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등성이 아래 자리한 작은 마을은 겨울 내내 흰 눈으로 뒤덮이곤 합니다. 높다란 산마루도, 삐죽 솟은 지붕도,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도 새하얀 눈옷을 입고 겨울을 나지요.
요나스는 눈이 가득 쌓인 마당을 신나게 달렸습니다. 뽀득뽀득 소리와 함께 요나스의 발자국이 이리저리 찍혔습니다.
“요나스, 기다려!”
뒤따라 나온 형 레아프가 요나스의 목에 목도리를 둘러주었습니다.
“힝, 목도리 하면 갑갑해.”
“엄마가 꼭 하라고 했어. 우리는 감기 걸리면 안 된다고.”
감기에 걸린 엄마는 일하러 가는 아빠를 배웅하고 형제의 아침을 차려준 뒤, 몸이 으슬으슬하다며 침실로 들어갔습니다. 레아프는 엄마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요나스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요나스의 몸에 찬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레아프가 점퍼를 단단히 여미어 주고 있을 때였습니다.
퍽! 레아프의 발 앞에 눈뭉치가 날아와 부서졌습니다. 친구 고버가 해죽해죽 웃으며 마당으로 들어서면서 또다시 눈뭉치를 던졌습니다. 가까스로 눈뭉치를 피한 레아프가 말했습니다.
“결투 신청이라면 기꺼이 받아주지.”
레아프가 눈을 뭉치는 시늉을 하자 고버가 달아났습니다. 그 길로 셋은 온 동네를 쏘다녔습니다. 눈 쌓인 들판에서 뒹굴기도 하고, 언덕에 올라 썰매도 탔습니다.
“이번엔 눈사람 만들자. 우리 키보다 더 크게 만드는 거야!”
고버는 눈을 긁어모아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레아프와 요나스도 힘을 합쳐 눈덩이를 굴렸지요. 몸통에 머리를 올려 눈사람 형태를 만든 셋은 나뭇가지로 팔을 만들고, 눈코와 입을 붙여 얼굴도 완성했습니다. 팔짱을 낀 채 눈사람을 훑어보던 고버가 말했습니다.
“좀 아쉬운데…. 눈사람을 꾸며야겠어. 너희 집이 가까우니까 가서 물건을 가져오자!”
“대신 조용히 해야 해. 엄마가 쉬고 계시거든.”
집으로 달려온 셋은 가져갈 것이 없나 두리번거렸습니다.
“형, 내 야구 모자 어때?”
“좋아, 그럼 난 장갑 가져갈래. 구멍 나서 어차피 버려야 하거든.”
“장갑을 낀다면 목도리도 해야지.”
고버가 소파에 놓인 목도리를 집어 들었습니다. 레아프가 말했습니다.
“그건 안 돼! 엄마 거야.”
“잠깐 쓰고 가져올 건데 뭘.”
고버는 천연덕스럽게 목도리를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셋은 각자 챙긴 소품으로 눈사람을 꾸몄습니다. 한결 생기가 도는 눈사람의 모습에 셋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습니다.
휘우우!
강한 바람에 쌓여 있던 눈이 흩날리자 셋은 팔로 얼굴을 감쌌습니다. 바람이 지나가고 눈사람을 본 레아프는 깜짝 놀랐습니다. 야구 모자는 저만치 굴러가 있고 목도리는 아예 보이지 않았거든요.
“형, 저기 봐!”

레아프는 요나스가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바람을 타고 날아간 목도리가 나뭇가지에 아슬아슬 걸려있었습니다. 목도리는 이내 아래로 떨어지면서 지나가던 떠돌이 개를 덮쳤습니다. 놀란 개는 펄쩍 뛰며 목도리를 사정없이 물어뜯었습니다.
“안 돼!”
레아프와 요나스는 한달음에 달려가 개를 내쫓았습니다. 하지만 목도리는 이미 찢어진 후였습니다. 둘은 그만 할 말을 잃었습니다. 뒤따라온 고버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 겸연쩍은 투로 말했습니다.
“엄마가 오늘은 빨리 들어오라고 해서, 난 이만 갈게!”
고버는 줄행랑쳤습니다. 레아프는 널부러져 있는 목도리를 천천히 주워 들었습니다.
“아빠가 엄마 생일 선물로 준 건데….”
“어쩌지? 엄마가 슬퍼하실 거야.”
요나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습니다. 요나스를 달래며 곰곰이 고민하던 레아프가 눈을 반짝였습니다.
“새 목도리를 사 드리자!”
“하지만 돈이 없잖아.”
“벌면 되지.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요나스를 데리고 집으로 간 레아프는 나무 상자에 자신의 물건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팽이, 동화책, 피규어, 야구공…. 모두 레아프가 아끼는 물건들이었습니다.
“이것들을 팔면 목도리를 살 수 있을 거야.”
“그럼 내 물건도 팔래.”
