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그러운 풀 내음 가득한 숲속에 다양한 수목이 어우러져 살고 있습니다. 산속 동물들은 나무 그늘에서 쉬기도 하고, 열매를 주워 가기도 하지요.
소나무 솔비, 참나무 참이, 어린 느티나무 누리가 숲의 비탈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아야! 뭐야?”
솔비가 뿌리에 닿는 딱딱한 느낌에 깜짝 놀라 가지를 움츠렸습니다.
“미안해요, 누나. 제가 뿌리를 뻗다가 실수로 부딪혔어요.”
누리가 가지를 흔들며 사과했습니다.
“여긴 이미 내가 뿌리 내린 자리야. 닿지 않게 조심해 줘.”
한창 자랄 때인 어린나무 누리는 뿌리를 내리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흙 속에 있는 영양분과 물을 부지런히 흡수하고, 큰 나무들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 가지를 뻗기도 하지요.

솔비가 한껏 기지개를 켜면서 크게 호흡할 때였습니다. 솔비의 시야가 갑자기 어두워졌습니다.
“야, 그늘지잖아.”
“아이코, 햇빛을 따라가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만….”
“나도 햇살을 받아야 하니 좀 비켜주겠어?”
누리는 솔비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재빨리 가지를 다른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솔비는 가지에 앉은 뻐꾸기에게 볼멘소리로 구시렁댔습니다.
“누리가 이파리로 햇빛을 가리질 않나, 뿌리 내린 자리를 침범하지 않나, 여간 성가신 게 아냐. 영양소와 물은 왜 그리 많이 먹는지, 참.”
“누리는 성장기잖아. 너도 그렇게 자라서 지금의 모습이 된 거 아니겠어?”
뻐꾸기가 날개로 솔비의 가지를 토닥였습니다.
먹이를 구하러 다니는 다람쥐들 소리에 참이가 잠에서 깼습니다. 뿌리를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켜려는데 뭔가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누리구나. 뿌리가 벌써 여기까지 왔네.”
“네,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열심히 뿌리를 내리려고요. 저도 형처럼 멋진 나무가 되고 싶거든요!”
“기특한걸. 뿌리를 넓고 고르게 내릴수록 튼튼한 나무가 될 수 있단다. 힘내렴.”

여름이 되자 햇볕이 더욱 뜨겁게 내리쬐었습니다. 땅은 점점 말라갔고, 나무들도 지쳐갔습니다.
“솔비야, 괜찮아? 힘들어 보여.”
솔잎을 축 늘어트린 솔비에게 참이가 물었습니다.
“너무 더워. 갈증도 나고.”
“누리는 어때?”
“저도 목말라요….”
“그러게, 비가 내려주면 좋을 텐데. 다들 조금만 견뎌봐.”
토도독. 토도독.
며칠 후, 나뭇잎에 물방울이 떨어지더니 이내 비가 쏟아졌습니다.
“와, 비다! 드디어 비가 와!”
나무들은 시원한 빗줄기에 환호하며 기뻐했습니다.
참이가 누리에게 말했습니다.
“누리야, 너무 많은 물을 한꺼번에 흡수하면 뿌리가 부을 수 있으니 조심하렴.”
“네, 알겠어요!”
열심히 물을 빨아들이는 누리를 견제하듯 솔비가 말했어요.
“이쪽은 내 차지니까 다른 쪽 물을 흡수하는 게 좋을 거야.”
“네. 조심할게요, 솔비 누나.”
비는 숲을 촉촉이 적시고 나서도 잦아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지요. 점차 땅 사이사이로 물길이 나더니 지반이 물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르르 쾅!
급기야 하늘에는 천둥번개까지 쳤습니다.
“얘들아, 이러다가 토사에 휩쓸려 갈 것 같아. 다 같이 서로의 뿌리를 잡고 위험에 대비하자!”
참이가 소리쳤습니다.
솔비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누리의 뿌리를 붙잡으라고? 하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쓸려가겠어….’
그때 누리가 다급히 말했습니다.
“솔비 누나, 제 뿌리를 잡으세요!”
누리가 솔비의 뿌리를 단단히 감아 붙잡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위쪽에서 토사가 마구 쏟아졌습니다. 솔비는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솔비야, 정신 차려.”
“누나, 눈 좀 떠봐요.”
솔비가 깨어났을 때, 어느새 비는 그치고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비치고 있었습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네가 정신을 잃어서 누리가 널 붙잡느라고 얼마나 고생한 줄 아니?”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누나.”
나무들은 서로 뿌리를 붙잡은 덕분에 토사에 쓸려가지 않았습니다. 솔비는 그간 누리를 성가시게 여겼던 것이 미안했습니다.
“누리야, 날 구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그동안 툴툴거려서 미안해.”
“아니에요. 저도 누나를 붙잡은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는걸요. 그러니 서로 도와준 셈이죠.”
솔비와 누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참이가 장난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언제 그렇게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된 거야?”
솔비와 누리는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어디선가 날아온 뻐꾸기가 나무 사이를 오가며 노래를 부르고, 다람쥐들은 신나게 나무를 타며 술래잡기를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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