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우아, 물고기다!”
리오는 어항을 보자마자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었습니다. 작고 동그란 어항 속에는 주홍빛 열대어 두 마리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리오, 생일 선물이야. 네가 원했으니 한번 잘 키워봐.”
아빠가 리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물고기 밥을 줄 생각에 한껏 부푼 리오는 어항 놓을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렸습니다. 리오의 눈에 서랍장 위를 차지하고 있는 코코가 들어왔습니다. 코코는 리오가 세 살 때부터 품에 안고 자던 곰인형이었습니다. 리오의 친구가 되어 주는 동안 여기저기 손때가 묻어 꼬질꼬질해졌고, 왼쪽 귀퉁이는 찢어져 솜이 삐죽 튀어나왔습니다. 리오가 학교에 입학한 뒤로 코코를 찾는 손길이 점점 뜸해지더니 언젠가부터 거의 방치되어 왔습니다.
리오는 코코를 바닥으로 밀어낸 뒤 그 자리에 어항을 놓았습니다. 문가에 선 엄마가 물었습니다.
“그럼 코코는 어디에 두려고?”
“이제 필요없으니 버릴 거야.”
“코코는 네가 많이 아끼던 거잖아.”
“인형 같은 건 아기들이나 가지고 노는 거지. 난 이제 다 컸는걸.”
리오는 과일을 사러 가는 엄마를 따라나서며 코코의 한쪽 팔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길가 의류 수거함 옆에 코코를 앉혀 놓았습니다. 어두운 철통 속에 갇히는 것보단 푸른 하늘을 보는 게 코코에게도 나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코코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배려라면 배려였습니다. 리오는 코코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어, 코코. 안녕.”
#2
며칠 뒤, 학교에서 돌아오던 리오는 어느 집 앞에서 우뚝 멈춰 섰습니다. 울타리 너머로 익숙한 형체의 곰인형 하나가 빨랫줄에 걸린 채 쏟아지는 햇볕을 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 코코…?’
리오는 가방끈을 꼭 쥐고서 울타리에 바짝 붙어 눈을 가늘게 떴습니다. 발그레한 볼, 약간 삐뚤어진 코, 그리고 무엇보다 찢어졌던 왼쪽 귀와 똑같은 위치에 있는 바느질 흔적까지. 틀림없는 코코였습니다. 때가 타서 회색빛이던 코코는 마치 새 옷을 입은 듯 새하얗고 뽀송뽀송했습니다. 싱그러운 비누 향기가 바람을 타고 솔솔 번졌지요.
깨끗이 세탁되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코코를 보자, 리오의 마음속에서 진한 아쉬움이 몽글몽글 피어올랐습니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엠마 할머니가 나왔습니다.
“엠마 할머니, 저 곰돌이 인형 제 거예요. 돌려주세요.”
할머니는 리오가 있는 울타리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오호라, 네 것이었다고? 하지만 저 가여운 곰돌이 인형은 버려져 있었는걸?”
“그, 그건 버린 게 아니라… 잠시 바람 쐬라고 놔둔 거였어요! 제가 코코라고 이름도 지어준걸요?”
얼굴이 빨개진 리오는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인형을 집으로 데려와 깨끗이 빨고 귀까지 손봐주었으니, 이제 내 것이나 다름없지.”
리오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습니다. 할머니는 리오와의 대화가 재밌다는 듯 눈가를 찡긋했습니다.
“물건에 책임을 지려면 노력이 필요한 법이란다. 네가 이 인형을 되찾을 자격이 있는지 증명해 보겠니?”
리오는 한참 머리를 굴리더니 말했습니다.
“그럼 이렇게 해요! 제가 일주일 동안 매일 한 시간씩 심부름을 해드릴게요. 어때요?”
할머니는 하얀 눈썹을 들썩이며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웃으며 말했습니다.
“좋다, 계약 성립이다.”
#3

이튿날부터 리오의 ‘코코 되찾기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리오는 하교 종이 울리자마자 책가방을 들썩거리며 엠마 할머니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첫날 임무는 마당에 떨어진 나뭇잎을 쓸어 담는 일이었습니다. 리오는 자기 키만 한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요리조리 쓸었습니다. 포대에 나뭇잎을 담은 리오가 숨을 크게 내쉬며 문턱에 앉자, 할머니가 시원한 우유 한 잔을 건넸습니다.
“수고했다, 리오. 비질 솜씨가 제법이구나.”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음 날, 리오의 임무는 다양해졌습니다. 화분에 물을 주고, 할머니의 돋보기를 찾아 건네거나 선반 위의 먼지를 닦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리오가 한창 심부름 중일 때였습니다. 울타리 너머로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가 나더니 대문이 열렸습니다.

