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이 갈라지는 소리를 감지한 후치는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후치의 발이 닿은 곳에 미세한 금이 갔습니다. 후치의 짧은 깃털은 곤두섰고, 심장은 쿵쾅댔습니다.
‘휴, 십년감수했네.’
후치는 금이 더 벌어지지 않도록 살금살금 걸었습니다. 그때 바닷새가 날아와 후치의 어깨를 툭 쳤습니다. 심장이 채 진정되기도 전에 거듭 놀란 후치가 소리를 빽 질렀습니다.
“깜짝이야!”
바닷새는 후치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 능청스럽게 말했습니다.
“하하, 인사 좀 한 걸 가지고 뭘 그렇게 놀라?”
“인사를 꼭 그렇게 해야겠어? 땅이 갈라지는 판에!”
“빙판이 갈라지는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뭘.”
“이래서 문제라니까. 그게 바로 안전불감증이라고.”
“안전… 뭐?”
“안, 전, 불, 감, 증! 위험한 일이 계속 일어나는데도 ‘괜찮겠지’ 하고 넘기는 거. 지금 지구온난화 때문에 빙산도 녹고 빙판도 점점 얇아지고 있는 거 몰라?”
“후치, 넌 겁이 너무 많아.”
“겁이 많은 게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거지.”
후치는 바닷새에게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습니다. 후치의 말을 끊으려고 기회를 노리던 바닷새는 다른 바닷새가 보이자 얼른 알은체하며 자리를 떴습니다.
#2
아델리펭귄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빙판 끝에 옹기종기 모였습니다. 먹이를 사냥할 시간이 된 것입니다. 눈앞에는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바람은 잠잠했고, 물결도 부드럽게 일렁였습니다.
하지만 펭귄들에게는 결코 평화로운 바다가 아니었습니다.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바다표범들이 고요한 물속에 숨어 펭귄이 바다에 뛰어들기만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펭귄들은 섣불리 뛰어들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살폈습니다. 괜히 옆에 있는 펭귄의 어깨를 털어주거나 하늘을 올려다보며 딴청을 피우기도 했습니다. 빙판 끄트머리에 서있던 펭귄들은 뒤로 한 걸음씩 슬쩍 물러났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서성이던 때였습니다.
“비켜봐.”
무리를 뚫고 빙판 끝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는 펭귄이 있었습니다. 타루였습니다. 타루는 이미 여러 차례 첫 번째로 뛰어들기를 자처했습니다.
“역시 타루야.”
“오늘도 첫 번째네.”
“정말 용감해!”
바다 앞에 선 타루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몸을 던졌습니다.
풍덩!
커다란 물보라가 일었습니다. 그제야 다른 펭귄들도 하나둘 바다에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3
며칠 후, 먹이를 사냥할 시간이 되자 펭귄들은 또다시 빙판 끝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펭귄들 사이에서는 눈치작전이 벌어졌습니다. 다들 머뭇거리기만 할 뿐, 누구 하나 먼저 발을 떼지 못했습니다.
‘이 정도 위치가 딱 좋아. 첫 순서도 피하고, 물고기도 빨리 잡을 수 있으니.’
후치는 자신 앞에 서너 마리의 펭귄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습니다. 그런데 후치 앞에 있던 펭귄이 슬금슬금 물러서더니 뒤쪽으로 갔습니다. 동시에 뒤에 있는 무리가 움직이면서 후치는 어쩔 수 없이 앞쪽으로 한걸음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또다시 한 마리가 몸을 뒤로 뺐습니다. 후치는 빙판 끝에 더 가까워졌습니다. 뒤로 물러서기 바쁜 펭귄들 틈에서 옴짝달싹 못 하던 후치는 어느새 벼랑 끝에 서 있었습니다. 이제 한 발짝만 내디디면 바다에 빠질 판이었습니다.
“밀지 마. 뒤로 가라고!”
“나도 밀고 싶어서 미는 게 아니야.”
후치가 뒤돌아보며 소리를 빽 지르자, 뒤에 선 펭귄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발아래 일렁이는 검푸른 물결에 후치의 심장이 마구 뛰었습니다. 후치가 선두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조심스레 뒤돌아서던 순간이었습니다. 펭귄 무리의 뒤편에 있는 거대한 빙산에서 콰르릉 소리를 내며 얼음덩어리가 떨어졌습니다. 굉음에 놀란 펭귄들이 앞으로 고꾸라졌고, 그 여파가 앞줄까지 전해져 후치를 바다로 밀어냈습니다. 빙판 끝을 아슬아슬하게 디디고 있던 후치의 발이 허공에 붕 떴습니다.
