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의 선물 가게


한적한 거리에 핑크색 벽돌로 지어진 아담한 건물이 있습니다. 작은 종이 달린 갈색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입구에서부터 귀여운 동물 인형들이 손님들을 반겨줍니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다양한 책이 꽂혀 있고, 싱그러운 화분부터 아기자기한 소품까지 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물건들이 곳곳에 진열되어 있습니다.

여기는 에바의 선물 가게입니다. 조그마하지만 없는 물건이 없어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많이 찾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비밀 상자’입니다. 비밀 상자가 뭐냐고요? 어떤 선물이 좋을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을 때 에바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에바가 적절한 선물을 골라 상자에 넣어줍니다. 상자를 열기 전까지는 어떤 선물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손님들 사이에서 비밀 상자라 불립니다.

‘딸랑-딸랑.’

교복을 입은 소녀들이 가게에 들어왔습니다. 이틀 전 비밀 상자를 사 간 소녀가 친구들을 데려왔습니다. 친구들한테 우정의 증표로 선물을 주고 싶다던 소녀에게, 에바는 손수 만든 비즈 팔찌를 상자에 넣어서 주었지요.

“지난번에 비밀 상자에 담아주신 거, 오늘 차고 왔어요!”

소녀들은 에바 앞으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작은 구슬들이 영롱하게 반짝였습니다. 에바의 선택이 이번에도 성공했군요. 얼마 전에는 한 젊은 남성이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엄마에게 오래 기억에 남는 선물을 해주고 싶다며 에바에게 도움을 요청했었습니다. 에바는 시집을 비밀 상자에 넣어 건넸습니다. 아름다운 시는 한 문장 한 문장 깊이 생각하게 하고, 오래도록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하니까요. 이렇게 에바가 사려 깊게 선물을 잘 찾아주기 때문에 손님들은 비밀 상자를 무척 좋아합니다. 한 번도 이용하지 않은 손님은 있어도 한 번만 이용하는 손님은 없을 정도지요.

“아주머니, 저 비밀 상자 또 사려고요!”

친구들에게 비즈 팔찌를 선물했던 그 소녀입니다.

“이번엔 누구에게 선물하려고?”
“아빠요. 요즘 퇴근하고 집에서도 일하시거든요. 피곤하실 것 같아서요.”

에바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음, 주로 서재에서 시간을 보낼 테니 책상 위에 둘 선물이면 좋을 것 같고. 남자들이 직접 사지 않을 것 같은, 그런 특별한 선물이면 좋겠는데….’

소녀들이 가게를 구경하는 동안 잠시 고민하던 에바는 선반에 있는 산세비에리아 화분을 집어 들었습니다. 거기에 ‘아빠, 사랑해요!’라고 쓰인 작은 종이 팻말을 꽂아 상자에 담았지요.

“이번에도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구나. 딸 선물 받고 아빠가 무척 힘이 나시겠는걸. 조심히 들고 가렴.”
“우아, 어떤 선물일지 엄청 기대돼요. 고맙습니다!”

소녀는 설레는 표정으로 상자를 받아 들었습니다. 에바는 앳된 소녀를 보며 딸 엘린을 생각했습니다. 사실 에바에게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곧 엘린의 생일인데, 어떤 선물을 줘야 할지 결정을 못했거든요. 에바가 손님들에게 선물을 척척 추천해주는 것을 생각하면 의외의 고민일지 모르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엘린은 요즘 사춘기입니다. 부쩍 말수도 줄고, 집에 오면 방에만 콕 박혀 있지요. 그래서 에바는 엘린의 마음을 도통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에는 엘린이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터무니없이 비싼 옷을 사달라고 투정을 부리는 바람에 크게 다투기까지 했습니다. 이럴 때면 남편 피터가 중재자 역할을 해줬는데, 지금은 출장 중이라 집에 없습니다. 그 바람에 에바와 엘린 사이 미묘한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지요. 타지에서 열심히 일하는 남편에게 괜히 방해가 될까 엘린과의 일은 얘기도 못하고 끙끙 앓는데, 설상가상으로 피터의 출장이 연장되고 말았습니다. 엘린의 생일에 함께하지 못하게 돼 미안해하는 남편에게, 에바는 괜찮다며 혼자서 잘 준비해보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엘린의 마음에 들지, 그전에 화해는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습니다.

