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롱이의 도토리

“출석 체크를 하자꾸나. 1번, 다롱이?”
“네!”
“2번, 뽀미?”
“네, 선생님.”
“그래, 다 왔구나.”

사시사철 바람이 많이 분다고 해서 ‘바람숲’이라 불리는 숲속, 어느 커다란 도토리나무 아래 다람쥐 세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어요. 이곳은 다람쥐 학교랍니다. 학생이라고는 다롱이와 뽀미가 전부이지만요. 작년 이맘때 숲에 큰불이 나서 많은 다람쥐가 북쪽 숲으로 이사했거든요. 친구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던 다롱이도 아빠 엄마께 이사하자고 졸랐지만, 무슨 영문인지 아빠 엄마는 이곳에 남기를 택했어요. 뽀미네도 마찬가지고요.

나이 지긋한 루루 선생님은 바람숲에 남은 두 학생, 다롱이와 뽀미를 무척 아꼈습니다. 수업 때마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하시지요. 요즘은 열매를 비축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치고 있답니다.

“자, 그럼 어제 주운 도토리 개수를 이야기해볼까? 다롱이는 몇 개를 주웠니?”
“열네 개요!”

루루 선생님의 질문에 다롱이가 뿌듯한 표정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뽀미는 옆에서 짝짝 손뼉을 쳐주었습니다.

“수고 많았다. 뽀미는?”
“저는 열한 개를 주웠어요.”

루루 선생님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다들 열심히 했구나. 주운 열매는 너희만 아는 장소에 구석구석 잘 숨겨뒀겠지? 오늘은 그 열매들을 찾으러 가보자.”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다롱이와 뽀미의 표정이 어두워집니다. 맛있는 도토리를 찾으러 가는데 갑자기 왜 그러냐고요?

다람쥐들은 온종일 넓은 숲을 샅샅이 살피며 찾은 열매를 여기저기에 꼭꼭 숨겨둡니다. 많은 열매를 집에 다 보관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러고 나서 양식이 떨어지면 숨겨둔 열매를 찾으러 가는데, 문제는 다롱이와 뽀미에게 심각한 건망증이 있다는 겁니다. 돌아서면 숨겨둔 장소를 새카맣게 잊고 마니, 되찾아오는 열매는 늘 절반밖에 되지 않지요.

다롱이와 뽀미의 표정을 읽은 루루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자자, 너무 우울해하지 않아도 된단다. 일단 생각나는 곳으로 가보자꾸나.”
“어…. 까치 아주머니네 둥지가 있는 미루나무 밑이요.”


세 다람쥐는 뽀미가 말한 장소로 총총 달려갔습니다. 미루나무 밑에는 낙엽이 푹신하게 깔려 있었습니다. 뽀미는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헤치며 열심히 도토리를 찾았지만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 이상하다. 분명 여기 숨겼는데….”
“그새 멧돼지가 먹은 거 아닐까?”

결국 둘은 미루나무 밑에서 도토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혹시 다른 장소에 숨긴 것이 아니냐는 루루 선생님의 질문에, 다롱이와 뽀미는 머리를 맞대고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그렇게 온종일 숨겨둔 도토리를 찾으러 돌아다녔지만 되찾은 것이라곤 모두 합해 열 알뿐이었습니다.

뽀미가 다롱이에게 시무룩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우리가 어제 숨겨둔 열매들이 얼마나 되지?”
“음… 스물몇 개는 될걸.”
“세상에, 절반도 못 찾았잖아!”

기껏 도토리를 숨겨놓고도 장소가 기억나지 않아 찾지 못하니, 다람쥐로서 기본이 안 돼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다롱이와 뽀미의 한숨 소리를 들은 루루 선생님은 둘을 다독였습니다.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다. 바람숲의 미래인 두 다람쥐가 이렇게 풀이 죽으면 선생님 마음이 좋지 않아요.”

둘은 선생님을 바라봤습니다.

“얘들아. 선생님은 이 숲에 너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단다. 수업 마쳤으니 조심히 가렴!”

루루 선생님은 둘을 배웅하며 다정하게 말했습니다. 다롱이와 뽀미는 선생님께 꾸벅 인사하고 터덜터덜 각자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어깨가 축 처져서 집에 돌아온 다롱이를 보고, 엄마가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습니다.

“다롱아, 무슨 일 있니?”

