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황제펭귄 펠루

아침부터 빙하 광장이 떠들썩합니다. 오늘은 두루 칭찬받을 만한 선행을 한 펭귄에게 주어지는 ‘올해의 펭귄상’ 시상식이 있는 날입니다. 다양한 펭귄이 모여 사는 펭귄 나라에서 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상이지요.

“흠흠! 아, 너무 떨린다.”

펠루는 꼿꼿이 서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거울을 보았습니다. 이제 갓 털갈이를 마친, 말쑥한 황제펭귄이 보였습니다.

“할 수 있다!”

펠루는 거울 속 자신에게 주먹을 쥐어 보이고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쪽빛 하늘 아래 하얗게 펼쳐진 광장에는 벌써 많은 펭귄이 모여 있었습니다. 점잖은 황제펭귄, 활달한 젠투펭귄, 멋쟁이 마카로니펭귄, 카리스마 넘치는 아델리펭귄 들이 모두 시상식이 시작되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지요. 펠루가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데 옆에서 다른 펭귄들의 대화가 들렸습니다.

“누가 상을 받을지 너무 궁금해!”
“나는 수상자 연설이 기대돼.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까?”

연설이라는 말에 펠루는 저도 모르게 헛기침이 나왔습니다. 잠시 뒤, 사회자인 마카로니펭귄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러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었습니다.

“시상식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사회자의 말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사회자는 관중을 진정시킨 뒤 말을 이었습니다.

“오늘, 시상식을 위해 중창부터 악기 연주까지 풍성한 축하 공연이 준비돼 있습니다. 먼저 펭귄 연합중창단을 박수로 맞아주세요!”

펭귄들은 하늘이 떠나갈 듯 환호했습니다. 모든 공연이 마쳐진 뒤, 사회자가 다시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제 대망의 시상식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번에 상을 받을 펭귄은… 위험에 처한 어린 펭귄을 도둑갈매기로부터 구한 젊은이입니다. 사나운 도둑갈매기와 홀로 맞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두려움을 넘어선 용감한 선행에, 심사위원들도 상을 주는 데 만장일치로 동의했다고 합니다.”

사회자의 한마디 한마디에 곳곳에서 탄성이 나왔습니다. 누가 상을 받게 될지 벌써 눈치채고 호들갑을 떠는 펭귄도 있었지요. 사회자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습니다.

“올해의 펭귄상 수상자는 용감한 젊은이, 황제펭귄 펠루입니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펠루는 눈을 꼭 감고 앞으로 나갔습니다. 펭귄들의 환호 소리가 서서히 귓가에서 멀어지나 싶더니,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습니다.

펠루가 사는 마을의 최고 어른인 젠투펭귄 할아버지가 시상자로 나섰습니다. 펠루는 얼음으로 만든, 펭귄 모양의 반짝이는 트로피를 소중히 받아 들고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습니다. 다음은 수상자 연설 차례였습니다. 수많은 관중 앞에 선 펠루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하며 입을 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올해의 펭귄상을 받게 된 황제펭귄 펠루라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관중 앞에 서본 적이 없는데 정말 너무너무 떨리네요. 음… 아까 사회자께서 ‘두려움을 넘어선 용감한 선행’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저는 그렇게 용감한 펭귄이 아닙니다. 제가 누군가를 돕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제 몸 챙기기도 버거웠으니까요. 사실 지금도 제 입을 다루기가 너무 어려운데요, 자꾸 제멋대로 아무 말이나 하는 것 같아서요.”

여기까지 말하고 펠루는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했습니다. 펭귄들은 웃으며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펠루는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제가 어떻게 이 상을 받게 되었는지 말씀드려야겠죠? 음… 이야기는 제가 보송보송한 솜털을 가진 어린 펭귄이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솜털이 빠지기 시작할 무렵, 저는 자립할 준비를 하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바다로 갔습니다. 어른들이 범고래나 바다표범을 조심하라고 하셔서 최대한 안전해 보이는 곳을 골라 사냥 연습에 나섰죠. 처음엔 다들 얼음 절벽 끝에서 머뭇거리며 바람에 일렁거리는 파도만 보고 있었어요. 그때 한 친구가 눈을 질끈 감고 멋지게 뛰어들었고, 그날 이후 다들 금세 바다에 적응했습니다. 말 그대로 물 만난 물고기, 아니 펭귄이 따로 없었죠. 끝까지 절벽 위에 남은 펭귄은 저뿐이었어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높은 데서 떨어지는 건 너무 무모한 일 같았거든요. 물론 겁도 무척 많았고요.

친구들이 바다에 첨벙첨벙 뛰어들어서 깊은 곳까지 잠수할 동안, 저는 얼음 절벽을 돌고 돌아 최대한 낮은 곳에서 미끄럼틀 타듯 바다로 들어갔어요.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 저의 사냥 결과는 언제나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친구들이랑 같이 깊은 데로 들어가볼까도 생각했지만, 친구들의 잠수 실력을 뒤늦게 따라잡으려니 버거웠어요.

하루는 친구들이 깊은 바다에서 맛있는 오징어랑 물고기를 잔뜩 먹고 돌아왔어요. 저는 깜깜한 게 무서워서 얕은 바다만 돌아다니다가 기진맥진해서 빙하에 먼저 올라와 있었죠. 한껏 들뜬 친구들은 제게 다음 날 그곳에 같이 가보자고 했어요. 그날따라 의기소침했던 저는 친구들의 말이 다 자랑으로만 들렸답니다.