‘휴, 걱정이네. 이제 진짜 내일모레인데….’

에바는 근심 어린 표정으로 짧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딸랑-딸랑.’

그날 저녁, 한 중년 남자가 상자 하나를 옆구리에 낀 채 가게를 방문했습니다. 남자는 코너마다 멈춰 서서 물건을 집어 들고 한참 생각하다 내려놓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가게를 한 바퀴 돌고는 결국 에바에게로 왔습니다.

“저, 딸에게 줄 선물을 추천해줄 수 있나요?”
“그럼요. 따님의 나이가 몇 살인가요?”
“이제 대학에 입학해요. 딸이 혼자 타지에서 지내야 하는데 외로울까 봐 걱정이네요. 곁에 가족이 없어도 힘들 때마다 꺼내 보고 웃을 수 있는 선물이면 좋겠어요.”

남자는 가져온 상자를 카운터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선물 가게에 오기 전에 이것저것 준비해봤다면서요. 에바는 상자를 열었습니다. 상자 안에는 퍼즐과 머리핀, 여러 간식들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습니다.

“오, 많이 준비하셨네요?”

에바의 말에 남자는 쑥스러운 듯 두어 번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습니다.

“딸 선물을 준비하려고 보니, 자꾸만 딸의 옛날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딸애는 어려서부터 퍼즐 맞추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아름다운 아몬드 나무가 그려진 명화 퍼즐을 넣었어요. 아몬드 나무가 희망을 상징한다고 하네요. 달콤한 간식은 공부하다가 힘들 때 먹으라고 채워 넣고요….”

남자는 딸의 긴 머리에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리본 머리핀도 넣었다고 했습니다. 에바는 남자의 정성에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부족한 것 같아서요. 여기에 뭘 더 추가하면 좋을까요?”

에바는 남자의 말을 듣고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서툴지만 누구보다 딸에 대해 잘 알고, 딸을 위하는 아빠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에바는 편지지가 진열된 쪽으로 걸어가 맑은 하늘이 담긴 엽서를 집어 왔습니다. 드넓은 하늘이 딸을 생각하는 남자의 마음과 닮아 보였습니다.

“선물은 이 정도면 훌륭한데요. 이 엽서에 아까 말씀하신 선물을 고른 이유를 적어주세요. 따님이 아주 좋아할 거예요.”

에바는 엽서를 넣어 상자를 돌려주었습니다. 남자는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미소를 띠며 가게를 나섰습니다. 에바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덕분에 엘린에게 줄 선물의 답을 찾았거든요.



엘린의 생일날이 밝았습니다. 엘린이 학교에 가자 에바는 그동안 준비한 선물을 비밀 상자 안에 넣었습니다. 틈틈이 뜨개질해 만든 목도리와 엘린의 방 안을 은은한 향으로 채워줄 캔들워머입니다. 거기에 더할 마지막 선물을 완성하기 위해 에바는 편지지와 펜을 꺼냈습니다.