엄마는 고개를 숙여 다롱이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그러고는 장난스럽게 옆구리를 치며 무슨 일인지 말해보라고 했지요. 다롱이는 입을 삐죽 내밀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엄마, 우리도 이사 가면 안 돼요? 까치 아주머니가 그러는데, 친구들이 간 북쪽 숲에는 밤나무가 정말 많대요.”

꼬리털을 다듬던 아빠가 다롱이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루루 선생님은 다롱이가 나무 타는 실력이 부쩍 늘어 도토리를 잘 딴다고 하시던데, 이제 밤나무에도 진출하려고?”
“아니요, 그건 아니고요…. 실은 제가 자꾸 도토리를 잃어버려요. 숨겨둔 장소가 도무지 생각나질 않아요. 아무리 기억하려고 해도 자꾸 까먹어요. 다 불타서 열매 나무도 얼마 없는데….”

잠자코 다롱이의 말을 듣던 아빠 엄마가 서로를 보며 빙긋 웃었습니다. 아빠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다롱아, 엄청난 비밀을 하나 알려줄까?”

다롱이의 눈이 호기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엄마가 소곤소곤 말했습니다.

“실은 우리도 너처럼 건망증이 있단다. 루루 선생님도 그렇고!”
“진짜요? 그럼 저는 엄마 아빠, 아니 루루 선생님을 닮은 거예요?”

힘없이 늘어졌던 다롱이의 꼬리가 바짝 올라갔습니다. 아빠는 허허 웃으며 건망증이 다람쥐의 숙명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다람쥐가 건망증이 있어서, 부지런히 열매를 숨겨도 다 찾지 못한다고요. 그래도 겨우내 먹을 만큼은 반드시 찾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잃어버린 열매들이 언젠가 싹을 틔워 또 다른 나무가 된다는 거야. 그리고 훗날 우리 후손들에게 풍성한 도토리를 안겨주지.”

엄마가 다롱이를 포근히 안으며 덧붙였습니다. 다롱이는 산불로 황폐해진 숲에 도토리나무와 밤나무가 쑥쑥 자라나는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숲이 울창해지면 북쪽 숲으로 간 다람쥐들이 마음 놓고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겠지? 그 일을 위해 우리가 이곳을 떠나지 않는 거란다.”

아빠는 그게 루루 선생님의 부탁이기도 하다고 말했습니다. 다롱이는 도토리를 못 찾아서 실망한 자신과 뽀미를 위로해주던 루루 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자신과 뽀미가 바람숲의 미래라고 하셨는데, 그런 뜻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너희가 있어 든든하다고 한 말도 빈말이 아니었나 봅니다.

다롱이의 두 눈이, 밤하늘 바람숲을 비추는 별처럼 초롱초롱 빛났습니다. 그날, 다롱이는 울창한 도토리나무 숲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며 도토리를 모으는 꿈을 꾸었답니다.

“자, 출석을 확인하자꾸나. 오늘은 뒤 번호부터. 2번, 뽀미?”
“네!”
“1번, 다롱이?”
“네! 선생님, 오늘은 무슨 수업이에요?”

어제는 그렇게 시무룩하더니, 아침부터 다롱이의 기분이 무척 좋아 보입니다. 루루 선생님은 재미있다는 듯 다롱이를 보며 물었습니다.

“다롱이가 하고 싶은 게 있나 보구나. 어떤 수업을 하면 좋을까?”

다롱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도토리 숨기기요!”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뽀미 얼굴이 파랗게 변했습니다. 숨기면 나중에 또 찾으러 가야 하니까요.

“저 이제 진짜 열심히 할 거예요! 밤이랑 도토리랑 잔뜩 숨겨서, 나무를 많이 많이 심을 거예요.”

다롱이의 힘찬 다짐을 들은 뽀미가 의아한 표정으로 두 눈을 끔뻑거립니다. 루루 선생님은 다 안다는 듯이 허허 웃었습니다.

“뽀미야, 내가 멋진 비밀을 알게 됐어. 너한테도 알려줄게!”

도토리를 모으러 가는 길, 다롱이가 키득거리며 뽀미의 귀에 무어라 속삭입니다. 그러자 걸음에 맞춰 살랑거리던 뽀미의 꼬리가 쭈뼛해집니다.

“정말? 우리가 못 찾은 도토리가 나무가 된다고?”

뽀미가 되묻자, 다롱이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둘의 눈이 마주치더니, 약속이나 한 듯 도토리나무로 뛰어오릅니다. 때마침 다롱이와 뽀미를 응원하듯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Go Top
정말 삭제하시겠습니까? 복구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