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리와 친해지기


라일리 집에 새로운 가족이 생겼습니다. 라일리의 머리 색과 똑같은, 금빛 털을 가진 햄스터입니다. 라일리는 손에서 빠져나오려는 햄스터를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신기한 듯 요모조모 살폈습니다.

“색깔이 꼭 체더치즈 같잖아. 앞으로 네 이름은 ‘치즈’야.”

라일리는 흐뭇하게 웃으며 치즈를 쓰다듬었습니다. 치즈는 자꾸만 자신을 만지는 라일리가 부담스러웠습니다. 볼에 바람을 넣어 최대한 뾰로통한 표정을 지어봤지만 라일리는 오히려 더 귀엽다며 놓아줄 생각을 안 했지요.

‘아이참, 귀찮다니까. 제발 건드리지 말라고!’

치즈는 눈에 힘을 팍 주고, 볼을 더 빵빵하게 만들었습니다.

“귀여운 치즈, 앞으로 ‘쿠키’랑 잘 지내.”

그제야 라일리가 치즈를 내려주었습니다.

‘여긴 어디야? 쿠키는 또 누구지?’

치즈는 재빨리 라일리의 손에서 벗어나 넓은 사각 케이지의 모퉁이로 피신했습니다. 마주 보이는 푹신한 쿠션 위에는 회색빛 털을 가진 햄스터가 여유로운 자세로 누워 있었습니다.

“어, 새로 온다는 녀석이 너로구나? 난 쿠키라고 해. 여기는 내 방이고, 네 방은 저쪽이야.”

쿠키는 몸을 일으켜 앞발로 반대편을 가리켰습니다. 치즈는 같은 햄스터를 보자 긴장된 마음이 조금 풀렸습니다. 나무다리를 건너 쳇바퀴도 굴려보고, 자기 방에서 쿠키의 방까지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며 주변을 익혔습니다. 쿠키는 그런 치즈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천천히 둘러봐. 라일리는 어때? 너랑 잘 맞는 것 같아?”
“후, 전혀. 라일리는 정말 제멋대로야!”

치즈는 쳇바퀴에 힘없이 걸터앉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아니, 내가 그만 좀 괴롭히라고 무서운 표정을 짓는데도 웃기만 하더라니까? 날 무시하는 게 틀림없어.”

치즈의 진지한 말에 쿠키는 자기도 모르게 풉, 하고 웃었습니다.

“앗, 미안. 웃으려던 건 아니었어.”

치즈는 그럴 수 있다며 앞발을 내젓고는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앞으로 라일리하고 잘 지낼 수 있을지, 라일리가 계속 괴롭히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쿠키는 치즈를 토닥이며 말했습니다.

“예전엔 나도 라일리가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했어. 근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
“무슨 말이야?”

그때, 라일리와 엄마가 다가오는 바람에 둘의 대화가 끊겼습니다.

“엄마, 치즈랑 쿠키 좀 보세요. 너무 귀엽죠? 둘이 벌써 친해진 것 같아요.”

라일리를 보고 털이 바짝 곤두선 치즈는 쿠키에게 이따 얘기하자고 속삭이고는 얼른 숨었습니다.



“흐아암, 까무룩 잠들었네. 아이, 깜짝이야!”

쿠션 밑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살짝 고개를 내밀던 치즈는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쿠키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얼마나 곤히 자던지. 엄청 피곤했나 봐?”
“미안. 라일리 때문에 긴장해서 그런 것 같아. 우리 좀 전에 무슨 얘기했었지?”
“라일리가 우리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거. 음… 치즈, 네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표정을 지어볼래?”

뜬금없는 쿠키의 말에 치즈는 볼에 바람을 넣었습니다.

“이렇게?”
“어휴 무서워라. 우리 햄스터들에게는 가장 험악한 표정이지. 그런데 사람들은 그 모습을 되게 귀엽다고 생각해.”
“엥, 뭐라고? 대체 뭣 때문에?”

치즈는 볼에 바람을 넣었다 뺐다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그게 사람과 우리의 다른 점이야. 중요한 건, 이런 게 한두 개가 아니라는 거야. 그래서 종종 서로의 마음을 오해하곤 해.”

치즈는 자세를 고쳐 앉고 사뭇 진지하게 쿠키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처음 라일리를 만났을 때,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손을 살짝 깨물었어. 그랬더니 라일리가 어떻게 했는 줄 알아?”
“먹을 걸 줬어?”
“아니. ‘아야!’ 하더니 나를 도로 집에 넣더라고. 그러더니 한동안 아는 체도 안 했어. 나중에 알았는데, 사람들은 서로 깨물지 않아. 그건 화난 사람들만 하는 행동이거든.”
“우아. 진짜 신기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치즈는 입을 떡 벌렸습니다. 쿠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습니다. 햄스터는 편안할 때 하품을 하지만 사람들은 지루할 때 하품을 하고, 햄스터는 먹이를 여기저기 숨겨두지만 사람들은 그걸 청소하고 싶어 한다고요. 치즈가 듣기에 사람은 햄스터와 무엇이든 정반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오해 풀어. 아까 라일리는 네가 화난 줄 꿈에도 몰랐을 거야. 널 괴롭힐 생각은 더더욱 없었을 테고.”
“그, 그래. 알려줘서 고마워….”

