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마련하느라, 아이들 학비를 대느라, 정작 자신은 바깥으로 내몰려 때로는 가정에서 소외받고 상처받을 때도 있지만, 우리 아버지들이 거친 세상에서 싸울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곳, 무거운 짐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위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가정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가족의 온기가 있다면 아버지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자녀가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마음, 감사한 마음, 죄송한 마음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할 때, 아버지는 잠시나마 세상의 시름을 잊는다. 아버지라는 그 이름의 무게는 뒤로 하고서.
외국으로 유학 간 아들이 엄마와는 자주 연락하면서 아버지하고는 통 연락을 못 한 것 같아 하루는 아버지에게 안부를 물으려 집에 전화를 걸었다. 마침 전화를 받은 아버지에게 아들이 반가운 목소리로, “아버지, 잘 지내셨어요?” 하자 아버지가 말했다. “응, 그래. 엄마 바꿔줄게.” 그래서 아들이 “아니에요, 오늘은 아버지 목소리 들으려고 전화했어요” 했더니 아버지가 하는 말, “왜, 돈 떨어졌니?”
우스개 이야기이지만 여느 집에서 있을 법한 일이다. 그나마 예전에는 집에 걸려온 자녀의 전화를 아내에게 건네주며 교환수로나마 자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휴대폰이 생기고부터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게 되었다. 실제 2016년 어느 방송국에서 10~40대 67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 ‘아버지와 어느 정도 연락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46%가 ‘잘 안 한다’라고 답했다. 또, 같은 해 전국 청소년 5,554명에게 ‘평소 고민이나 걱정거리를 의논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물었을 때, ‘아버지’라고 답한 사람은 고작 5%에 불과했다.
굳이 설문 조사 결과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가정에서 아버지들이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땀 흘린 흔적으로 기세등등하게 월급봉투를 가족 앞에 내보이던 아버지의 모습은 월급이 계좌로 이체되면서사라진 지 오래, “집에 들어가면 가족들이 아는 척이라도 하고, 부르면 대답이라도 좀 해주면 좋겠다”고 하소연하는 아버지들이 적지 않다.
집안의 가장(家長), 아버지
아버지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를 낳아 준 남자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로, 남자를 한자로 하면 ‘男’이다. 즉, ‘밭[田]에서 힘써[力]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아버지 ‘부(父)’ 자 역시 손에 돌도끼를 잡고 일하는 모습을 상형한 글자다.
어느 시대든 아버지는 밖에서 힘써 일하고 싸우는 사람이었다. 원시 시대 아버지들의 숙명이 용맹한 전사였다면 농경 사회에서는 소처럼 일하는 농부였고, 산업화 시대의 아버지는 공장에서 청춘을 보내는 기술자였다. 지식 산업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 아버지는 마치 전쟁터 같은 사회 속에서 날마다 사투를 벌이는 전사로, 때로는 우직한 소처럼 일만 하다 과로에 시달리는 가련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가장이 아버지를 지칭하는 말은 아니지만 한 집안의 어른이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역할은 주로 아버지의 몫이다. 18세 이상 성인남녀 1,613명 중 남성의 85%가 ‘나보다 가족이 우선’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한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성인 남성이라면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라는 이름을 얻기 전까지는 몰랐어요. 혹시나 우리 가족 굶기면 어떡하나.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우리 가족 옷은 누가 사 주고, 대출이자는 어떻게 갚고, 누가 우리 가족을 지켜주나. 아버지가 되니 이런 걱정들이 끝도 없이 머릿속을 맴돌더라고요. 항상 불안하고 걱정되고. 아버지라는 이름이 이렇게 무거운지 이제야 깨닫고 있네요.’
어느 가장의 고백에 백배 공감할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 아버지는 힘겹고 아니꼬운 세상일지라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 세상에 날마다 자신을 들이미는 이름이다.
가족이 있어 일어서는 아버지
젊은 아빠들에게 역기를 들어보라는 주문을 하고 바벨의 무게를 점점 더해갔다. 그리고 각자 한계치에 이르는 무게를 측정했다. 더 이상의 무게는 들 수 없다고 선언했을 때, 어딘가에 숨어 있던 가족들이 등장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믿음과 응원을 보내자, 그에 힘입은 아빠들은 한계치가 넘는 무게를 번쩍 들어올렸다(외국의 한 은행 광고 中).
고급 아파트에서 외제차를 굴리며 골프를 즐기던 한 자산가가, 운영하던 회사의 부도로 거리에 나앉게 되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외면했지만 그의 가족은 똘똘 뭉쳤다. 아내는 패물을 팔아 살림에 보탰고, 두 아들은 미국 유학을 포기했다. 이후, 어렵게 빌린 돈으로 식당을 운영하며 한 달에 한 번씩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족이 있으면 망해도 망한 게 아니죠.”
