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틴의 불편주의보


#1
오스틴은 이마를 찌푸리며 자신의 차와 옆 차의 간격을 확인했습니다. 옆 차는 뒷바퀴가 주차선에 거의 닿아 있을 만큼 가까웠습니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겨우 차에 탄 오스틴이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중얼거렸습니다.

“차를 저렇게 대면 옆 차는 어떻게 타라는 거야?”

꽉꽉 막히는 출근길을 뚫고 회사에 도착하니, 엘리베이터가 꼭대기 층에 머물다 한참 만에 내려왔습니다. 부하 직원 로버트가 올린 보고서는 정해진 양식대로 작성되지 않아 수정을 거듭해야 했습니다. 신입 직원인 켈리는 중요한 문서를 이면지와 함께 갈아버렸지요. 오스틴의 마음은 종일 먹구름이 낀 듯 답답했습니다.

쌓인 업무를 해결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 앞에 도착한 오스틴은, 주차 공간을 보고 한숨을 푹 쉬었습니다. 아침에 주차선에 바짝 붙어 있던 그 차가 이제는 선을 넘어 주차 구역을 침범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대편인 조수석 쪽 공간은 벽과의 사이가 매우 넓었지요.

‘세상 혼자 사나 보군. 배려심이 눈곱만치도 없어.’

오스틴은 상대방의 주차 매너가 도통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불편한 마음을 꾹 누르며 자동차 앞 유리에 붙어있는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주차를 해야 하는데 그쪽 차가 선을 넘어와 있습니다. 다시 대주십시오.”

전화기 너머로 샤워기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소리와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전화를 받은 남자가 말했습니다.

“아, 죄송하지만 제가 당장 내려가기가 어려워서요. 5분 정도 기다려주시면….”

오스틴은 구두코로 땅바닥을 찼습니다.

“내가 왜 그쪽 때문에 시간을 낭비해야 합니까?”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
“남한테 피해를 주면서 사과만 하면 끝입니까? 당장 바로 대세요.”

잠시 후 헐레벌떡 달려온 남자가 애써 웃으며 오스틴에게 사과했습니다.

“불편하셨죠? 죄송합니다.”

여전히 굳은 표정의 오스틴은 사과를 받는 둥 마는 둥, 비켜 댄 남자의 차 옆에 주차하고는 집으로 갔습니다.


#2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에이미는 볼 안쪽을 살짝 깨물었습니다. 시골에 있는 어머니의 건강에 갑자기 이상이 생겨 종합병원에 모시고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한 그녀는, 짧게 숨을 들이마신 뒤 오스틴의 물음에 답했습니다.

“내일 휴가를 내야 할 것 같습니다.”

오스틴은 볼펜으로 책상을 두드리다, 눈치를 살피는 에이미를 쏘아보며 볼펜을 탁 내려놓았습니다.

“우리 팀 프로젝트 마감이 다음 주죠. 내일까지 에이미 씨가 할 일은 뭔가요?”
“발표 자료와 대본 작성 마무리입니다.”
“기한 안에 끝낼 수 있습니까?”
“그게….”
“에이미 씨가 발표 자료와 대본을 작성해 넘겨줘야 로버트 씨가 발표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다른 팀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맡은 일에는 책임을 다해야 하지 않습니까?”
“내일까지 제 분량은 끝내고 가겠습니다….”
“팀의 상반기 업무 평가가 걸려 있습니다. 에이미 씨 때문에 계획이 틀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겁니다.”

말을 마친 오스틴이 결재 서류로 눈을 돌렸습니다. 에이미는 쭈뼛거리다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3
오스틴이 사무실에서 나왔을 때는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어둠이 깔린 도로는 비까지 내려 축축하고 미끄러웠습니다. 빗길을 달려 주택가에 들어선 그는 헤드라이트 너머로 주차 구역을 확인하고는 핸들을 꽉 움켜쥐었습니다. 전날 주차 문제로 얼굴을 붉히게 한 남자의 차가 또다시 주차선을 넘어와 있었거든요. 발신 목록에 남아있는 남자의 번호로 전화를 걸자 휴대폰이 꺼져있다는 멘트가 흘러나왔습니다.

