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포는 행복해

여러 동물이 어울려 사는 드넓은 초원. 그 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 주위에 하마 가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아기 하마 포포네도 그 틈에서 알콩달콩 가정을 꾸려가고 있지요.

포포의 아빠는 오늘도 온몸이 흙먼지에 뒤덮이도록 초원을 누비고 돌아왔습니다. 강에 도착하자마자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고 피곤한 듯 눈을 감았지요. 하마들은 피부가 건조해지면 안 돼서, 햇볕이 쨍쨍한 낮에는 틈틈이 물에서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거든요. 그때, 포포의 엄마가 다가왔습니다.

“포포 아빠, 또 어딜 갔다가 이제 와요?”

엄마는 아빠가 오랫동안 집을 비워서 화가 났나 봅니다. 수풀 뒤에서 물장구를 치던 포포는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가만히 숨죽이고 상황을 지켜봤습니다. 아빠가 아무 대꾸 없이 물속으로 꼬르륵 들어가버리자, 엄마는 어디 갔다가 왔느냐고 한 번 더 채근하듯 물었습니다. 아빠가 마지못해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사자들하고 실랑이하다가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피곤한데 좀 쉽시다!”
“또요? 맨날 그렇게 싸움만 하고…. 그럴 시간에 포포랑 좀 놀아주면 안 돼요?”
“싸움이 아니라 경비단장으로서 할 일을 하는 거예요. 그것도 다 포포를 위한 거고요.”
“그게 하루 이틀이어야죠.”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포포의 얼굴이 시무룩해졌습니다. 포포는 요즘 부모님이 말다툼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포포 아빠가 얼마 전 경비단장이 되면서 무척 바빠졌는데, 엄마는 아빠가 바깥일을 이유로 가족에게 소홀해진 것 같아 섭섭한 눈치입니다. 포포가 부쩍 자라서 행동도 날래지고, 여기저기 겁 없이 돌아다니는 터라 혼자 돌보기가 버거운 데 말이지요.

“엄마 옆에서 낮잠이나 자볼까 했는데…. 그냥 여기 있어야겠다.”
포포는 수풀 뒤에 쪼그려 앉았습니다. 그때, 저만치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포포야!”

포포의 단짝, 코끼리 루이였습니다. 그 옆에 코뿔소 퍼니도 보이네요. 포포는 얼른 일어나 둘에게 갔습니다.

“혼자 뭐하고 있었어?”
“어, 그게….”

루이의 물음에, 포포는 엄마 아빠가 다투시는 바람에 수풀 뒤에 숨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루이는 진심으로 포포를 위로해주었습니다.

“그래도 두 분 다 가족을 위하는 마음은 같으시니까, 금방 화해하실 거야.”
“맞아, 맞아.”

루이와 퍼니의 말에 포포는 엄마 아빠가 있는 쪽을 돌아봤습니다. 여전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우리, 나무 많은 데로 놀러 갈까?”
루이의 말에 퍼니가 “와” 하고 환호했습니다.

“후, 좋아! 대신 멀리 가지는 말자. 부모님이 걱정하시니까.”

포포는 친구들에게 살며시 미소 지었습니다. 셋은 콧노래를 부르며 길을 나섰습니다. 맛있는 풀이며 다양한 동물 등 구경거리가 많아, 다들 쉽게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포포는 울적했던 마음을 훌훌 털어버리고 친구들과 즐겁게 뛰어놀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포포는 기운이 떨어졌습니다. 한낮에 물속이 아닌 뙤약볕에 오래 나와 있는 것은 무리였나 봅니다. 포포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헉헉대다 결국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포포야, 왜 그래?”
루이가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헉헉, 너무 더워. 피부도 따갑고.”

발을 동동 구르던 루이와 퍼니는 포포를 데리고 가까운 나무 아래로 갔습니다.

“아, 그늘에 있으니 좀 살 것 같다.”

포포는 지쳐서 자리에 드러누웠습니다. 그러고는 “이럴 때 옆에 시원한 웅덩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하고 혼잣말했습니다. 그러자 루이가 좋은 생각이 있다며 코를 치켜들었습니다.

“아! 내가 강에 가서 코에 물을 담아올게.”
“이야, 진짜 기막힌 생각인걸?”

퍼니는 감탄하며 당장 출발하자고 했습니다.

“포포가 심심하니까 퍼니 너는 여기 있어. 나 혼자 가도 될 것 같아!”
루이는 자기만 믿으라며 강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한편, 포포네 부모님은 여전히 냉전 중이었습니다. 엄마가 “오늘은 당신이 포포를 돌봐요!” 하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알겠어요. 포포야, 아빠랑 뭍에 가자!”

아빠는 하려던 말을 멈추고는 포포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얘가 그새 어딜 갔지? 여보, 포포 못 봤어요?”
“아까 수풀에서 잘 놀고 있었는데요.”

엄마는 포포가 놀던 수풀에 가봤지만 역시나 헛걸음이었습니다. 아빠는 급한 대로 흩어져서 포포를 찾아보자고 했습니다. 혹시라도 포포가 사자들에게 큰일을 당한 건 아닐까 싶어 걱정된 엄마는, 강을 바삐 헤엄쳐 다니며 만나는 이웃마다 포포를 못 봤냐고 물었습니다.