「엘린! 엄마야. 오래 고민했는데, 엄마가 준비한 선물이 네 마음에 들까 모르겠다. 예전에 네가 엄마한테 준 토끼 인형 열쇠고리 기억하니? 네가 밤새 뜨개질해서 만들었다던 그 인형이 엄마한테는 제일 소중한 선물이란다. 엄마도 널 위해서 작은 목도리를 만들어봤어. 다 뜨고 나니까 뭔가 허전해서 목도리 한쪽에 네가 준 토끼 인형 모양을 실로 새겨봤단다. 어때, 비슷하지? 네가 사달라 했던 점퍼보다는 덜하겠지만 겨울이 오면 이 목도리로 포근한 겨울을 보냈으면 좋겠구나. 네가 항상 코튼 향 핸드크림만 쓰는 게 생각나 코튼 향 캔들도 넣었어. 네가 좋아했으면 좋겠다. 요즘 너와 대화를 많이 못 했네. 엄마가 일 끝나고 집에 가면, 곁에서 하루 동안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을 얘기해주던 네가 그립다. 생일 축하해, 엘린. 엄마는 너를 아주 사랑한단다.」

에바는 편지를 상자 안에 곱게 접어 넣고, 본격적으로 파티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벽에는 손수 종이를 오려서 만든 ‘HAPPY BIRTHDAY’ 글자를 큼직하게 붙이고, 집 곳곳을 풍선으로 장식했습니다.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해 엘린이 좋아하는 딸기초코케이크와 쫀득하고 부드러운 마카롱도 만들었지요. 부지런히 움직이다 보니 어느덧 엘린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었습니다. 흘낏 시계를 보다 깜짝 놀란 에바는 서둘러 케이크와 마카롱을 식탁에 올려놓고, 식탁 한가운데에 꽃 한 송이가 꽂힌 꽃병을 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선물 상자를 식탁에 내려놓으며, 엘린이 기쁘게 웃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엘린이 돌아왔습니다. 엘린은 한껏 꾸며진 집 안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엘린! 생일 축하해!”

에바는 엘린을 식탁 앞으로 데려와 고깔모자를 씌워주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습니다. 엘린은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감추며 촛불을 껐습니다. 에바는 오랜만에 보는 딸의 미소에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이건 뭐예요?”

엘린이 탁자 위에 놓인 선물 상자를 보고 물었습니다.

“엄마가 준비한 선물이야.”

엘린은 상자를 열어 선물을 하나하나 살폈습니다. 목도리를 집어든 엘린은 목도리 끝에 수놓아진 토끼를 보고 자기가 만들어준 인형 아니냐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코튼 향 캔들을 보고는 가장 좋아하는 향인데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지요.

“얘는, 네가 누구 딸인데. 엄마는 다 알지!”

에바는 엘린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말했습니다. 엘린은 짐짓 입술을 삐죽 내밀며 이번에는 편지를 열었습니다. 찬찬히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엘린의 눈가가 촉촉이 젖었습니다.

“엄마, 너무 감동이에요.”
“엄마한테 화 풀린 거야?”

엘린은 손으로 눈가를 훔치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화난 적 없어요. 그냥 엄마가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했어요. 저번에 사달라고 했던 옷은 제가 생각해도 너무 비싼 옷이었어요. 엄마한테 사과해야겠다 생각은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지금까지 온 거 있죠.”

엘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에바는 그런 엘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습니다.

“엄마도 네 마음 몰라주고 강하게 얘기했던 거 사과할게. 미안해.”

엘린은 눈물 젖은 얼굴로 배시시 웃었습니다. 에바와 엘린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데, 현관문이 열렸습니다. 피터였습니다.

“아빠!”
“어머, 어떻게 된 거예요?”
“일이 생각보다 일찍 끝났어요. 엘린, 생일 축하해!”
“온다고 미리 말해줬으면 더 큰 케이크를 준비했을 텐데….”

피터는 엘린을 꼭 안아주고는 가방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며 “그야, 서프라이즈니까” 하고 눈을 찡긋했습니다.

“아빠, 그건 뭐예요? 혹시 제 선물?”

피터가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에바는 얼른 열어보자고 엘린을 재촉했습니다. 두 모녀가 부산스럽게 상자를 여는 동안 창밖으로 노을이 곱게 내려앉습니다. 에바와 엘린, 피터 세 가족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특별한 날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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