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꼬끼오!”
고요한 새벽 공기를 가로지르는 아빠 닭의 기상 외침에 눈을 비비며 일어난 뽀리. 뽀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니 마당의 움푹 팬 바닥에 고인 물을 몇 모금 삼키고는 목청을 가다듬었습니다.
“음음, 에헴. 삐악, 삐악!”
잠자던 순둥이 엄마가 실눈을 한번 뜨고는 다시 잠에 빠졌습니다. 강아지 순둥이는 뽀리의 친구입니다.
“아직 발성 연습이 부족해. 그래도 언젠가는 아빠처럼 멋있게 기상나팔을 불 수 있겠지? 암, 내가 누군데! 난 힘센 병아리다! 삐악, 삐악.”
“엄마, 뽀리 때문에 시끄러워요.”
엄마 품에 있던 순둥이가 낑낑대며 잠투정을 하자 순둥이 엄마가 다시 눈을 떴습니다.
“우리 순둥이 깼어? 엄마가 자장가 불러줄게, 더 자렴. 잘 자라 우리 아가….”
순둥이가 눈을 꼭 감고 행복한 얼굴로 엄마 품에 더욱 깊이 파고들려고 할 때였습니다.
“야, 아직도 자냐?”
“에구머니나!”
놀란 순둥이 엄마가 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순둥이도 엉겁결에 따라 일어섰습니다.
“뽀리, 기척도 없이 와서 놀라게 하는 건 실례란다. 그리고 순둥이는 아직 더 자고 싶어하는걸. 그러니 좀 이따 재밌게 놀려무나.”
뽀리는 부리를 삐죽이며 돌아섰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닭장으로 돌아오는데, 마당에 떨어진 쌀알을 쪼아 먹던 참새가 말을 걸었습니다.
“안녕, 난 짹짹이야.”
“난 뽀리라고 해. 그럼 바빠서 이만….”
뽀리가 새침하게 대답하고 지나치려는데 짹짹이가 반가운 기색으로 말했습니다.
“우리 어딘가 모르게 닮았다, 그치?”
“아니, 전혀 안 닮았는데? 내 털은 뽀송뽀송하고 화사하지만 네 털은 억세고 칙칙하잖아!”
“그, 그런가?”
뽀리가 정색하며 말하자 짹짹이가 무안한 듯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뽀리는 그런 짹짹이를 뒤로하고 홱 돌아섰습니다.
#2
“어디 갔다 왔니?”
“순둥이한테요. 순둥이 엄마가 순둥이 더 자야 한다고 이따가 오래요.”
“그래, 다음부터는 아침 해가 더 솟아오르면 순둥이 집에 가려무나. 배고프지? 어서 먹으렴.”
아빠가 뒤뜰에서 잡아 온 벌레를 엄마와 뽀리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엄마는 곧 깨어날 동생들을 품고 있습니다.
“뽀리, 이제 조금만 있으면 동생들을 만날 수 있겠어.”
“동생들이 나오면 제가 지켜줄 거예요. 누가 괴롭히려고 하면 이 단단한 부리로 확 쪼아서 물리칠 거예요.”
“그래, 뽀리가 있어서 든든하구나.”
아침을 배불리 먹은 뽀리는 뭘 할까 궁리하다 마당 건너편 외양간에 사는 염소 할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지난번에 염소 할아버지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아침잠이 없어졌다며 언제든 놀러 오라고 했거든요.
“염소 할아버지, 계세요?”
“오, 뽀리구나. 아침부터 어쩐 일인고?”
“심심해서요. 순둥이는 아직 안 일어나고….”
“저기 저 토토도 심심한 모양인데 같이 놀지 그러냐?”
염소 할아버지가 인자한 표정으로, 토끼장에서 풀을 뜯고 있는 토토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토토랑 놀면 재미없어요. 자꾸 멀리뛰기 놀이만 하자고 해요. 어차피 자기가 이길 거면서.”
“허허, 너도 네가 이기는 놀이를 하고 싶은 게로구나.”
“그럼요. 저는 힘센 병아리거든요.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요, 제가 힘이 무지 세서 딱딱한 알을 제 힘으로 깨고 나왔대요!”
“그으래? 대단한걸.”
“네, 그저께는 대문 앞을 지나던 고양이가 다가와 노려보길래 제가 날개를 활짝 펴서 몸을 부풀린 채로 크게 소리를 냈더니, 무서운지 슬그머니 도망하더라고요. 큭큭.”
“허허, 뽀리는 정말 힘센 병아리가 맞구나.”
염소 할아버지는 고양이가 뽀리 뒤에 있는 어미 닭의 기세에 눌려 자리를 피했다는 걸 알면서도 속아주었습니다. 그러고는 자부심이 가득한 뽀리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며, 풀잎에 맺힌 이슬이 마를 때까지 말동무가 되어주었습니다.