“엠마 할머니, 저희 왔어요!”
“아이고, 우리 예쁜 레이첼이랑 조이, 토비 왔구나. 밥은 먹었니?”
사실 엠마 할머니 집은 동네 꼬마들이 제집처럼 드나드는 아지트였습니다. 인정 많은 엠마 할머니는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을 품어주었고, 아이들이 오면 언제든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리오가 마당에서 토마토를 따는 동안, 할머니는 부엌에서 고소하고 달콤한 애플파이를 구워 가지고 나왔습니다.
“자, 우리 강아지들, 맛있게 먹으렴. 오늘의 이야기를 들려주마.”
아이들은 파이를 한입 가득 베어 물고 엠마 할머니 앞에 모여 앉았습니다. 할머니는 커다란 그림책을 펼쳐 들고 사자와 토끼 흉내를 번갈아 내며 동화를 읽었습니다.
리오는 토마토를 따는 척하면서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할머니의 동물 흉내에 까르르 웃음보를 터트리는 아이들을 따라 이야기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4
다음 날, 여느 때와 같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엠마 할머니의 동화를 듣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습니다. 리오는 할머니를 도와 아이들이 마당 테이블에 남겨둔 쿠키 접시와 컵들을 부엌 싱크대로 날랐습니다.
그때 토비가 할머니의 바느질 방에서 코코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 모습을 본 리오가 부리나케 달려갔습니다.
“안 돼! 토비, 이건 내 거야. 손대지 마!”
리오는 토비의 손에서 코코를 냉큼 빼앗았습니다. 갑작스러운 호통에 놀란 토비는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습니다. 엠마 할머니가 토비를 안아 달래며 리오를 향해 나직하게 말했습니다.
“리오, 착한 형은 어린 동생을 울리지 않는단다.”
리오는 입술을 삐죽이며 딴청을 부렸습니다. 아이들을 대문까지 배웅한 엠마 할머니가 뾰로통한 리오에게 다가왔습니다.
“리오, 토비는 사랑이 고픈 아이야.”
“그래도 제 인형을 함부로 만지는 건 싫단 말이에요.”
엠마 할머니는 말을 멈추고 가만히 리오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5
“엄마 아빠, 다녀왔습니다!”
“임무 잘 완수하고 왔니?”
“네! 이제 코코를 되찾을 날도 이틀밖에 안 남았어요.”
“벌써 그렇게 됐구나. 오늘은 어떤 심부름을 했는지 궁금한걸?”
“창문도 닦고, 우편함에서 편지도 가져다드리고, 할머니가 빵 반죽 만드는 것도 도와드렸어요!”
“리오가 할머니의 조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네. 아주 기특해.”
엄마의 칭찬에 리오가 신이 나서 말했습니다.
“또 샐리랑 토비가 숨바꼭질하자고 조르는 바람에 진짜 바빴어요, 휴.”
“동생들이랑 놀아주기까지 하다니, 대단한걸?”
“헤헤, 귀찮긴 해도 동생들이 재미있게 노는 걸 보니까 뿌듯했어요.”
엄마와 아빠는 서로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6
마침내 일주일이 지나 약속한 날이 되었습니다.
“임무를 멋지게 완수했구나, 리오. 약속을 지킨 너의 성실함에 박수를 보낸다. 자, 이제 코코를 돌려주마.”
리오는 코코를 품에 꼭 안았습니다. 코코의 부드러운 털이 리오의 볼을 간질였습니다. 그런데 코코를 되찾았다는 기쁨에 가슴이 뭉클하면서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돌아서던 토비의 얼굴이 자꾸만 아른거렸습니다. 리오는 뭔가 결심한 듯 눈을 반짝이며 엠마 할머니에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이 인형 가지고 계시다가 토비가 놀러 오면 꼭 전해주세요.”
엠마 할머니는 동그래진 눈으로 리오를 바라보다 이내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날 빈손으로 집에 돌아온 리오를 보고 엄마가 물었습니다.
“리오, 오늘이 엠마 할머니와 약속한 마지막 날 아니야? 코코는 어딨니?”
“할머니께 토비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정말? 어떻게 토비에게 줄 생각을 했어?”
“저보다 토비가 코코를 더 아껴줄 것 같아서요.”
“리오가 일주일 동안 엠마 할머니 댁에서 심부름만 한 게 아니라 마음도 자랐구나.”
“비록 코코 되찾기 작전은 실패했지만요.”
“실패라니? 이보다 더 멋지게 성공할 수는 없을걸? 그야말로 대성공이지!”
리오는 엄마가 내민 한쪽 손에 자신의 손을 맞대며 활짝 웃었습니다.
창문으로 따스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어항 속 열대어들이 꼬리를 살랑이며 신나게 헤엄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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