“으아아아!”
#4
얼음장 같은 바닷물이 후치의 깃털 사이를 파고들었습니다. 잇따라 뛰어든 펭귄들은 제각기 빠르게 흩어졌습니다. 얼떨결에 바다에 빠져 당황했지만, 어쨌든 꼬르륵거리는 배를 채워야 했습니다. 후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먹잇감을 찾아 나섰습니다.
물속을 유영하던 후치가 크릴새우 무리를 발견할 때였습니다. 등 뒤에서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뒤돌아보니 두 개의 섬뜩한 눈빛이 후치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눈빛은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바다표범이었습니다!
후치는 있는 힘껏 날개를 저으며 지그재그로 물을 갈랐습니다. 바다표범의 헤엄 실력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바다표범은 후치의 꽁무니를 바짝 추격해 왔습니다. 한참 쫓기던 후치의 눈앞에 커다란 빙붕이 나타났습니다. 후치는 빙붕에 난 작은 통로를 발견하고는 그 안으로 쏙 들어가 반대편으로 빠져나갔습니다. 따라 들어가려던 바다표범은 통로 입구에서 몸이 끼이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바다표범을 겨우 따돌린 후치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휴, 살았다.’
긴장이 풀리자 심한 허기를 느낀 후치는 작은 물고기들을 닥치는 대로 물어 삼켰습니다. 후치는 배를 든든히 채우고 느긋하게 물 위로 올라갔습니다. 빙판 위에는 이미 사냥을 마친 펭귄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습니다. 그중 한 마리가 외쳤습니다.
“오늘 첫 번째로 뛰어든 후치다!”
그러자 펭귄들이 우르르 후치에게 다가가 한마디씩 건넸습니다.
“네가 그렇게 용기 있는 줄 몰랐어.”
“겁쟁이인 줄 알았는데, 달리 보이는걸?”
“타이밍도 정말 좋았어.”
후치가 어리둥절해하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 아니 ….”
“첫 번째 펭귄에 새로 등극한 후치에게 박수를 보냅시다!”
사방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후치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눈만 껌뻑였습니다.
#5
지평선에 걸린 태양이 얼음 대지를 황금빛으로 물들였습니다. 가는 곳마다 용기 있다는 말을 들어서 내심 민망했던 후치는, 다른 펭귄들의 눈을 피해 우뚝 솟은 얼음 바위 뒤편으로 갔습니다. 살벌한 추격전이 펼쳐졌던 바다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잔잔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났습니다. 용감하다고 소문난 타루였습니다. 후치를 발견한 타루는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어? 아무도 없을 줄 알고 왔는데.”
“타루? 여긴 어쩐 일이야?”
“가끔 찾는 곳이야. 옆에 있어도 돼?”
“물론이지.”
둘은 나란히 빙판 끝에 앉았습니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노을이 번지는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후치가 침묵을 깨고 물었습니다.
“타루, 넌 바다가 무섭지 않아?”
“무섭지.”
“그런데 어떻게 매번 제일 먼저 뛰어드는 거야?”
“사실은 말이야 … 나, 눈이 많이 나빠.”
“앞이 잘 안 보인다고?”
“응, 시야가 흐릿해. 물속에 들어가면 바다표범도 잘 안 보여서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무조건 빨리 도망쳐. 어차피 잘 안 보이니까 바다에 먼저 뛰어드는 건데, 졸지에 용감한 펭귄이 되고 말았지 뭐야.”
후치는 타루에게 이런 속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특별히 용기를 타고난 펭귄이라고 생각했지요.
“오늘은 후치 네가 첫 번째의 주인공이잖아.”
타루의 말에 후치가 피식 웃으며 말했습니다.
“사실 … 스스로 뛰어든 게 아니었어. 빙산 무너지는 소리에 다들 놀라서 소란스러웠잖아, 그때 하필 벼랑 끝에 있다가 무리에 떠밀려서 바다에 떨어진 거였지.”
후치와 타루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웃었습니다.
“우리 둘 다 용감한 펭귄은 아니네.”
“아무렴 어때? 그래도 용기 있는 행동은 했잖아.”
그날 이후로도 후치는 여전히 바다가 무섭고, 빙판이 갈라지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그래도 사냥할 시간이 되면 뚜벅뚜벅 빙판 끝으로 걸어가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비록 겁이 나도 용기 있는 행동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