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와 소년

#1 수영 대회

‘탕!’

출발 신호가 울리자, 선호는 물속으로 힘껏 뛰어들었습니다. 선호는 이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장 수영장으로 달려가 연습에 몰두했던 기억들이 물살과 함께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습니다. 선호는 레일을 따라 있는 힘을 다해 팔을 저었습니다. 그동안 그려온 우승이 코앞에 다가온 듯했습니다.

그런데 레이스를 끝낸 선호가 터치패드에 손을 뻗을 때였습니다. 누군가의 손이 선호의 손보다 먼저 닿았습니다.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민기였습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전광판을 바라보는 선호의 얼굴이 어두워졌습니다. 이번 대회에서는 꼭 우승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기에 실망도 컸습니다. 몸에 수건을 두르는 선호에게 민기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습니다.

“너 정말 빠르더라. 다음에 또 같이 해보자.”

선호는 악수할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민기의 손을 뒤로하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런 선호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정정당당히 승리한 민기를 차갑게 대하는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선호는 복잡한 마음을 떨쳐버리려는 듯 젖은 머리칼을 거칠게 털었습니다.



#2 점프

그 시각, 푸른빛이 감도는 바다에서 어린 돌고래들이 술래잡기를 하며 신나게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나 잡아봐라!”

장난기 가득한 돌고래들은 아슬아슬 술래를 피해 도망쳤습니다. 술래가 된 돌고래는 친구들의 꽁무니를 부지런히 쫓았습니다. 돌고래들이 물살을 가르며 지나간 자리에 하얀 기포가 흩뿌려졌습니다. 흥이 오른 돌고래들은 하나둘 수면으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자, 이번엔 누가 더 높이 뛰나 해보자!”

날쌘 돌고래 한 마리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공중에서 곡선을 그리며 다시 입수했습니다. ‘풍덩’ 하는 소리에 갈매기들이 놀라 쳐다보았습니다. 다른 돌고래들도 차례로 바다 위를 뛰어올랐습니다. 그렇게 점프하는 돌고래 무리에서 한 마리가 슬그머니 빠져나와 산호초 사이로 들어갔습니다. 루루였습니다.

루루는 힘을 다해 꼬리지느러미를 휘저으며 점프를 시도해 보았지만, 몸이 생각처럼 가볍게 솟구치지 않았습니다. 물 밖으로 겨우 고개만 내밀 뿐 힘없이 가라앉기 일쑤였지요.

‘나는 왜 다른 친구들처럼 높이 점프할 수 없는 걸까?’

루루는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3 바다로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초록색에서 파란색으로 변했습니다.

“우아, 바다다!”

선호의 동생 진아가 소리쳤습니다. 말없이 창밖만 응시하는 선호를 백미러로 슬쩍슬쩍 살피던 아빠도 들뜬 목소리로 거들었습니다. 선호의 부모님은 수영 대회 이후 말수가 부쩍 줄어든 선호가 걱정되었습니다. 선호의 마음이 나아질 방법을 고민하다 가족 여행을 계획했지요.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온 곳은 바다, 그것도 돌고래가 서식하는 바다였습니다.

선호는 걸음마를 뗄 무렵부터 돌고래 인형을 끼고 살 만큼 돌고래를 좋아했습니다. 수영장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 계기도, 자유롭게 물살을 가르는 돌고래를 닮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에서였습니다. 부모님은 선호가 드넓은 바다를 헤엄치는 돌고래를 보면 다시 힘을 낼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돌고래 서식지라 해도 돌고래를 볼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습니다. 지난번에도 선호에게 야생 돌고래를 보여주기 위해 바다로 떠난 적이 있지만, 그땐 돌고래를 보지 못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선호의 부모님은 이번에는 반드시 돌고래가 나타나주길 기대했습니다.



#4 뛰어오르다

“루루, 같이 가자. 너도 분명 좋아할 거야.”

“너희들끼리 놀아. 난 좀 쉬고 싶어.”

점프를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감을 잃은 루루는 산호초 사이를 배회했습니다. 혼자 있으면 외롭기는 하지만 친구들과 비교할 필요 없으니 그걸로 위로를 삼았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친구들은 루루를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이날만큼은 같이 놀겠다고 작정한 듯 루루를 끝까지 졸랐습니다.

루루는 친구들의 재촉에 못 이겨 따라나섰습니다. 친구들이 놀러 가자고 한 곳은 관광객이 탄 배가 오가는 연안이었습니다. 배가 지나가면서 만들어내는 파도는 돌고래들에게 흥미로운 놀잇감이었습니다. 그 물결에 몸을 싣고 파도타기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안에 이른 돌고래들은 배가 있는 쪽으로 헤엄쳐 갔습니다. 친구들과 노래를 주고받으며 장난치다 보니 어느새 기분이 좋아진 루루는 지느러미를 바짝 세우고 더욱 속력을 냈습니다. 배가 만들어내는 포말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어 파도타기를 한 뒤, 배의 옆면으로 질러가서는 배와 나란히 경주를 벌였습니다.

수면 위 지느러미로 느껴지는 바람에 마음이 설렜습니다. 루루는 꼬리지느러미를 힘껏 흔들며 물 위로 뛰어올랐습니다. 몸이 그 어느 때보다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수면 밖으로 붕 솟아오른 몸은 공중에 완전히 떴습니다. 그때, 배에 있는 한 소년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5 만남

“우와-아!”

선호는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수족관 아닌 자연의 돌고래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중력을 거스르며 바다 위로 떠오른 돌고래의 힘찬 몸짓에 선호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돌고래의 매끄러운 등에 햇살이 반사되어 빛났습니다.

선호의 가슴 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울컥 치밀었습니다. 자신을 패배자로 몰아간 실망감, 민기를 냉대한 부끄러움, 좌절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 시간들이, 돌고래가 만들어낸 눈부신 물보라 속으로 씻겨 내려가는 듯했습니다. 선호는 두 손을 입가에 모으고 배가 떠나가라 소리쳤습니다.

“돌고래야, 정말 멋져. 고마워!”

루루는 얼떨떨했습니다. 점프에 성공한 것도, 소년에게 받은 환희의 눈빛과 환호성에도.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뛰고 자신감이 불끈 생겼습니다. 루루는 다시 한번 점프를 시도했습니다. 실력을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년에게 뭔가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 점프는 처음만큼 높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소년은 기뻐하며 환호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큰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루루는 시원한 물살을 가르며 소년이 탄 배를 크게 돌았습니다.



#6 각자의 물속에서

점심시간, 선호는 민기의 반을 찾아갔습니다. 뒷문을 기웃거리다 민기를 발견한 선호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민기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러고는 손을 내밀며 용기 내어 말했습니다.

“지난번에 우승 축하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민기는 웃으며 사과를 받아주었습니다. 머쓱해하던 선호도 따라 웃었습니다.

선호는 가족과 함께 바다에 갔던 날, 점프하는 돌고래를 눈에 생생히 담으며 생각했습니다. 기록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레일을 따라 힘껏 나아가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최선을 다한 자신에게 실망을 거둘 수 있었고, 민기를 축하해 줄 마음의 여유도 생겼습니다.

푸른 바닷속 루루는 더 이상 산호초 사이에 숨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비교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돌고래보다 부족한 부분이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친구들과 드넓은 바다를 자유로이 헤엄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즐겁고 소중한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 선호와 루루는 각자의 물속에서 웃음을 찾았습니다. 그 둘의 힘찬 헤엄에, 부서지는 하얀 물보라가 보석처럼 빛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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