1997년 한국에 불어닥친 IMF 경제위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장의 갑작스러운 실직과 부도 등으로 뭇 가정에 위기가 찾아온 그 시절, 가족의 위로는 그 어느 때보다 빛났다. 당시 정리해고를 당한 한 실직자는 가족의 격려에 처진 어깨를 펴며 “아무리 길고 긴 어두운 터널이라도 아내와 딸, 어머니가 함께해준다면 곧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아버지들은 말한다. 가족의 응원을 받으면 없던 힘도 솟아난다고. 60kg 장비를 메고 수심 30~40m의 바다에 몸을 던지는 머구리(잠수를 전문으로 물질하는 남자), 양쪽 팔을 잃고도 하루에 백 개가 넘는 물품을 배달하는 택배 기사, 하루도 몸이 성할 날이 없는 격투기 선수… 아무리 고달픈 삶이라도 가족이 있기에 꿋꿋이 견딘다는 이들을 보면 아버지가 사는 이유는 가족이다.
집을 마련하느라, 아이들 학비를 대느라, 정작 자신은 바깥으로 내몰려 때로는 가정에서 소외받고 상처받을 때도 있지만, 우리 아버지들이 거친 세상에서 싸울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곳, 무거운 짐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위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가정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가족의 온기가 있다면 아버지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아버지의 자리
흔히들 아버지를 ‘슈퍼맨’으로 비유한다. 강철처럼 강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슈퍼맨. 그러나 아버지는 사실 초능력을 가진 슈퍼맨이 아니라 마음 약한 사람이다. “힘들다”, “괴롭다”는 말을 가족들에게 쉬 내뱉지 않을 뿐, 아버지에게도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
“아빠, 사랑해요.” “당신이 있어 든든해요.” 가족의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미소는 아버지 어깨에 놓인 무거운 짐을 한순간에 날려 보낸다. 딱히 할 말은 없어도 가족이 옆에 앉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아버지는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열심히 일하는 것에는 능숙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것에는 서투른 아버지들에게 가족은 곧 행복이자 힘이다.
인성 교육·가정 교육의 표본이라는 유대인 가정에는 식탁이나 소파에 아버지만이 앉을 수 있는 아버지의 자리가 있다. 아버지가 집을 비우더라도 아버지는 그 자리로 존재감을 나타낸다. 탈무드에는 ‘아버지가 다른 사람과 논쟁할 때 상대방 편을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유대인 가정에서 아버지는 집안의 절대적인 존재요, 가족은 아버지의 권위를 존중한다.
아이가 어리면 집은 온통 놀이방이 되고, 자녀가 자라면 공부하는 자녀 눈치 보느라 거실 소파에서도 편히 쉴 수 없는 아버지들에게, 유대인 가정처럼 작지만 아버지의 전용 공간이나 자리를 마련해주면 어떨까. 실질적인 아버지의 자리뿐 아니라 실은 보이지 않는 자리가 더욱 중요하다. 보이지 않는 자리란 권위를 말한다.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가족과 원만한 유대관계를 갖기 어렵지만 ‘권위적인 것’과 ‘권위’는 다른 것, 아버지를 위한 권위는 반드시 필요하다.
자녀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어도 한편으로는 권위가 떨어질 것을 염려하는 아버지들이 많다.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권위를 세워주는 것은 아내의 역할이다. 자녀가 아버지 머리맡을 넘어 다니고, 바쁘다고 아버지보다 자녀가 먼저 수저를 뜨는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세워질 리 만무하다. 아내는 남편을, 자녀는 아버지를 존중하고, 아버지는 가족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줄 때 가정은 질서가 잡히고 안정된다.
2018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날, 한 아버지가 수험생 아들을 시험장에 내려주고 막 회사로 향하는 길이었다. “아빠, 지금 다시 와줄 수 있어요?” 전화를 건 아들이 이유는 말하지 않고 다짜고짜 와달라고만 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차를 돌렸다. 다시 시험장에 도착하자 아들은 아버지의 차 앞으로 오더니 넙죽 큰절을 올렸다. 아버지께 감사의 마음을 담은 깜짝 이벤트였다.
차량 블랙박스에 찍힌 아들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아들 인성은 이미 합격’, ‘아버지가 자식 키운 보람 제대로 느꼈을 듯’ 하고 댓글을 남기며 아낌없는 칭찬을 보냈다. 등록금을 지원하겠다는 후원자까지 등장했다는 후문이다.
자녀가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마음, 감사한 마음, 죄송한 마음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할 때, 아버지는 잠시나마 세상의 시름을 잊는다. “아빠!” 하고 달려오는 아이의 모습에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듯이, 아버지는 자식 앞에서 무덤덤한 것 같아도 사실은 작은 것에 감동하고, 기뻐하고, 행복을 느낀다. 아버지라는 그 이름의 무게는 뒤로 하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