토라진 저는 친구들을 등지고 혼자 무작정 걸었어요. 난 왜 겁이 많을까, 이렇게 사냥을 못 해서 나중에 아기는 어떻게 먹여 살릴까…. 정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그렇게 한숨을 푹푹 쉬면서 걷는데, 갑자기 퍽! 하고 누가 제 등을 쳤어요. 아픈 건 둘째 치고 너무 놀라서 뒤를 봤더니, 평소에 길에서 몇 번 마주쳤던 아델리펭귄 형이었어요. 그때 제 표정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별로 안 좋았을 거예요. 데면데면한 사이인데 갑자기 왜 이러나 싶었으니까요.

형은 “오랜만이다!” 하면서 곁에 바짝 붙더니, 목소리를 낮춰서 “도둑갈매기가 널 노리고 있어. 나한테서 떨어지지 마”라고 했어요. 그제야 정신이 들어서 주변을 돌아보니, 친구들은 멀리 조그맣게 보이고 빙하 위에는 저 혼자였답니다. 도둑갈매기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절 노려보고 있었고요.

형은 날개를 쭉 펴더니 마치 도둑갈매기 들으라는 듯 “아무도 우리 아델리펭귄은 못 당하지!”라고 소리쳤어요. 그래도 도둑갈매기가 가지 않자, 그동안 동료들과 함께 천적들을 쫓아낸 이야기를 더 큰 목소리로 말했죠. 저는 도둑갈매기를 본 순간부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는데 어떻게 그렇게 위풍당당할 수 있는지, 너무 놀라웠어요. 주변을 맴돌던 도둑갈매기는 형의 기세에 눌려 결국 날아갔답니다.

형은 도둑갈매기가 멀리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걸음을 멈췄어요. 그러고는 제게 위험하게 왜 혼자 다니느냐고 했죠. 문득 서러워서 눈물이 났어요. 저는 엉엉 울면서 형에게 그동안의 일을 털어놨어요. 겁 많은 성격 탓에 사냥도 맨날 실패하고, 혼자 뒤처지고 있다고요. 저도 형처럼 용감한 펭귄이 되고 싶다고도 했죠.

잠자코 제 이야기를 듣던 형은 “용감한 펭귄이 어떤 펭귄인지 알아?”라고 물었어요. 그러더니 “두려움이 없는 펭귄이 아니라, 그걸 극복하는 펭귄이야”라고 했어요.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용기는 타고나는 거라고 여겼거든요.

형도 원래 겁이 많은 성격이었대요. 그래서 한때 씩씩한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저처럼 힘들어했었다고요. 물론 겁이 많은 게 잘못은 아니지만, 두렵다는 이유로 힘든 일을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큰 결심을 했다고 해요. 두려움 앞에 도망치지 않고, 매일 딱 하나씩만 새로운 도전에 부딪쳐보자고요. 그렇게 자신만의 벽을 깨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주변에서도 많이 응원해주었고, 함께 힘을 합쳐 어려운 일들을 해내면서 마음이 단단해졌대요. 다른 펭귄을 도와줄 수 있을 만큼요.

형은 제게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생각하고 두려움과 정면으로 맞서보라고 격려해줬어요. 그렇게 마음이 따뜻한 형인 줄은 몰랐는데, 꽤 위로가 되더라고요.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친구들이 있는 곳까지 왔어요. 제 어깨를 다독여주고 돌아가는 형의 뒷모습을 보며 다짐했죠. 형처럼 다른 펭귄을 도와줄 수 있는 ‘용감한 펭귄’이 되자고요!

그때부터 날마다 조금씩 높은 곳으로 가서 다이빙했고, 더 깊이 잠수했어요. 친구들도 저의 달라진 모습에 기뻐했답니다. 친구들과 빙산도 넘어보고, 바다표범을 피해 정신없이 헤엄치기도 하면서 늘 제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던 두려움이 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느꼈어요.

그러다가 아기 펭귄을 만난 거였답니다. 친구들을 보러 가는 길에, 무리에서 떨어져 길을 잃은 아기 펭귄을 발견했어요. 그런데 도둑갈매기가 그 펭귄을 향해 날아가는 거예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쪽으로 마구 뛰어갔죠.

도둑갈매기가 아기 펭귄을 부리로 물려고 하는 순간, 저는 몸을 날려 그 앞을 막아섰어요. 그리고 아델리펭귄 형이 그랬듯 “우리 황제펭귄은 못 당할걸!” 하고 소리쳤죠. 저를 얕본 도둑갈매기는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그럴수록 오기가 생겨서 더 치열하게 맞섰어요. 결국 갈매기를 쫓아내는 데 성공했답니다. 그 일이 이렇게 큰 상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어요. 정말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소중한 제 친구들과, 아델리펭귄 형에게도요.

이야기를 마친 펠루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 연단을 내려왔습니다.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이 펠루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축하 인사를 받느라 분주한 와중에, 펠루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황제펭귄 가족을 발견했습니다.

“어, 혹시….”
“맞아요. 펠루 씨가 구해준 펭귄이 우리 아이랍니다.”
“올해의 펭귄상 받으신 것 축하해요. 그리고 우리 아이를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연설은 정말 감동이었어요.”

엄마 아빠 펭귄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기 펭귄도 펠루의 품에 쏙 안기며 축하 인사를 건넸습니다. 시상식의 마무리를 알리는 경쾌한 악기 연주가 광장에 가득 울려 퍼집니다. 서로 돕고 살아가는 펭귄들처럼 조화로운 화음, 모두의 마음에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는 힘찬 선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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