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네바 레스토랑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어, 저희는 스테이크를 시킨 적이 없는데요.”

소피가 테이블에 접시를 내려놓자 손님이 말했습니다. 당황한 소피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황급히 주문서를 꺼냈습니다. ‘스테이크-1번 테이블’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테이블 번호를 착각했네요. 죄송합니다.”

소피는 접시를 도로 들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때, 손님 몇 명이 동시에 소피를 불렀습니다.

“여기 접시 좀 치워주세요.”
“저희 주문할게요!”
“음료 한 잔 더 주세요.”
“네? 잠,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테이블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소피는 그만 옆에서 다가오던 청소 로봇과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쨍그랑.”

소피가 들고 있던 스테이크 접시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던 사장이 깜짝 놀라서 달려 나오고, 복작복작하던 레스토랑 안이 일시에 조용해졌습니다.

“근데 여기는 서빙을 사람이 하나?”
“그러게. 로봇이 하면 훨씬 좋을 텐데. 실수도 없고, 빠르고.”

뒤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소피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푹 숙이고 깨진 접시 조각을 주웠습니다. 사장은 손님들에게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던 소피는 그만 손을 베고 말았지요.

“아야!”

소피는 다친 손가락을 다른 손으로 쥐고 황급히 주방으로 뛰어갔습니다. 사장은 소피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찼습니다. 사장이 카운터로 돌아가자 청소 로봇이 바닥에 떨어진 접시 조각과 스테이크를 말끔히 치웠습니다.

회사와 가정에서 웬만한 일은 모두 로봇이 대신하는 시대,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지만 소피는 운 좋게 ‘네바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게 됐습니다. 안내와 서빙을 도맡았던 로봇이 고장 나 수리하는 동안만이지만요.

문제는 소피가 처음 하는 일이라 자꾸만 실수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손님들은 약속이나 한 듯 로봇을 찾았고, 소피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습니다. 주방에서는 주방장 딜런이 바쁘게 움직이는 로봇들을 감독하고 있었습니다. 딜런은 소피의 다친 손을 흘깃 보고는 무심하게 말했습니다.

“거기 새 스테이크 준비해뒀어요.”

베인 손가락에 급하게 밴드를 붙인 소피는 한숨을 푹 쉬며 새 스테이크 접시를 들고 홀로 나갔습니다.

폭풍 같은 점심시간이 지나고 잠시 찾아온 휴식 시간, 소피는 의자에 앉아 몸을 축 늘어뜨렸습니다. 청소 로봇은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쓸고 닦고, 주방의 로봇들은 쉼 없이 식재료를 다듬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방으로 향하는 딜런이 보였습니다.

“딜런, 매일 이렇게 바쁜가요?”
“아까는 점심시간이라서 그래요.”

소피는 딜런에게 하소연하듯 얘기했습니다.

“주문이 밀리면 어디서 어떤 메뉴를 시켰는지 헷갈려요. 테이블이 비면 빨리 치워야 하는데 그사이 손님들이 또 다른 요청을 하니까 머릿속도 하얘지고요….”
“그러니까 로봇을 쓰는 거죠. 너무 애쓰지 마세요. 어차피 로봇이 고쳐지면 그만둘 일이잖아요.”

소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딜런에게 서운했지만 틀린 말도 아니기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피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부모님은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었습니다. 소피네 집에는 로봇이 없습니다. 소피의 엄마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손수 밥을 짓고 직접 청소하며 집안 곳곳에 자신의 손길이 닿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소피, 잘 다녀왔니?”

화분에 물을 주던 아빠가 물었습니다.

“휴, 고철 로봇도 저보다는 낫겠어요.”

소피는 힘없이 대꾸하곤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소피의 모습에 아빠와 엄마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았습니다. 엄마는 조심스레 소피의 방문을 열었습니다.

“로봇이 너보다 낫다니…. 기쁠 때 같이 웃고, 슬플 때 함께 울어주는 로봇이 어디 있어? 로봇이 일은 잘할지 몰라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완전히 대신할 순 없단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요. 일할 때 실수만 안 하면 다행이죠.’

소피는 속으로 대꾸하며 엄마의 눈길을 피했습니다.



다음 날, 사장이 아침 일찍 서빙 로봇의 상태를 점검하러 갔습니다. 레스토랑에 사람은 소피와 딜런뿐이었습니다. 그때 허름한 차림을 한 남자가 쭈뼛거리며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소피는 두리번거리는 남자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혼자 오셨나요?”
“네 명이요.”
“이쪽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스테이크를 하나만 주문해도 될까요?”

레스토랑 규칙상으로는 인원수만큼 메뉴를 주문해야 합니다. 남자는 오늘이 쌍둥이 딸들의 생일인데 스테이크를 꼭 먹고 싶어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요. 다른 레스토랑에 갔더니 로봇이 ‘인원수만큼 주문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해 나와야 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소피는 잠시 고민하다 남자에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희 레스토랑에 잘 오셨습니다. 일인분만 주문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마침 오늘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어서 생일이신 분은 메뉴 하나만 시켜도 이인분을 제공해드립니다.”

