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디가 뾰로통한 얼굴로 신발을 신은 채 현관에 서 있습니다. 벽에 걸린 시계를 흘끔 쳐다보고는 발을 탁탁 구릅니다.
“클로이! 도대체 언제 출발할 거야?”
“음, 이제 옷만 갈아입으면 돼.”
방금 양치질을 마친 클로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느긋하게 방으로 향했습니다. 아무래도 채비를 서두를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신디는 문에 기대어 한숨을 푹 쉬었습니다. 클로이가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아빠가 열 시쯤 간다고 하셨잖아. 아직 십 분이나 남았는데 왜 그래?”
클로이의 말에 신디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쳇, 거북이가 토끼를 이겼다는 동화는 들어봤어도, 네가 준비를 십 분 만에 한단 얘기는 처음 듣는다.”
“내가 거북이보다 느리다는 말이야?”
발끈한 클로이는 ‘암튼 성격 급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하며 푸념 섞인 혼잣말을 합니다.
모처럼 맞이한 연휴 첫날, 쌍둥이 신디와 클로이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딸기 농장 일을 도우러 시골에 가기로 했습니다. 사실 부모님이 아이들을 시골에 보내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걸핏하면 다투는 둘이 몸을 부대끼며 일하다 보면 사이가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해서지요.
바지런한 신디의 재촉에 천성이 여유로운 클로이가 순순히 따라줄 리 없으니, 아니나 다를까 아침부터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그 모습에 엄마 아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시골로 가는 차 안에서, 엄마는 아이들에게 싸우지 말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잘 도와드려야 한다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아빠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사이좋게 지내겠다는 약속까지 받았습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시골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습니다. 농장에는 빨갛게 무르익은 딸기가 주렁주렁 열려 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저희 왔어요!”
신디와 클로이는 할머니 품으로 달려가 안겼습니다. 손녀들의 애교 섞인 인사에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할머니가 차려주신 점심을 든든히 먹고 난 뒤, 아빠가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제 저희 올라가봐야 할 것 같아요. 며칠 있다가 애들 데리러 올게요.”
“그래. 맛있는 것 해놓고 기다리마.”
할머니는 아빠에게 싱싱한 과일을 한가득 챙겨주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고, 쌍둥이는 할머니와 함께 가져온 짐을 정리했습니다. 그때, 할아버지가 밀짚모자를 쓰고 농기구를 챙기는 게 보였습니다. 신디가 말했습니다.
“앗, 농장에 가시나 보다. 할머니, 우리도 같이 갈래요!”
“원, 녀석도. 도착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몸이 근질근질한 게야?”
신디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습니다. 클로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습니다.
‘농장 가는 걸 왜 서두르는 거야? 내일부터 실컷 일할 텐데.’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아이들도 농장에 데려가라고 얘기하는 사이, 클로이가 팔꿈치로 신디의 옆구리를 툭 치고는 혼자 가라고 속삭였습니다. 자기는 할머니가 요리하는 걸 구경하겠다고요. 결국 신디는 할아버지와 농장에 가고, 클로이는 할머니의 집안일을 도우며 오후를 보냈습니다.
그날 저녁, 네 가족은 식탁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보니까 신디가 손이 아주 빠르던데.”
“클로이도 만만치 않아요. 무슨 일이든 야무지게 잘 해낸다니까요.”
할아버지 할머니의 칭찬에 쌍둥이는 한껏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내일은 농장에 다녀온 뒤 흠집이 있어 팔지 못하는 딸기로 잼과 머핀을 만들 거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머핀은 마을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잼은 신디와 클로이가 집에 돌아갈 때 주실 거라고요. 둘은 설레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 날, 할아버지 할머니와 쌍둥이 자매가 농장에서 딸기를 따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할머니가 갑자기 무릎을 탁 치며 말했습니다.
“영감, 내일모레 마트에 배달해야 할 딸기가 몇 상자나 되지요?”
할머니는 포장재가 떨어졌다며 난감해했습니다. 얼른 차로 읍내 장터에 다녀오면 되지 않겠느냐는 할아버지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할머니가 입을 열었습니다.
“어쩔 수 없구먼. 신디랑 클로이, 잘 들어라.”
할머니는 둘에게 잼과 머핀을 만들 준비를 부탁했습니다. 냉동실에 큼지막한 버터가 있으니 꺼내놓고, 할아버지가 골라둔 딸기를 잘 씻어서 꼭지를 따놓으라고요. 혹시 시간이 남으면 찬장에서 밀가루를 꺼내 체에 곱게 쳐보라고 했습니다. 신디와 클로이는 비장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배웅을 마친 쌍둥이는 주방으로 쪼르륵 달려갔습니다. 클로이가 할머니에게 배운 대로 흐르는 물에 딸기를 서너 개씩 씻자 신디가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아이, 답답해. 이 많은 걸 언제 다 씻으려고. 그냥 한꺼번에 하자!”