“이 사람 뭐야?”

오스틴의 마음 속에서 우르릉, 천둥이 쳤습니다. 그는 앞 유리에 주소가 붙어있나 보려고 우산을 들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운전석 문이 열리더니 남자가 차에서 황급히 내렸습니다. 남자는 오스틴을 발견하지 못한 채 차 뒤로 가 트렁크를 열었지요.

“이봐요….”

오스틴은 남자에게 따지려다 트렁크에서 나온 물건을 보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접이식 휠체어를 꺼낸 남자는 바퀴가 바닥에 닿게 한 뒤 반으로 접힌 가죽 시트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우산을 펴서 목과 어깨 사이에 끼우고는 시트에 떨어진 빗물을 옷소매로 닦았습니다. 오스틴은 그 모습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았습니다.

남자는 휠체어를 몰고 가 조수석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안에서 머리를 내민 아이가 자연스럽게 남자의 목에 팔을 걸었습니다. 남자는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다른 손으로 아이의 엉덩이를 받쳐 휠체어에 앉혔습니다. 휠체어를 뒤로 당기며 주차 구역을 빠져나오던 남자는 그제야 오스틴을 발견했습니다.

“어, 안녕하세요.”

그는 인사를 하다 불현듯 자기 차를 확인했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아이만 데려다 놓고 바로 다시 대겠습니다.”

남자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서둘러 휠체어를 밀고 갔습니다. 오스틴은 남자의 차 앞 유리를 확인했습니다. 미처 보지 못한 장애인 차량 표지가 연락처와 함께 붙어 있었습니다. 그는 새삼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주차 구역 어디에도 장애인 전용 구역은 없었습니다.

“번번이 불편하게 해드렸네요. 휠체어가 나올 공간만 신경 쓰다 보니, 다른 차에 불편을 주는 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느새 돌아온 남자가 오스틴에게 재차 사과했습니다. 오스틴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집에 들어와 책상 앞에 앉은 그는 시청 홈페이지에 접속해 장애인 주차구역 설치를 요구하는 민원을 넣었습니다. 어느덧 빗줄기는 잠잠해져 있었습니다. 그는 창문 밖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을 나름의 사정을, 그리고 단편적인 면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을요.


#4
“팀장님, 잠시 시간 괜찮으세요?”

밀린 메일을 확인하던 오스틴은 누군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습니다. 휴가를 신청했던 에이미가 그의 눈앞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스틴에게 서류철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오늘까지 드리기로 한 발표 자료와 대본입니다. 팀장님 결정이 필요한 사항은 따로 첨부했습니다.”

오스틴은 에이미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눈은 충혈됐고, 안색은 어두웠지요. 그는 그녀의 옷차림이 전날과 똑같다는 것을 기억해냈습니다. 아마 밤샘 작업을 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스틴은 시계를 봤습니다. 출근한 지 30분, 업무를 시작할 때마다 습관처럼 마시는 커피가 아직 절반 정도 남았습니다. 그는 에이미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님 진료 시간이 언제죠?”

오스틴은 진료 시간이 한 시간가량 남았다는 것과, 그녀의 어머니가 곧 기차역에 도착한다는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갑시다. 태워줄게요.”

에이미는 얼떨떨한 얼굴로 오스틴의 뒤를 허둥지둥 따라갔습니다. 그녀를 태운 오스틴의 차가 기차역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감사 인사를 하며 차에서 내리는 에이미에게 말했습니다.

“고생 많았어요. 오늘 볼일 끝나면 푹 쉬고, 내일은 오후쯤 출근해요.”
“네? 아, 감사합니다.”
“내가 에이미 씨 사정을 헤아리지 못했어요. 미안합니다.”

에이미가 눈을 크게 떴습니다. 오스틴은 턱을 긁으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지요. 에이미를 보내고 기차역을 빠져나오던 오스틴은 마음 한 켠에 맑은 햇살이 들어온 듯한 좋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사정으로 인해 예정에 없이 자신의 시간을 빼앗기고, 기사 노릇까지 했는데도요. 오스틴은 나지막이 중얼거렸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지.”

핸들을 잡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회사로 돌아가는 오스틴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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