소피의 말을 들은 남자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밖에 있는 아내와 쌍둥이 딸들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습니다. 소피는 곧장 주방으로 가 딜런에게 남자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스테이크 두 개를 부탁했습니다. 곤란한 표정을 짓던 딜런은 나머지 가격을 자신이 내겠다는 소피의 간청에 마지못해 고기 두 덩이를 팬에 올렸습니다.

“소피, 스테이크 가져가요.”
“고마워요, 딜런!”

소피는 남자의 가족이 앉은 테이블에 스테이크를 내려놨습니다.

“와, 맛있겠다.”
“정말 고맙습니다. 딸들이 정말 좋아하네요.”

소피는 남자의 인사에 미소로 화답했습니다. 스테이크를 나눠 먹는 남자의 가족이 정말 행복해 보였습니다. 잠시 후 중년의 여자가 혼자서 레스토랑을 찾았습니다. 호의를 베푼 일로 기분이 좋아진 소피는 힘차게 인사했습니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레스토랑 분위기가 참 밝네요.”

여자는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어딘가 슬퍼 보였습니다. 소피는 식사를 하면서도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보는 여자 손님이 쓸쓸해 보여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주문하지 않은 자몽에이드를 들고 여자의 테이블로 갔습니다.

“죄송하지만 잘못 가져오신 것 같은데요.”
“아, 이건 특별 서비스입니다. 상큼한 과일 주스 드시고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소피는 싱긋 웃으며 돌아갔습니다. 여자는 소피가 건넨 에이드를 한참 바라봤습니다. 점차 여자의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던 소피도 흐뭇하게 웃었습니다.

여자가 식사를 마치고 일어날 때쯤 사장이 돌아왔습니다. 여자는 계산을 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소피를 가리키더니 사장에게 뭔가를 건네고 나갔습니다.

‘소피가 또 무슨 실수를 한 거지?’

그 모습을 보며 딜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그날 저녁, 사장이 퇴근 준비를 하는 소피와 딜런을 불렀습니다. 사장은 카운터에 보관해둔 쪽지 하나를 꺼냈습니다.

“어느 손님께서 이 쪽지를 전해주고 가셨다.”

딜런은 어떤 일인지 예상한다는 듯 소피를 쳐다봤습니다. 사장이 쪽지를 읽었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고 갑니다. 사실 오늘은 제 결혼기념일이자 남편의 기일이에요. 매년 이때가 되면 남편이 많이 생각나 마음이 울적하네요. 그런데 오늘은 여직원 덕에 마음 따뜻하게 돌아갑니다.」

딜런은 예상 못한 쪽지의 내용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사장은 소피에게 잘했다며 크게 칭찬했고, 소피는 쑥스러워 볼이 붉어졌습니다.

소피가 한껏 들뜬 표정으로 집에 들어서자 엄마는 과일이 가득 담긴 접시를 들고 왔습니다. 아빠가 소피의 가방을 받아주며 물었습니다.

“소피, 오늘은 어땠니?”
“아직 실수투성이죠. 근데 엄마 말이 맞았어요! 로봇이 사람을 완전히 대신할 수 없다는 거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더 이야기해달라는 엄마의 재촉에 소피는 남자의 가족에게 스테이크를 제공해준 일, 혼자 있던 여자에게 음료를 건넨 일을 말했습니다.

“오! 어쩜 그리 기특한 생각을 했니?”

소피는 아빠 엄마의 격려를 가득 받고 더욱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2주가 흘렀습니다. 일찍 와서 홀 정리를 하는 소피를 사장이 불렀습니다.

“서빙 로봇 수리가 완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어. 너의 서빙은 오늘로 마지막이 될 것 같아.”
“벌써요? 아쉽지만 잘됐네요. 이제 로봇이 오면 사장님도 딜런도 한시름 놓으시겠어요. 제가 실수가 많았잖아요.”

소피가 멋쩍게 웃었습니다. 사장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말을 꺼냈습니다.

“생각을 좀 해봤는데, 내일부터는 서빙이 아니라 홀을 총괄하는 매니저로 일해보는 건 어때?”
“네… 네? 뭐라고요?”

소피는 놀라서 벌어지는 입을 손으로 가렸습니다. 대답은 당연히 ‘오케이’였지요. 소피의 답을 들은 사장은 대신 한 가지 부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곳이 손님들에게 따뜻한 곳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줘.”
“물론이죠.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때 레스토랑 문이 열렸습니다. 소피는 바로 달려가 반갑게 손님을 맞았습니다.

“안녕하세요. 네바 레스토랑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자리 안내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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