신디는 딸기 바구니를 통째로 들더니 물줄기 아래에 대고 힘차게 흔들었습니다. 딸기들은 서로 부딪혀 뭉개지더니 바구니 밖으로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깜짝 놀란 클로이가 신디를 말렸지만, 어차피 잼으로 만들 거라 상관없다는 말에 그냥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클로이는 신디에게 딸기를 맡기고 밀가루 체질에 나섰습니다. 체에 밀가루를 담고 살살 치는데, 워낙 조심스럽게 하다 보니 속도가 더뎠습니다. 골똘히 생각하던 클로이는 마음을 굳게 먹고 체를 힘껏 쳤습니다. 그러자 밀가루가 주변으로 확 날렸습니다.
“에취!”
체 쳐놓은 밀가루가 사방으로 퍼졌습니다.
“에잇, 뭐 하는 거야. 힘 조절을 잘해야지.”
신디가 인상을 찡그리며 손을 휘휘 내저었습니다.
“힘 조절? 딸기를 다 뭉개놓고 무슨!”
“뭐라고?”
둘은 티격태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집에 돌아온 할아버지 할머니는 깜짝 놀랐습니다. 듬성듬성 꼭지를 딴 딸기들은 뭉개진 채 쌓여 있고, 식탁은 온통 밀가루로 덮여 있었으니까요. 버터는 냉동실에서 꺼내지 않아 아직도 꽁꽁 언 채였습니다. 둘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야무진 숙녀분들이 이게 무슨 일이람.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나서야겠구먼!”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팔을 걷어붙이고 함께 수습에 나섰습니다. 할머니가 꼼꼼한 솜씨로 딸기를 손질하는 사이, 할아버지는 전자레인지에 버터를 녹이고 밀가루를 체질했습니다. 이후 할아버지는 큰 냄비에 딸기와 재료들을 넣고 휘휘 저어가며 졸였고, 할머니는 옆에서 밀가루와 버터로 반죽을 시작했습니다. 마치 한 사람처럼 움직이며 서로 도와 일하는 모습에 쌍둥이는 감탄했습니다. 달착지근한 딸기잼 향기와 머핀이 익어가는 고소한 냄새가 순식간에 주방에 퍼졌습니다.
“어떠냐, 둘이 손발이 척척 맞지? 우리도 예전에는….”
할아버지의 말을 할머니가 가로챘습니다.
“정말 무슨 일을 해도 삐걱거렸단다. 할아버지 성격이 얼마나 급한지, 맞춰주느라 애 좀 썼지!”
“난 할멈이 매사에 꼼꼼해서 답답했다니까? 그래도 그 세심함 덕을 꽤 봐. 지금까지 말이야. 허허.”
할머니 할아버지는 서로를 다정하게 쳐다보았습니다. 할머니는 서로 힘을 합치면 어떤 일이든 더 쉽고 즐겁게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때마침 오븐에서 딸기 머핀이 구워져 나왔습니다. 할아버지가 머핀을 꺼내는 사이, 할머니는 방에서 종이상자와 리본을 가져왔습니다.
“자, 상자에 머핀을 세 개씩 넣고 리본으로 예쁘게 묶어주렴. 우리는 잼을 포장하마.”
신디와 클로이 사이에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신디가 머뭇머뭇 입을 뗐습니다.
“아까 너한테 답답하다고 해서 미안해. 너처럼 꼼꼼히 씻었으면 딸기가 뭉개지지 않았을 텐데.”
“나도 네가 한 일을 비아냥거려서 미안. 우리 잘해보자.”
클로이가 화해의 악수를 청하자 신디는 아직은 새침한 얼굴로 그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다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신디는 자기가 상자에 머핀을 담겠다고 나섰습니다. 리본은 꼼꼼한 손길이 필요하니 클로이가 예쁘게 묶을 것 같다면서요. 신디가 빠른 손놀림으로 머핀을 다 담자, 클로이는 리본 묶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신디도 곧잘 따라했습니다. 근사하게 포장된 머핀 상자가 점점 늘어갔습니다.
“와, 같이 하니까 진짜 잘되네!”
“그러게. 진작 이렇게 할 걸 그랬다. 그치?”
할아버지 할머니는 둘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쌍둥이는 예쁘게 포장한 머핀을 이웃들에게 전하는 일까지 훌륭히 해냈습니다.
며칠 후, 엄마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러 왔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이들 칭찬을 듬뿍 했습니다. 사이좋게 지내며 일을 많이 도와줬다고요. 엄마는 짐짓 의심의 눈초리로 신디와 클로이를 쳐다봤습니다. 둘은 시치미를 떼고 엄마를 향해 엄지를 척 올렸습니다. 그리고 부모님 몫으로 준비해둔 딸기 머핀을 꺼냈습니다. 특별히 초콜릿으로 쌍둥이의 웃는 얼굴을 그려 넣은 머핀이었습니다. 엄마 아빠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습니다. 잘 익은 딸기처럼 무르익은 봄, 싱그러운 초록으로 물든 시골에서 쌍둥이네 가족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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