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모니카 선생님


#1
오늘이 병실 침대에서 잠드는 마지막 날이라니!

이 밤이 지나면 드디어 집으로 가요. 아직 실감이 안 나요. 집에서 잠자고, 씻고, 밥 먹는 기분은 어떨까요? 집은 그대로일까요? 병원에 열두 달 넘게 있었더니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얼마 전 엄마가 제 방을 깨끗이 정리하고 이불도 새것으로 바꿨대요.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엄마가 저보다 더 들떠 보였어요.

낮에는 아빠가 커다란 가방을 가져와 짐을 싸셨어요. 아빠가 저를 간호하느라 병원에 있으면서 사용했던 물건들, 제가 학교에 못 가는 대신 공부했던 글쓰기, 수학, 과학 책들…. 많은 짐을 가방에 꾹꾹 눌러 담으면서, 아빠가 제게 특별히 좋아하는 물건 세 개만 말해보라고 했어요. 저는 한참 고민하다가 세 개를 정했어요. 하나는 조립 자동차예요. 지난 생일 때 병원에 있으면서 삼촌한테 받은 선물인데요, 조립하는 데 장장 세 시간이나 걸렸어요. 엄마가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했지만 끝까지 제 힘으로 완성해서 엄청 뿌듯했어요.

그다음은 루루를 닮은 인형이에요. 루루는 제가 키우던 고양이인데요, 병원에 입원한 뒤로 작은이모가 맡아 기르고 있어요. 언젠가 이모가 루루를 닮은 인형을 발견했다며 선물해 주셨어요. 가끔 영상 통화나 사진으로 루루를 만나곤 했는데, 안 본 사이 덩치가 두 배나 커졌더라고요. 제가 집에 가면 이모가 루루를 데리고 온댔는데, 루루가 저를 알아볼지 궁금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건요….

“빈이가 내일 퇴원한다고?”
“네, 어르신.”
“아이고, 잘됐네. 그간 매일 보다가 헤어지자니 아쉬워. 그래도 빈이네한테는 얼마나 잘된 일이야?”
“그동안 저희 빈이한테 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별이도 많이 좋아졌으니 머지않아 퇴원할 수 있을 거예요.”
“암, 그래야지.”

한별이는 옆 병실에 있는 아이예요. 저와 나이도 같고, 키도 비슷하고, 아픈 곳도 같아요. 게다가 좋아하는 것도 비슷해서 이야기가 잘 통해요. 가족끼리도 서로 잘 지내고요. 둘 다 퇴원하게 되면 서로의 집에 놀러 가기로 약속했는데, 이제 한별이만 퇴원하면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어요. 아빠랑 얘기를 한참 나누신 한별이 할머니는 내일 아침 일찍 한별이 엄마와 교대하기로 해서 제가 퇴원하는 모습을 볼 수 없을 것 같다며 미리 작별 인사를 건네시고는 제 머리를 쓰다듬고 가셨어요.

사실 낮에 아빠와 짐을 다 싼 뒤, 친하게 지내던 형 누나 동생들과 작별 인사를 하러 병동 이곳저곳을 다녔어요. 제가 작별 인사를 하러 간다고 하자 아빠가 하나씩 나눠 주라며 쟁반에 쿠키를 한가득 담아 주셨지요. 제가 무서워하는 주사를 하나도 안 아프게 놓아주었던 간호사 세미 이모한테는 특별히 두 개를 주었지만요.

그런데 인사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도 쟁반은 여전히 수북했어요. 쿠키를 준 대신 사탕, 젤리, 초콜릿 등을 받아왔거든요. 병동에 있는 사람 모두 어서 빨리 건강해졌으면 좋겠어요.



#2
아, 제가 아끼는 물건을 말하다가 한별이네 할머니가 오시는 바람에 이야기가 딴 길로 샜네요. 조립 자동차와 루루를 닮은 인형에 이어 제가 가장 아끼는 물건은 축구화예요. 검은색 표면에 빨간색 스터드가 박힌 축구화인데요, 저를 담당한 의사 선생님이 주셨어요. 저의 담당 선생님을 사람들은 ‘닥터 김’ 혹은 ‘김 선생님’이라 부르기도 하고 ‘하모니카 선생님’이라 부르기도 해요. ‘하모니카 선생님’이라는 별명은 선생님이 ‘송년의 밤’에서 하모니카를 연주해서 붙은 별명이에요.

작년 말 어린이 병동에서 열린 ‘송년의 밤’ 행사 때, 신나는 레크리에이션은 물론 입원한 환자와 가족들 그리고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의 장기자랑이 펼쳐졌어요. 간호사 세미 선생님은 파마머리 가발을 쓰고 우스꽝스러운 율동을 해서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고요, 한별이 할머니는 고운 한복을 입고 노래를 열창하셨어요.

