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딸랑-.
문에 달린 작은 종이 빗소리에 묻혀 가늘게 소리를 냈습니다. 계산을 마친 나은이 카페를 나가려다 말고 다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고는 발을 뗐다 붙였다 하며 전공 서적을 만지작거렸습니다. 카페 안은 갓 내린 커피 향과 포근한 조명으로 아늑했지만, 문밖에는 갑자기 쏟아지는 빗줄기로 질퍽해진 바닥 위에 습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학생, 혹시 이 지붕이 필요한가요?”
나은이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니 머리칼과 수염이 하얗게 센 카페 주인이 노란 우산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이거 쓰고 가요. 우리 손자가 나비 그림을 그려놓긴 했는데, 쓰는 데는 지장 없다오.”
“감사합니다만, 제가 이 동네에 안 살아서 바로 돌려드리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괜찮아요. 누군가 이 지붕으로 비를 피할 수 있다면 제 몫을 다한 거랍니다.”
카페 주인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은에게 우산을 건넸습니다.
나은이 머뭇거리다 우산을 받아 펼치자, 우산에 그려진 나비도 날개를 활짝 폈습니다. 빗방울이 우산 위에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탭댄스를 추기 시작했습니다.

#2
나은의 운동화에 빗물이 스며들 때 쯤, 빗줄기 사이로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걸어가는 한 할머니가 보였습니다. 나은이 할머니에게 다가가 우산을 기울이며 살갑게 물었습니다.
“어르신, 어디까지 가세요? 제가 우산 씌워드릴게요.”
“산책 나온 김에 슈퍼에 좀 들르려고 하는데 갑자기 비가 오네.”
“그럼 슈퍼까지 같이 가요.”
“아이고, 이렇게 고마울 수가!”
할머니의 보폭에 맞춰 느릿하게 걷는 나은의 시야에 익숙한 뒷모습이 들어왔습니다.
“어, 수지야!”
이름의 주인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나은이? 네가 여긴 웬일이야?”
“근처에 일이 있어서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야. 나 지하철역까지만 데려다줄 수 있어?”
“물론이지!”
“어르신, 이 우산 쓰고 가세요. 저는 친구랑 같이 가면 돼요.”
“그럴 것 없어요. 난 어차피 비를 맞았는걸, 뭐.”
“아니에요. 저도 어떤 분께 이 우산을 받았거든요. 어르신이 쓰시면 우산 주인이 더 뿌듯해할 거예요.”
“아이고, 고맙네.”
나은이 할머니 손에 우산을 건네고는 친구의 우산 아래로 몸을 옮겼습니다.

#3
할머니가 슈퍼마켓에 도착해 우산을 탁탁 털어 접으려던 때였습니다. 한 아이가 처마 밑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얘야, 여기서 왜 그러고 있니?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 게냐?”
“네, 학원에 가야 하는데 우산이 없어서요….”
“저런, 이 우산을 쓰고 가렴.”
“그럼 할머니는요?”
“나는 슈퍼에서 하나 사면 된단다. 장을 보고 나올 즈음이면 비가 그쳐 있을지도 모르지.”
할머니가 노란 우산을 활짝 펴서 아이의 손에 쥐여주자, 아이가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할머니!”
“빗길에 넘어지지 말고 조심해서 가거라.”

#4
도윤이 버스 좌석에 앉아 창문에 머리를 기대자, 눈꺼풀이 하염없이 내려왔습니다. 깊은 잠에 빠질 무렵, 자켓 안주머니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도윤을 깨웠습니다.
“도윤 씨, 제가 내일까지 요청했던 자료 있잖아요. 그게 급하게 필요해서, 정말 미안한데 지금 메일로 보내줄 수 있어요?”
“아, 지금이요?”
도윤은 잠이 확 달아났습니다. 창밖으로 위치를 확인한 도윤은 하차 벨을 눌렀습니다.
“네, 최대한 빨리 보내드리겠습니다.”
창밖에는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도윤은 가방을 뒤지다 이내 한숨을 지었습니다.
‘아침에 우산을 챙긴다는 걸 깜박했네.’
몸을 한껏 웅크린 채 버스에서 내린 도윤은 재빨리 정류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난감한 표정으로 옷에 묻은 빗물을 터는 그때, 노란 우산이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우산 옆에는 삐뚤빼뚤 아이의 글씨가 적힌 메모지가 붙어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비 오면 누구든 이 우산을 쓰고 가세요!’
도윤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습니다. 노란 우산을 펼쳐 든 도윤은 성큼성큼 빗속을 뚫고 어느 작은 카페로 들어갔습니다.

#5
파일을 전송한 도윤이 노트북을 닫았습니다. 비는 잦아들고 카페에는 잔잔한 음악 소리가 맴돌았습니다. 소파 깊숙이 피곤한 몸을 누인 채 천천히 커피잔을 비운 도윤은 가방을 챙겨 카페를 나섰습니다. 그러고는 우산꽂이에서 우산을 꺼내려다 멈칫하더니 도로 집어넣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다시 만나길 바라.’
마지막 손님이 자리를 뜨자, 나이 든 주인은 느릿느릿 카페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에 걸린 팻말을 ‘Close’로 돌린 뒤, 컵을 씻고, 테이블을 닦고, 바닥을 청소했지요. 마지막으로 문밖에 있던 우산꽂이를 안으로 들였습니다. 그런데 낯익은 우산이 보였습니다. 얼마 전 손님에게 준 노란 우산이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여기 있지?’
그때, 카페 주인의 아내가 마감을 돕기 위해 가게로 들어섰습니다.
“과일청을 만드느라 늦었어요. 벌써 정리 다 했어요?”
“응, 여보. 있잖아, 신기한 일이 있는데 말이야….”
아내는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남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습니다. 두 사람의 눈동자에 행복이 맺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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