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먹 위의 나무늘보


원숭이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어깨에 짊어진 자루에는 새콤달콤 맛있는 과일이 한가득입니다. 오후 내내 부지런히 나무를 오가며 딴 것들이지요. 먹을거리를 보고 기뻐할 가족을 생각하니 자루가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원숭이는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어느새 날이 저물었는지, 빽빽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빛이 희미해졌습니다. 실눈을 뜨고 방향을 살피던 원숭이는 가까운 나무 그늘에서 해먹을 발견했습니다. 그 위에는 낯선 동물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나뭇가지를 붙잡은 채 잎을 우적우적 씹고 있었습니다. 원숭이는 가지 사이에서 몸을 바짝 낮추고 말했습니다.

“거기 누구야!”

정체 모를 동물은 바로 나무늘보였습니다. 나무늘보가 깨어 있는 시간보다 자는 시간이 훨씬 많다 보니, 나무늘보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숲속 동물들이 꽤 있었습니다. 원숭이도 그중 하나였지요.

나무늘보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한 원숭이는 나무늘보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갔습니다. 그제야 기척을 느낀 나무늘보가 팔을 조금씩 들어 올리며 천천히 입을 뗐습니다.

“안…녀엉….”

원숭이는 처음 보는 나무늘보의 생김새에 깜짝 놀랐습니다. 눈 주위는 꺼멓고, 온몸이 북슬북슬한 털로 뒤덮인 데다 팔만 무척 길었으니까요. 게다가 손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날카로운 손톱이 길게 나 있었습니다. 나무늘보는 기지개를 켜며 늘어지게 하품했습니다. 그러다 중심을 잃어서 몸이 기우뚱하며 공중에 손을 휘휘 내저었습니다. 그 모습에 원숭이는 나무늘보가 자신을 위협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겁에 질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쳤지요.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앵무새를 만났습니다.

“어딜 그렇게 급히 가세요?”
“이상한 동물을 만났는데, 무서워서 도망치는 길이에요.”

원숭이는 방금 만난 동물에 대해 말했습니다. 앵무새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털북숭이에 긴 손톱, 혹시 나무늘보 아니에요? 해먹까지 쳐놓고 종일 잠자는 동물요!”

앵무새는 자기에게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습니다. 이사를 앞두고 새 둥지 틀 곳을 찾는데,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웬 그물이 있더랍니다. 알고보니 나무늘보가 사는 해먹이었다고요. 앵무새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며칠을 지켜봤는데, 무슨 꿍꿍이인지 밤에만 꼼지락꼼지락하더라고요. 덩치가 꽤 큰데 나뭇잎만 먹는 것도 이상하고. 어딘지 모르게 수상해요.”

원숭이도 덩달아 심각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원숭이는 아내와 아이들을 불러놓고 나무늘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나무늘보를 보면 가까이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요. 원숭이의 두 아들, 몽이와 콩이는 바나나를 우물거리며 알겠다고 답했습니다.



며칠 후, 몽이와 콩이가 파파야를 던지며 놀고 있을 때였습니다. 몽이가 던진 파파야가 포물선을 그리며 멀리 날아가더니 “퍽!” 소리를 내며 어딘가에 떨어졌습니다. 콩이는 파파야를 주우려고 얼른 소리가 난 쪽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몽이는 동생이 사라진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거기서 뭐 해? 파파야는 찾았어?”

콩이는 가지 위에 얼어붙은 듯 꼼짝 않고 서 있었습니다.

“아이참, 안 오고 뭐 하냐니까.”

투덜거리며 다가간 몽이는, 나무 아래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말로만 듣던 나무늘보였습니다! 난데없이 날아온 파파야에 맞고 잠에서 깬 나무늘보는, 얼굴을 찡그리며 이마에 난 혹을 만지고 있었습니다. 콩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형의 등 뒤에 숨었습니다. 몽이는 애써 동생을 다독이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습니다.

“호, 혹시 나무늘보인가요?”

나무늘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고는 찡그린 인상을 펴면서 느릿느릿 입을 열었습니다.

“난… 괜찮아.”

몽이와 콩이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나무늘보는 놀다 보면 그럴 수 있다며 긴 팔을 쭉 뻗어 파파야를 건넸습니다. 가지고 놀던 공이 찌그러져서 어떡하냐고 걱정까지 하면서요. 몽이는 당황한 나머지 사과하는 것도 잊은 채 나무늘보가 건네는 파파야를 받았습니다. 나무늘보는 씨익 미소 지으며 몽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다시 잠에 빠졌습니다. 몽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형! 나는 나무늘보가 형을 때릴 줄 알았어.”

콩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무늘보가 그렇게 무서운 동물은 아닌 것 같다고 했습니다. 몽이도 맞장구쳤습니다. 말과 행동이 느려서 그렇지, 이해심이 깊은 것 같다고요. 형제는 오늘 일어난 일을 일단 비밀에 부치기로 했습니다. 파파야 던지기 놀이를 하다가 나무늘보를 만났다고 하면 부모님이 영영 놀이를 못 하게 할지도 모르니까요.