#3
“꼬끼오!”
아빠 닭의 기상 외침에 뽀리는 들뜬 마음으로 눈을 떴습니다. 동생들이 알에서 깨어나는 날이거든요.
“엄마, 동생들은 언제 나와요?”
“글쎄, 나오려고 준비 중인 것 같으니 조금 기다려보자꾸나.”
뽀리는 친구들을 만나러 가지 않고 닭장을 지켰습니다. 동생들이 언제 나올지 몰라 뽀리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는데, 그날따라 참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습니다.
“짹짹, 짹짹!”
“아이, 시끄러워!”
뽀리는 닭장을 박차고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짹짹이와 친구들이 바닥에 떨어진 좁쌀을 부지런히 쪼고 있었습니다.
“야, 좀 조용히 해. 오늘 우리 동생들이 나올 거란 말이야.”
“아, 미안해. 그런데 네 동생들이 나온다고?”
“그래, 지금 알에서 나오려고 준비 중이야.”
“나도 구경하러 가도 되니?”
“뭐, 안 될 건 없지. 그럼 따라와.”
뽀리가 앞서고 짹짹이가 뒤를 따랐습니다. 그 모습을 본 순둥이와 토토도 합류했습니다. 큰 구경거리라도 난 듯, 닭장 앞에 여러 동물이 모였습니다. 뽀리는 친구들과 함께 동생이 나오기만을 숨죽인 채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다 지친 순둥이가 졸며 고개를 꾸벅 떨어뜨릴 때였습니다. 알 하나가 살짝 움직였습니다. 이어서 다른 알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움직이던 알에서 반투명한 부리가 튀어나오면서 작은 구멍이 생겼습니다. 구멍이 점점 커지며 알이 반으로 쪼개지자, 그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병아리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렇게 차례차례 깨어난 병아리들이 목청껏 울어댔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주인아주머니가 다가왔습니다.
“하나, 둘, 셋, 넷.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한 마리가 못 깨어나네. 그래, 너는 엄마 곁에 남으렴.”
주인아주머니가 부화한 병아리들을 데려갔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알 하나는 조금씩 움직이기만 할 뿐 좀체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뽀리 엄마가 부리로 알을 톡 하고 쪼았습니다. 알에 좁쌀만 한 구멍이 생겼습니다. 안에 있는 병아리도 작은 부리로 그 틈을 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몇 번 쪼다가 힘이 달리는지 잠잠했습니다. 뽀리 엄마는 안타까운 듯 알을 한 번 더 쪼았습니다. 병아리도 다시 바둥거리며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알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와!”

힘겹게 부화에 성공한 병아리를 보며 뽀리와 짹짹이, 순둥이와 토토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4
뽀리는 부화한 동생을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염소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동생의 부화 목격담을 재잘거리며 전하는 뽀리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던 염소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오늘 깨어난 동생이 마치 너 같구나.”
“저요?”
“그래. 다른 형제들은 이미 깨어났는데, 너는 한참이 지나도 깨어나질 않아 주인아주머니가 특별히 널 어미 곁에 두었어. 어미는 밖에서, 너는 안에서 알을 깨며 부화했단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도 감격스러웠지.”
“아니에요. 엄마가 그랬어요, 제가 혼자서 알을 깨고 나왔다고요. 힘이 엄청 세다고요.”
“그건 말이지… 네 엄마가, 연약한 네가 씩씩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한 거야. 너를 사랑하니까.”
뽀리는 염소 할아버지가 한 말을 곰곰이 되뇌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는 아직 털이 마르지 않은 동생을 따뜻한 품으로 안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무척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염소 할아버지의 말처럼 동생의 모습이 마치 자신의 모습으로 겹쳐 보였습니다.
뽀리의 시선이 문득 엄마의 부리에 멈추었습니다. 엄마의 부리는 긁히고 닳아 있었습니다. 엄마는 그 부리로 땅을 파서 먹이를 찾고, 큰 먹이는 먹기 좋도록 잘게 부수어 주었습니다. 고양이와 까마귀를 쫓아낼 때는 부리를 마구 휘두르며 위협했습니다. 그리고… 깨어나지 못하는 알을 쪼기도 했지요. 그 덕에 자신과 동생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엄마의 상처 난 부리를 처음으로 자세히 본 뽀리는 울컥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순둥이와 토토가 뽀리의 우는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힘센 병아리는 울지 않는다고 했던 뽀리의 말이 생각났거든요. 뽀리는 그날 동생과 함께 엄마 품에 폭 안겨 오랫동안 엄마의 온기를 느꼈답니다.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