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왈왈!”
강아지 구름이는 내리막을 따라 힘차게 달렸습니다. 씽씽 달리는 차도, 사람도 없으니 마음껏 달리기에 아주 좋습니다. 상쾌한 공기가 코끝을 간질이고, 싱그러운 풀 내음이 가득한 시골 마을. 얼마 전 주인 할아버지를 따라 도시에서 이곳으로 이사 온 구름이는 새 보금자리가 정말 좋았습니다. 폭신한 흙으로 덮인 시골길에는 구름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많았습니다. 제 몸만 한 구슬을 굴리는 쇠똥구리, 나풀거리는 나비와 바람 따라 춤추는 꽃들…. 호기심 많은 구름이에겐 그야말로 천국이었지요.
오늘도 가뿐한 달리기로 하루를 시작한 구름이는 수풀에서 폴짝거리는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개구리였습니다. 구름이가 가까이 다가가자, 개구리는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재빨리 달아났습니다.
“어, 기다려. 나랑 놀자!”
구름이는 개구리를 따라 수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무성한 풀을 헤치고 나가자 못 보던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시내가 흐르고 멀리 갈대숲과 둑도 보였습니다. 구름이는 어느새 개구리는 까맣게 잊고 신나게 냇가를 구경했습니다. 보물을 찾는 듯 고개를 숙이고 킁킁거리며 돌아다녔지요. 그때, 느닷없이 “꽥!” 하는 소리가 귀청을 때렸습니다. 깜짝 놀란 구름이는 눈을 꼭 감고 소리쳤습니다.
“으악, 누구야?”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구름이는 한쪽 눈을 살짝 떴습니다. 오리 한 마리가 부리를 꾹 다물고 서 있었습니다.
“오리였구나. 갑자기 소리쳐서 놀랐잖아.”
“나야말로 못 보던 강아지가 돌아다녀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앗, 미안. 나는 얼마 전에 이사 온 구름이라고 해.”
“구름이? 강아지 이름이 뭐 그래?”
구름이는 털이 구름처럼 새하얗고 보송보송해서 할아버지가 붙여주신 이름입니다. 구름이가 열심히 설명하는데, 오리는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이나 싶더니 이제 그만 가달라며 홱 돌아섰습니다. 시무룩해진 구름이가 어디 가느냐고 물었지만, 오리는 따라오지 말라고 으름장만 놓았습니다. 그러고는 갈대숲을 지나 둑 위로 올라가 모습을 감췄습니다.
‘치, 뭐 저렇게 도도한 오리가 다 있담.’
구름이는 입을 삐죽거리며 오던 길을 되돌아갔습니다.
며칠 후, 구름이가 마루에 엎드려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였습니다. 일하고 돌아온 할아버지가 신발을 벗으며 늘 그렇듯 구름이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구름아, 집에 오는 길에 보니까 둑에 사는 오리가 알을 낳았더라.”
구름이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할아버지는 구름이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사람이 다가가도 꼼짝 않고 알을 지키더라니까. 아마 한 달 정도 지나면 새끼를 볼 수 있을 거야.”
‘그때 본 그 오리?’
구름이는 당장 오리를 찾아가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둑으로 달려갔지요.
“오리야, 오리야!”
하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소리와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만 날 뿐, 사방이 고요했습니다. 구름이는 코를 킁킁대며 오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둥지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수풀 사이로 오리 뒷모습이 보이자, 구름이는 크게 말했습니다.
“찾았다. 오리야, 엄마가 되었다며? 축하해!”
오리가 화들짝 놀라며 속삭였습니다.
“쉿!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주인 할아버지한테 들었어. 저, 그런데 혹시….”
구름이는 오리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네 알, 한 번만 봐도 될까? 몇 개인지도 궁금하고….”
“뭐? 함부로 둥지를 찾아온 것도 모자라 알을 보겠다고? 절대 안 돼. 어서 돌아가!”
오리는 단호했습니다. 더 말했다가는 당장이라도 부리로 콕 쪼아버릴 기세였지요. 구름이는 풀죽은 채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이곳에 이사 와서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친구인데 문전박대를 당하니, 무척 속상했습니다. 이후로 한동안 오리를 찾아가지 않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산책에 나선 구름이는 수풀 사이에서 폴짝거리는 개구리를 봤습니다. 문득 엄마 오리가 떠올랐습니다.
‘지금쯤 새끼들이 태어났을까?’
