 극작가 존 하워드 페인(1791~1852)이 작사한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이다. 어디를 가도 내 집보다 좋은 곳이 없다고 노래한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떠돌이로 살았다. 그에게 집은 꿈이었다. 그가 그토록 꿈꾸고 원했던 집은 과연 어떤 집이었을까?

집은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을 의미하기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집안’을 뜻하기도 한다. 영어로도 집은 하우스(House)와 홈(Home)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우스가 건물·장소로서의 집을 뜻한다면 홈은 가족이 있는 가정·안식처로서의 집을 뜻한다.

언제부터인가 집을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여기거나 남에게 보이기 위해 짓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부의 상징이 돼버린 지는 오래다. 집이 개인의 소유물 중 가장 비싼 데다 인테리어 비용, 집 안에 들이는 가구나 가전제품 등을 구입하는 데도 많은 지출이 따르는 탓에, 비용과 노력을 투자한 만큼 집 자체에 가치를 두기도 한다.

하지만 집의 진정한 가치는 ‘하우스’ 보다 ‘홈’에 있다. 집이라는 건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거나 인생의 전부라 여기면 집을 잃는 순간 인생도 함께 잃을 수 있다. 집은 단순히 건축물이라는 물리적 의미를 넘어 삶을 담는 그릇이자,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한 공간이다. 밥 먹고 잠자는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집이 필요한 이유는 가족과 함께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



집은 가족이 있는 곳


한국전쟁에 징집된 형과 동생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첫 전투를 치른 동생이 형에게 말한다.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어. 이따 눈뜨면 우리 집 안방이고, 난 아침 먹으면서 형한테 얘기할 거야. 정말 진짜 같은 이상한 꿈 꿨다고.” 형은 그런 동생을 위해 기습작전에 나선다. 작전에 성공해 훈장을 받으면 동생을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극구 말리는 동생에게 형은 “형 안 죽어, 인마. 너 살려서 집에 보내야지”라며 안심시킨다.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형제는 집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한다. 부푼 설렘을 안고 여행을 떠나도 시간이 지나면 집이 그리운 법인데 전쟁터라면 오죽할까. 총칼을 들고 싸우는 건 아니지만 치열한 경쟁사회는 또 다른 전쟁터다. 현대인들은 우열과 승부를 가르는 학교와 일터에서 날마다 타인 혹은 자신과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른다.

그런 세상에서 집은 어머니 품처럼 따스한 안식처이자 피난처다. 하루 일과가 고달프다 해도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얼마나 가벼운가. 집에서 얻는 휴식과 위로는 다음 날 또다시 삶의 터전으로 뛰어들게 하는 힘이 된다. 세상에 집보다 강력한 에너지 충전소는 없다. 그런데 건물 자체에 그런 능력이 있는 것일까?

영화 속 전쟁터에서 형과 어렵사리 재회한 동생은, 정신이 나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형을 보며 절규한다. “형, 엄마한테 가야 될 거 아냐!” 형제가 그토록 집을 갈망한 이유는 그곳에 만나야 할 가족이 있기 때문이었다.

집은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 그리고 아내와 남편, 아이들이 있는 곳이다. 집에서 따뜻한 위로와 힘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플 때 같이 아파하고 기쁠 때 같이 기뻐해주는 가족이 함께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200평 호화로운 집을 공개해 뭇 사람의 부러움을 산 어느 방송인은, 어릴 적 가난했던 탓에 좋은 집에 사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었다. 아니, 이룬 줄 알았다. 그는 “막상 살아보니 이 집은 껍데기일 뿐”이라고 했다. “집은 사랑하는 가족으로 채워야 완성된다”고. 진정한 의미의 집은 가족이 있는 곳이다. 몽골 유목민이 거주하는 게르(Ger)처럼, 가족이 함께라면 천막도 집이 될 수 있다.



집, 짓다


누구나 한 번쯤은 살고 싶은 집을 상상하곤 한다. 아늑한 다락방이 있는 집, 아이가 뛰놀 수 있는 마당이 딸린 집, 혹은 전망이 멋진 집 등 자신만의 집을 짓고 싶은 소망이 있다. 이렇듯 ‘짓고 싶은 집’ 하면 대개 집의 외형이나 위치, 집을 만드는 재료 등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글을 짓다, 밥을 짓다, 농사를 짓다, 옷을 짓다’와 같이 집도 ‘만든다’ 하지 않고 ‘짓는다’고 표현한다. 무언가를 짓는 일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건과 달리 땀과 정성이 들어간다. 그런데 집이라는 건물을 짓는 일에만 정성을 쏟을 것이 아니라 진정 공들여 짓고 또 가꾸어야 할 집은 ‘홈’이다. 바로,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일이다.

좋은 집의 조건이 평수나 전망, 재료, 위치 등에 있다면 그러한 조건을 다 갖춘 집에 사는 사람은 행복해야 한다. 그러나 고급 빌라에 산다고 행복하거나 작은 옥탑방에 산다고 불행하지는 않다. ‘좋은 집이란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지어지는) 것이어야 한다’는 조이스 메이너드(미국 작가)의 말처럼, 가족의 행복으로 짓는 집이 ‘좋은 집’이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리에서, 어머니는 어머니의 자리에서, 또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각자가 가정에 충실하며 서로 이해하고 아껴주는 시간 속에, 집은 그 어느 곳보다 따뜻하고 행복한 공간으로 완성되어 간다. 가족의 사랑과 희생과 배려와 양보로 지어진 집은 그 어떤 강풍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을 튼튼한 집이 된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호 워런 버핏은 1958년부터 60년 동안 같은 집에 살고 있다. 더 좋은 곳으로 이사하지 않고 왜 오래된 집에 사느냐는 질문에 그가 말했다. “나는 이 집에서 충분히 행복하다. 내가 다른 곳으로 가서 더 행복하다고 생각했으면 당연히 이사를 했을 것이다.”

얼마든지 새 집을 살 수 있지만 그가 집에 부여한 가치는 부의 상징이 아닌 행복이다. 행복이 삶의 목적이고, 집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보금자리다. 그 안에 사는 사람이 행복하다면 비가 새고 외풍이 있는 집도 결코 초라하지 않다.



집은 사람의 인격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사람은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을 만든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집은 한 개인을 완성하는 바탕이다. 결국, 좋은 집이란 가족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집, 좋은 사람을 길러 내는 집이다.

그 속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며 평안과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힘으로 세상에 씩씩하게 걸어 나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면 집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혜택을 누리는 것이다. 그런 곳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집, ‘즐거운 나의 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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