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버스 기사 호세


#1
“여기서 좀 내려주세요.”

버스가 정류장 부근 횡단보도 앞에 멈춰서자, 한 아주머니가 내리는 문 앞에 서서 소리쳤습니다. 1004번 버스 기사 호세는 “이 차가 택시인 줄 아세요?”라고 쏘아붙이려다 멈칫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버럭 화를 냈을 테지만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마음속으로 삼키며, 아주머니를 향해 안 된다는 손짓을 했습니다.

“아저씨, 내려달라고요.”
“안 된다고 했잖아요. 규정상 버스 정류장이 아니면 문을 열 수 없어요.”

호세는 머리가 지끈거렸습니다. 아침에 민원 담당 직원에게서 들은 말이 생각났습니다.

‘기사님 앞으로 올라온 민원이 수두룩해요. 승객을 직접 대하는 기사는 우리 회사의 얼굴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렇게 불친절하면 회사 이미지가 깎이잖아요. 계속 이러시면 저희도 더 이상 봐드릴 수 없어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죠?’

호세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온종일 안전에 신경 쓰며 운전석에서 핸들을 잡고 있노라면 온몸이 뻐근할 지경인데, 승객을 대하는 일은 더더욱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정류장이 아닌 곳에 세워달라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 고액의 지폐를 내밀며 차비를 거슬러달라는 사람, 음료수를 마시다가 바닥에 쏟는 사람, 주정을 부리며 괜히 시비를 거는 사람 등 버스를 운행하다 보면 별의별 승객을 다 만납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화를 내지 않고 친절히 대할 수 있겠느냐고, 호세는 민원 담당 직원에게 반문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아내와 아이를 생각하면 이번 직장에서는 해고당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주의할게요.”


#2
그날 오후, 민원 담당 직원의 말이 계속 신경 쓰였던 호세는 앞으로 민원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입을 닫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승객에게 화를 내는 대신 침묵으로 일관하며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운전에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나름대로 방법을 찾은 호세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기사님, OO공원 가나요?”

양손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노선을 묻는 남자에게, 호세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습니다. 남자는 아이들을 한 명씩 들어 올려 버스에 태웠습니다.

“안녕하세요!”

네다섯 살쯤으로 보이는, 자매 중 동생인 여자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호세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아빠가 버스비를 낼 때까지 호세가 아무 말이 없자, 아이는 다시 한번 인사했습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그, 그래.”

남자는 아이들을 데리고 빈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생글생글 웃으며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습니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어디 가세요?”
“아저씨, 손에 든 건 뭐예요?”

휴대폰을 보거나 창문 밖을 쳐다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아이들에게로 집중됐습니다. 한 할머니가 어디 가느냐고 묻자 동생이 재빨리 대답했습니다.

“아빠랑 공원에 가는 길이에요. 버스 여행하면서요. 아빠가 오늘 쉬는 날이거든요.”
“맞아요. 엄마는 오늘 바쁜 일이 있어서 같이 못 간대요.”

언니가 뒤이어 대답했습니다. 할머니는 아이들이 사랑스럽다는 듯 쳐다보다 가방에서 사탕을 꺼내 아이들에게 건넸습니다.

“우아, 감사합니다.”

아이들은 곧장 아빠에게 사탕을 보여주며 기뻐했습니다. 작은 사탕에 행복해하는 아이들로 버스 안이 밝아졌습니다. 호세는 조잘대는 아이들 소리, 부드러운 음성으로 아이들과 대화하는 아이 아빠의 목소리가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페달을 밟는 기분도 왠지 가벼웠습니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부지런히 도심을 달리던 버스는 어느새 아이들 아빠가 가느냐고 물었던 OO공원을 한 정거장 남겨두었습니다. 안내방송이 나오자 자매 중 하차 벨과 가까이 앉은 언니가 얼른 벨을 눌렀습니다. 그랬더니 동생이 속상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벨은 내가 누르기로 했잖아.”
“아참, 그랬지. 깜빡했어.”