치즈는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쿠키는 라일리가 햄스터를 무척 아끼고 좋아한다고 했지만, 그 말이 아직은 와닿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라일리가 쿠키와 치즈를 작은 가방에 옮겨 담고 밖으로 나섰습니다. 친구네 집에 가서 햄스터를 보여주기로 했거든요.

“햄스터가 다치지 않게 조심히 들고 가야 한다!”
“네, 엄마. 다녀올게요!”

치즈는 오랜만에 맡는 바깥 공기에 눈을 반짝이며 코를 킁킁댔습니다. 쿠키는 느긋하게 누워서 라일리 걸음에 맞춰 리듬을 즐기고 있었지요. 그때, 느슨하게 닫혀 있던 가방 뚜껑이 살짝 열렸습니다. 그 틈으로 치즈가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작은 열매를 발견하고는 폴짝 뛰어내렸습니다. 순식간에 가방을 탈출한 치즈는 열매를 향해 무작정 달려갔습니다. 그때 “끼익!”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동시에 라일리가 치즈를 두 손으로 움켜잡았습니다.

“얘! 위험하게 갑자기 끼어들면 어떡하니!”
“죄송해요. 햄스터 때문에….”

라일리를 다그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치즈는 라일리 손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주변을 살폈습니다. 자전거를 탄 아주머니가 라일리 앞에 서 있었습니다. 치즈를 본 아주머니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페달에 다시 발을 얹었습니다.

“햄스터가 있었구나. 휴, 큰일 날 뻔했네. 조심히 다니렴.”
“네. 감사합니다.”

라일리는 아주머니가 가자마자 치즈를 살폈습니다.

“치즈, 괜찮아?”

라일리는 치즈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도로 가방에 넣고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쿠키도 괜찮냐며 걱정했습니다. 치즈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라일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구해주다니, 믿기지 않았습니다.

“쿠키, 어쩌면 네 말이 정말 맞나 봐. 라일리가 우리를 아낀다는 거 말이야.”
“거봐, 내 말이 맞지?”

쿠키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지만 치즈는 콩콩대는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온 라일리는 평소처럼 햄스터 집을 들여다보지 않고 힘이 쭉 빠져 소파에 앉아 있었습니다.

‘무슨 일 있나?’

치즈는 그동안 라일리가 자기를 괴롭힌다고 오해한 것이 미안해서 라일리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치즈는 폴짝폴짝 뛰며 라일리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 모습을 발견한 라일리가 다가오자, 치즈는 사람들이 햄스터의 무서운 표정을 귀엽게 본다는 쿠키의 말이 떠올라 있는 힘껏 볼을 부풀렸습니다.

“치즈, 갑자기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너무 귀엽잖아.”

라일리가 쓰다듬으려 하자 치즈는 고개를 숙여 머리를 내주었습니다. 라일리는 치즈의 살가운 애교에 기분이 풀렸습니다. 그때 라일리 엄마가 다가왔습니다.

“라일리, 오늘 시험 어땠니?”
“예상치 못한 문제가 나와서 어려웠어요. 그래서 기분이 안 좋았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라일리는 “치즈가 위로해줬거든요”라고 덧붙이며 미소 지었습니다. 라일리의 웃는 모습에 뿌듯해진 치즈는 몸을 씰룩이며 자리에서 빙빙 돌았지요.

“어머, 치즈가 웬일로 애교를 다 부리네! 네 기분을 알았나 보다.”

엄마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라일리와 엄마가 나가고, 치즈가 기분 좋게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데 쿠키가 말했습니다.

“너… 내가 알던 치즈 맞아?”
“헤헤, 라일리가 저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어. 라일리와 더 친해지고 싶어.”
“역시 진심은 통하는 법이군.”

쿠키는 턱을 쓰다듬으며 혼잣말하더니 에헴, 헛기침을 하며 말했습니다.

“좋아. 그럼 이번엔, 어떻게 하면 해바라기씨를 많이 얻을 수 있는지 알려줄게.”
“뭐? 그런 방법이 있어?”
“당연하지! 라일리하고 친해지면 해바라기씨도 많이 얻을 수 있고, 우리가 잘 먹으면 라일리도 기뻐하고. 서로 좋은 거라고!”

확신에 찬 쿠키의 말에 치즈는 눈을 껌뻑이며 느릿하게 되물었습니다.

“우리도 좋고, 라일리도 좋다… 뭐 이런 거지? 하여튼 얼른 알려줘. 어떻게 하면 되는데?”

치즈는 귀를 쫑긋 세우고 쿠키의 말에 집중했습니다.

“아, 이건 고급 정보라 아무한테 안 알려주는데….”

어깨에 힘을 잔뜩 준 쿠키가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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