“그래도 사자들이 감히 포포를 건드리진 못했을 거예요.”
“맞아요. 요즘 포포 아빠 덕분에 사자들이 하마 근처엔 얼씬도 못 하잖아요! 정말 든든한 남편을 두셨어요.”
“아, 네….”

하마들의 말에, 엄마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이웃들은 포포 아빠가 경비단장으로서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모른다며 칭찬했습니다. 사자들이 새끼 하마 근처를 어슬렁거릴라치면 바로 쫓아준다고요. 덕분에 아이들 안전에 대한 걱정을 크게 덜었다며, 함께 포포를 찾아주겠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랬군요….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저는 동쪽으로 가볼게요!”

엄마는 초원으로 향하며, 아빠 하마와 다툰 일을 떠올렸습니다. 서운한 마음에 밖에서 사자들이랑 싸움만 일삼느냐며 핀잔했는데 그야말로 오해였습니다.

‘밖에서 고생하는 건 몰라주고, 맨날 싫은 소리만 했네.’

엄마는 포포를 찾아야 한다는 다급함에 아빠 하마에 대한 미안함까지 더해져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초원에서는 아빠가 포포를 찾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포포가 갈 만한 곳을 우선 돌아다녀 봤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포포 이 녀석, 말도 없이 어딜 이렇게 쏘다니는 거야?’

아빠는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골랐습니다. 문득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혼자서 포포를 데리고 초원에 풀을 먹이러 나왔을 아내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포포가 지금처럼 말도 없이 멀리 나갔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습니다. 호기심 왕성한 포포를 아내 혼자 보호하기엔 힘에 부치겠다 싶었습니다.

‘내가 포포에게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 그나저나 이제 어딜 가보지?’

그때, 엄마 하마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다가왔습니다. 포포의 흔적을 발견했냐는 물음에 아빠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둘은 포포의 이름을 부르며 계속 걸었습니다. 잠시 후, 멀리 새끼 코끼리가 허둥지둥 달려오는 게 보였습니다. 엄마 하마는 그 코끼리가 루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습니다.

“루이, 루이! 혹시 포포 못 봤니?”
“어, 아주머니!”

루이는 가쁜 숨을 내쉬며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포포랑 퍼니랑 셋이 놀러 나왔는데, 포포가 더위에 지쳐서 아카시아 나무 아래서 쉬고 있다고요. 하마 부부는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그러고는 루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포포가 있는 곳으로 얼른 달려갔습니다. 포포는 부모님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엄마, 아빠!”
“포포야!”

엄마는 포포와 몸을 부비며 다친 곳은 없는지 살폈습니다. 아빠도 포포가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웃음을 지었습니다.

“이 녀석, 말도 없이 멀리 나오면 어떡해! 평소에도 이렇게 돌아다녀서 엄마 힘들게 하는 건 아니지?”

포포는 풀 죽은 얼굴로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생각지 못한 아빠의 말에 놀라면서도 내심 흐뭇했습니다.

“엄만 괜찮아. 아빠가 늘 든든하게 지켜주실 테니까. 마음껏 뛰어놀면서 건강하게만 자라주렴.”

그 말에 이번에는 아빠의 어깨가 활짝 펴졌습니다. 크게 혼이 날 줄 알았던 포포는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참, 엄마! 혹시 루이 못 보셨어요? 아까 강에 간다고 했는데….”
“그러게. 루이 덕에 여기 왔는데, 급해서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네.”

그때, 루이가 코에 물을 담아서 돌아왔습니다. 포포는 루이가 가져온 물로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기운을 되찾았습니다.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노는 포포를, 엄마 아빠는 흐뭇하게 바라보았습니다.

해는 어느새 지평선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다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 포포와 루이, 퍼니의 뒤를 나란히 따르는 하마 부부 사이에 정적이 흘렀습니다.

“저….”
“포포 아빠.”

머뭇거리다 둘이 동시에 입을 여는 바람에 어색함이 싹 날아갔습니다. 엄마 하마가 먼저 말했습니다.

“아까 포포 찾으러 다니는데, 다들 당신이 경비단장이라 든든하다고 칭찬하더라고요. 매일같이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애쓴 거, 몰라줘서 미안해요.”

아빠 하마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나야말로 미안해요. 그동안 혼자 포포 돌보느라 고생 많았죠? 이젠 포포랑 많이 놀아줄게요.”

부부는 서로를 향해 미소지었습니다. 뒤를 돌아본 포포는 그런 부모님의 모습에 슬며시 웃음이 나왔습니다. 루이와 퍼니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너희 부모님, 다투셨던 거 맞아?”
“헤헤, 그러게. 오늘 정말 고마웠어. 내일 또 보자!”

포포는 친구들에게 인사하고 부모님에게로 달려갔습니다. 노을빛 초원을 가로질러 가는 포포네 가족의 모습이 무척 평화롭고 아름답습니다.
Go Top
정말 삭제하시겠습니까? 복구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