다음 날, 원숭이 가족은 다 같이 바나나를 따러 집을 나섰습니다. 엄마 아빠가 몽이와 콩이에게 먹이 구하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부지런히 앞서가던 아빠 원숭이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습니다.

“자, 이게 바나나 나무란다. 잘 익은 걸 따려면 꽤 높이 올라가야 하니까 조심하렴.”
“어? 여기는 어제 우리가 나무늘….”
“이야, 벌써 바나나 향기가 나는 것 같아요!”

몽이는 얼른 콩이의 말을 잘랐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바나나 나무에 나무늘보의 해먹이 걸려 있었습니다. 아래를 흘깃 내려다보니 나뭇잎 사이로 쿨쿨 자는 나무늘보가 보였습니다.

‘우리 때문에 깨면 어떡하지?’

몽이는 잎사귀 하나라도 떨어질까 조심하며 나무를 올랐습니다. 엄마 아빠 원숭이는 혹시라도 아이들이 발을 헛디딜까 봐 아래에서 지켜보며 뒤따랐지요. 조금씩 오르다 보니 어느새 주렁주렁 열린 먹음직스러운 바나나가 보였습니다. 콩이는 환호하며 나뭇가지 위에서 방방 뛰었습니다. 엄마가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다며 조심하라고 핀잔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자루에 바나나를 담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가지 위에 얹어놓은 자루가 가득 찰 즈음, 아빠가 콩이를 불렀습니다.

“콩이야, 이리 와서 자루 좀 잡아줄래?”

신이 난 콩이는 꼬리를 흔들며 아빠가 있는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발을 헛디뎌 순식간에 가지에서 미끄러졌습니다.

“안 돼!”

몽이가 가까스로 콩이를 붙잡았지만, 이내 같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깜짝 놀란 엄마 아빠는 쏜살같이 나무를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내려가도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엄마 원숭이는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엄마 아빠! 우리 여기에 있어요!”


그때, 나무 아래서 몽이와 콩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푹신한 진흙 바닥에 떨어진 둘은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나무늘보였습니다. 몽이와 콩이가 나무늘보 위로 떨어지면서 해먹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나무늘보는 눈을 천천히 껌뻑이며 두 아이를 꼭 안고 다친 데가 없는지 살폈습니다. 아빠 원숭이는 당장이라도 나무늘보를 칠 것처럼 주먹을 쥐고 말했습니다.

“우리 애들을 내려놔요!”

몽이는 얼른 나무늘보의 품에서 나와 아빠를 말렸습니다.

“아빠, 잠깐만요! 사실 어제 콩이랑 놀다 실수로 나무늘보한테 파파야를 던졌어요. 우리 때문에 머리에 혹이 났는데도 용서해줬어요. 떨어진 파파야를 주워주기까지 했다니까요!”

콩이도 거들었습니다.

“맞아요. 나무늘보는 무서운 동물이 아니에요. 지금도 나무늘보가 아니었다면 큰일이 났을 거예요!”

엄마 아빠는 생각지 못한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들이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나무늘보가 조용히 말하며 나무를 향해 천천히 기어갔습니다. 아빠 원숭이는 긴장을 풀고 나무늘보에게 사과했습니다. 엄마 원숭이는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랐습니다.

“정말 죄송해요. 우리 아이들 때문에…. 그런데 해먹이 끊어져서 어쩌죠?”

나무늘보의 눈이 반달처럼 접히며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습니다.

“한숨 자고… 생각해… 보려고요.”

나무늘보는 몽이와 콩이에게 앞으로 나무를 탈 때 조심하라고 말하고는 긴 손톱으로 능숙하게 나뭇가지에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날 이후, 원숭이 가족은 며칠 동안 부지런히 나무껍질을 까며 바삐 손을 놀렸습니다. 나무늘보에게 선물할 해먹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완성한 해먹을 들고 바나나 나무 밑으로 가던 중 산책을 나온 앵무새와 마주쳤습니다. 엄마 원숭이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앵무새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나무늘보가 몽이와 콩이 생명의 은인이라며 예쁜 깃털 몇 개를 뽑아 해먹을 장식해주었지요.

나뭇잎 사이로 은은한 달빛이 스며들 즈음, 부엉이 소리에 나무늘보가 잠에서 깼습니다. 그런데 눈앞에 웬 근사한 해먹이 걸려 있었습니다. 나무에 매달려 자느라 팔이 뻐근하던 차에 정말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멋진 해먹이 어디서 났을까, 한참 생각하던 나무늘보는 알겠다는 듯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고는 몸을 움직여 천천히 해먹 위에 누웠습니다. 이전 것보다 더 편안했습니다. 나무늘보는 아늑한 해먹에서 한숨 더 잠을 청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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