“그러지 않아도 충분해.”
“나도 형이랑 똑같이 할 거야.”
요나스는 장난감 자동차, 공룡 인형, 끼고 있던 귀마개를 상자에 넣었습니다.
둘은 상자를 들고 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에서 막상 물건을 팔려고 하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레아프는 침을 꿀떡 삼켰습니다. 요나스도 긴장한 얼굴로 레아프의 옷소매를 꼭 쥐었습니다. 레아프가 두리번거리다 한 남자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저기, 이 물건 사실래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이에요.”
남자는 레아프를 흘깃 내려다보고는 무심히 지나쳤습니다. 레아프는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다시 용기를 내어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에게 다가갔습니다. 물건을 권하자 노인은 형제를 번갈아 보더니 혀를 끌끌 찼습니다.
“쯧쯧, 어린 나이에 장사치처럼 굴면 못 써.”
물건이 금방 팔릴 줄 알았던 레아프는 뜻하지 않게 꾸중을 듣자 풀이 죽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기도 두려워졌습니다. 그때 요나스가 레아프의 소매를 잡아당겼습니다.
“형, 상점에 가면 어떨까? 자주 가는 상점에 가면 사줄지도 몰라.”
“좋은 생각이야!”
레아프와 요나스는 엄마 심부름하러 자주 가는 정육점으로 내달렸습니다.
“안녕, 오늘도 늘 사던 고기로 줄까?”
“오늘은 물건을 팔러 왔어요. 한번 보세요. 아이들이 좋아할 거예요.”
“녀석들, 용돈이 궁한가 보구나.”
“저희가 엄마 목도리를 망가뜨려서 새로 사려고요….”
“그런 이유라면 도와줘야지.”
나무 상자에서 공룡 인형을 고른 아저씨가 레아프의 손에 동전을 쥐여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정육점을 나온 레아프는 동전을 주머니에 소중히 넣었습니다. 들뜬 요나스가 말했습니다.
“성공! 이제 어디 가지?”
“빵집에 가보자.”
인자한 빵집 아주머니도 사연을 듣더니 흔쾌히 물건을 사주었습니다. 용기를 얻은 레아프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습니다. 요나스도 주먹을 쥐어 레아프의 주먹에 마주 부딪쳤습니다. 둘은 책방, 야채 가게, 문구점 등 한 번이라도 가본 상점이라면 빼놓지 않고 들렀습니다. 개중에는 물건을 사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형제가 기대했던 만큼 팔지는 못했습니다.
해는 뉘엿뉘엿 저물고, 상점들도 하나둘 문을 닫았습니다. 활기차던 시장은 어느새 적막이 맴돌았습니다.
“형, 나 힘들어.”
요나스의 코끝은 빨갛게 얼었고, 팔다리는 오들오들 떨렸습니다. 레아프는 요나스를 벤치에 앉히고 가진 돈을 세어보았습니다. 목도리를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습니다. 레아프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요나스, 이제 그만 집에 가자. 엄마한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용서해 주실 거야.”
요나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 하늘에서 또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형제는 눈발을 헤치며 종종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집 앞에 이르렀을 때, 엄마 아빠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몸도 안 좋은 사람이…. 내가 얼른 찾아 올게요.”
“아니에요. 저도 같이 가요.”
형제는 막 집을 나서는 엄마 아빠와 마주쳤습니다. 엄마 아빠는 안도하며 아이들을 집으로 들였습니다. 둘은 쭈뼛쭈뼛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빠는 벽난로 앞에 아이들을 앉힌 뒤 담요를 둘러주었고, 엄마는 주방에서 따뜻한 우유를 내왔습니다.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어디 있다 온 거야?”
“죄송해요. 사실은 엄마 목도리를 망가뜨렸어요. 그래서 새 목도리를 사려고 시장에 물건을 팔러 갔었어요.”
“너희가 아끼는 것들을 팔려고 했어?”
“네.”
“그랬구나…. 하지만 엄마는 목도리가 없어도 된단다.”
“엄마가 아끼던 거였잖아요.”
요나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아빠가 얼굴에 미소를 띠며 형제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녀석들, 엄마 목도리는 아빠가 사 줄게.”
“정말요?”
레아프와 요나스가 동시에 외쳤습니다.
“엄마에게 가장 소중한 건 너희들이야. 아유, 밖에서 얼마나 추웠니.”
엄마가 레아프와 요나스를 힘껏 안았습니다. 엄마 품에 안긴 형제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걸렸습니다. 요나스가 나지막이 속삭였습니다.
“저도 우리 가족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해요.”
소복소복 함박눈이 쌓여가는 겨울밤, 네 식구의 집에서 새어 나오는 잔잔한 불빛이 어둠을 밝혔습니다.

아! 목도리는 다음 날 고버의 엄마가 고버를 데리고 와서 사과하고는 새것으로 선물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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