괜히 찾아갔다가 또 싫은 소리만 들을까 걱정됐지만, 오리가 잘 지내고 있는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구름이는 오랜만에 냇가로 가 갈대숲 근처에서 서성였습니다. 그러다 둑 위를 걸어오는 오리를 발견했습니다. 그 뒤로 자그맣고 보송보송한 새끼 오리들이 올망졸망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구름이는 자기도 모르게 멈춰 서며 말했습니다.
“우아, 너무너무 귀엽다!”
오리는 부지런히 걷다가도 틈틈이 뒤를 돌아보며 새끼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살폈습니다. 그리고 둑 끝에 다다르자 날개를 퍼덕이며 밑으로 뛰어내렸습니다. 새끼 오리들도 엄마를 보고 용기를 내 하나둘 아래로 뛰어내렸지요. 새끼 오리가 뛰기에는 둑이 좀 높아, 구름이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습니다. 다행히 모두 무사히 갈대숲으로 내려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얼른 가서 만나봐야겠다. 아기들 이름은 뭐라고 지었을까?’
구름이는 신나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갈대숲에서 엄마 오리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습니다. 구름이는 얼른 소리가 난 쪽으로 뛰었습니다. 바람을 타고 낯선 동물 냄새가 풍겼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들고양이 한 마리가 오리들이 가는 길목을 막고 서 있었습니다.
“이게 웬 떡이람? 먹음직스러운 오리들과 딱 마주쳤네.”
오리는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아기들을 자신의 날개 뒤로 감췄습니다.
“뭐라고? 당장 비키지 못해?”
고양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입맛을 다시며 오리를 향해 다가갔습니다. 오리는 뒷걸음질하면서도 새끼들을 놓치지 않고 매섭게 고양이를 노려봤습니다.
“가까이 오기만 해봐. 부리로 수염을 다 뽑아줄 테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고양이가 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구름이는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왈왈! 당장 물러서!”
고양이는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습니다. 구름이는 낮게 으르렁거렸습니다.

“내 친구에게 뭐 하는 짓이야? 저리 가!”
구름이는 오리들을 보내주지 않으면 혼쭐을 내주겠다며 있는 힘껏 짖었습니다. 구름이의 기세에 움찔거리던 고양이는 결국 멀리 달아났습니다.
“한 번만 더 오리들을 괴롭히면 가만 안 둘 거야!”
고양이가 갈대 사이로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오리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 곁을 새끼들이 둘러쌌습니다.
“오리야, 괜찮아?”
“정말 고마워. 네가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어.”
엄마 오리는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새끼들을 챙겼습니다. 구름이는 엄마의 날개 아래 모인 새끼들이 세상 누구보다 편안하고 행복해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고양이에게 둥지를 들킬까 봐 그동안 못 오게 한 거였어. 내가 퉁명스럽게 대해서 속상했지?”
“그랬구나. 그런 줄도 모르고…. 나야말로 미안해.”
구름이는 배시시 웃으며, 고양이 앞에서도 기죽지 않았던 오리의 용기를 칭찬했습니다. 새끼 오리들도 동의한다는 듯 꽥꽥거렸습니다. 무사히 보금자리를 찾은 새끼 오리들은 엄마의 보호 아래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구름이도 매일같이 놀러와 함께 물장구를 쳤습니다. 고양이가 오는지 망도 봐주고요. 엄마 오리와 구름이는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겨울이 되었습니다. 마당에 나와 처마 끝에 달린 고드름을 떼던 할아버지는 구름이가 쪼르르 대문 밖을 나서는 것을 보았습니다.
‘허허, 녀석. 오늘도 오리한테 가나 보네. 가만, 시내가 꽁꽁 얼었을 텐데.’
할아버지는 무언가 떠오른 듯 창고에서 널빤지 몇 장을 꺼냈습니다. 망치질 몇 번으로 뚝딱뚝딱 새 집을 완성하고는, 오리가 사는 냇가에 놓고 안에 지푸라기를 넉넉히 깔았습니다.
“구름이 친구들이니까 겨우내 건강히 지내라고 주는 선물이다.”
그 말에 으쓱해진 구름이는 신나서 콩콩 뛰었습니다. 아늑하고 따뜻한 집을 얻은 오리들도 즐겁게 조잘거리며 할아버지 발치를 맴돌았지요. 오리들이 모두 새 집에 들어갔을 때, 하늘에서 눈송이가 떨어졌습니다.
“우리도 집에 가자, 구름아!”
할아버지를 따라 집으로 향하는 구름이의 발걸음이 날 듯이 가볍습니다. 가지마다 구름이를 닮은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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