동생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습니다. 언니도 난처해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남자는 돌아가는 버스를 타면 꼭 벨을 누르게 해주겠다며 작은아이를 달랬지만, 아이의 기분은 좀처럼 나아질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호세는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뒷문을 열었다 다시 닫았습니다. 그러자 빨간 불이 들어와 있던 하차 등이 꺼졌습니다.

“꼬마 아가씨, 벨 눌러요.”

호세의 말에 동생이 냉큼 하차 벨을 눌렀습니다. 청명한 벨 소리가 버스 안에 울려 퍼지자 쀼루퉁했던 아이의 얼굴에 금세 미소가 번졌습니다. 이로써 작은 소동이 원만히 해결되었습니다. 아이 아빠는 감사의 인사를 건넸고, 아이들은 활짝 웃으며 “안녕히 계세요” 하고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잘 가거라.”

호세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습니다. 호세가 승객에게 인사한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어색하기는 했지만 그 느낌이 싫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버스에 올라타면서 건넨 인사에 기분이 좋아졌고, 그로 인해 평소라면 하지 않을 친절까지 베푼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니, 그의 마음속에 몽글몽글한 움직임이 일렁이는 듯했습니다. 사실, 그동안 자신을 힘들게 하는 승객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먼저 기분 좋은 말을 건네고 웃으며 인사한 승객들도 분명 있었지요. 하지만 불편했던 일을 더 크게 여기고 화를 쌓다 보니 거기에 가려졌던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호세는 승객들에게 자신이 먼저 인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신을 변화시킨 행복의 인사를 먼저 건네며 좋은 기분을 유지하면 하루 종일 즐겁고 행복해질 것만 같았습니다.


#3
“이번 정류장은 XX로터리입니다.”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이 내리고, 새로운 승객이 탔습니다. 호세는 막상 마음먹은 대로 실행하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몇 번을 망설이다 겨우 용기를 낸 호세는 마침내 인사를 건네는 데 성공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버스에 오르던 아주머니도 웃으면서 인사했습니다. 힘을 얻은 호세는 더욱 큰 소리로 인사했습니다. 개중에는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승객, 쭈뼛거리는 승객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호세는 자신이 다짐한 대로 꾸준히 실천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었고, 그날 퇴근길은 여느 때와 달리 몸이 가뿐했습니다. 운행을 마치면 늘 고단함에 찌든 얼굴로 집에 들어서곤 했는데, 한결 편안한 얼굴로 미소까지 지으니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도 늘어났습니다.

며칠 뒤, 호세는 민원 담당 직원의 호출을 받았습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승객에게 친절하게 대하려 노력했는데, 또다시 민원으로 주의를 받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사무실로 들어서자 직원이 웃으며 반겼습니다. 그는 호세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습니다.

“기사님, 이거 한번 보시죠.”

「1004번 버스 기사님을 칭찬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1004번 버스를 매일 이용하는 학생이에요. 요즘 기사님이 버스에 타는 승객들에게 인사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며칠 전 시험 성적이 떨어져서 기분이 안 좋았는데, 기사님이 웃으며 인사해 주셔서 위로를 받았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항상 안전운전하세요!」


승객이 보내온 감사의 글을 읽은 호세는 울컥했습니다. 그동안 불친절하다는 민원만 받았지, 칭찬하는 글은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호세는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감동과 함께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거 제가 가져가도 되나요? 버스에 붙여놓고 매일 보고 싶은데.”
“그럼요, 당연히 되죠.”

다음 날, 오전 운행을 위해 호세는 동트기 전 출근했습니다. 운전석에 앉자마자 전날 직원에게 받아온 종이를 주머니에서 조심스레 꺼내 좌측 창문 옆에 붙였습니다. 칭찬의 글은 몇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았습니다. 승객들이 모쪼록 편안하고 즐겁게 1004번 버스를 이용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호세는 아침 인사를 연습했습니다.

“음음,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아니야, 반갑습니다가 더 나을까?”

그때,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버스가 서서히 출발했습니다. 호세는 옆 버스 기사에게 손 인사를 건네며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뗐습니다. 기분 좋은 운행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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