하모니카 선생님은 특별한 재능이 없어서 그동안 구경만 하다가 그때 처음으로 큰맘 먹고 무대에 섰대요. 학창 시절에 배운 하모니카가 그나마 사람들에게 보여줄 만한 장기라며, 남몰래 입술이 부르트도록 연습하셨대요. 그 사실을 저한테만 살짝 귀띔해 주셔서, 그날 연주가 끝났을 때 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손뼉을 엄청 열심히 쳐 드렸어요.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라는 가사를 담고 있는 곡이었는데, 정말 감동적인 연주였어요.

송년의 밤 이후에도 하모니카를 연주해달라는 아이들이 많아서, 선생님은 하모니카를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기회가 되면 연주해 주셨어요. 하모니카 선생님은 환자들의 기분을 좋게 해주려고 항상 노력하시거든요. 아픈 아이들이 병과 싸워서 이길 수 있도록 끊임없이 격려하고 응원해 주시지요. 제 생일날 정성스럽게 쓴 카드와 함께 축구화를 선물해 준 이유도 제게 힘을 주려고 그랬다는 걸 알아요.


제 꿈은 축구선수예요. 병원에 입원한 뒤로 운동장을 마음껏 달려본 적은 없지만요. 대신 텔레비전에서 축구 경기를 할 때마다 챙겨 보았어요. 선수들이 푸른 축구장을 누비면서 공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경기하는 장면을 볼 때면 마치 제가 달리는 듯한 기분이 들거든요. 그런 걸 대리 만족이라고 하더라고요. 하모니카 선생님은 그런 저를 보며 언젠가는 대리 만족이 아닌 진짜 축구를 하게 될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선물받은 축구화보다 제 발이 더 커지지 않기를 기도했어요. 제 발이 축구화보다 커지기 전에 병이 낫게 해달라는 기도도 했고요. 하나님이 어떤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모르지만, 다행히 축구화는 지금 제 발에 꼭 맞아요. 사물함에 소중히 놓아둔 축구화를 볼 때마다 그것을 신고 달릴 날을 꿈꾸었는데, 하모니카 선생님 말처럼 진짜 달릴 날이 이렇게 오게 될 줄은 몰랐어요.

퇴원이 확정되었을 때, 하모니카 선생님이 말했어요. 큰 병과 싸워서 이긴 만큼 저는 강한 사람이 될 거라고요. 하지만 혼자 싸워서 이긴 건 아니라고요. 여러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 매 식사를 챙겨주신 분들, 병실을 깨끗이 청소해 주신 분들, 같은 병동에 지내면서 말을 걸어주고 웃어준 이들 모두가 저와 함께 싸워주신 고마운 분들이라고요. 암 덩이가 사라진 곳에 감사를 새겨 넣으라고, 하모니카 선생님은 따뜻한 음성으로 당부하셨어요. 저는 꼭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어요.



#3
날이 밝았어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집에 가는 날이에요.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따사로워요. 그전까지는 햇살이 저를 찾아왔는데, 이제는 제가 햇살을 만나러 나갈 차례예요. 아침밥도 든든히 먹었어요. 퇴원 수속을 마친 아빠가 제게 퇴원을 축하한다면서 새 옷을 입혀 주셨어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아요. 하모니카 선생님이 꽃다발을 한아름 건네주시고는 몸을 낮추어 저와 눈을 맞추셨어요.

“빈아, 퇴원 축하해. 그동안 병원에서 지내느라 고생 많았어.”

함박웃음을 짓는 하모니카 선생님을 끌어안으며 저도 인사했어요.

“고마워요, 엄마!”

제 병을 고쳐준 저의 담당 의사, 자랑스러운 하모니카 선생님은 사실 우리 엄마예요. 제가 병원에 있는 동안 엄마는 퇴근 후에 제 병실과 기숙사를 오가며 병원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어요. 직장이 집이 되어버린 셈이죠. 아빠도 일을 포기하고 제 병이 낫기까지 곁에서 돌보는 걸 선택하셨지요.

처음 병원에 입원했을 때 제가 엄마 아빠를 많이 힘들게 했어요. 친구들은 재미있게 학교 다니는데 왜 나는 병원에 있어야 하느냐고, 나도 운동장에서 뛰놀고 싶다며 생떼를 썼지요. 빡빡 깎은 머리도 마음에 안 들었고요. 엄마 아빠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괜히 투정을 부렸어요. 제가 아프니까 생떼를 써도 엄마 아빠가 혼내지 않고 다 받아주셨거든요.

그러다 하루는 잠결에 뒤척이다가 눈을 떴는데, 엄마가 제 다리맡에서 두 팔을 침대에 올린 채 그 사이에 얼굴을 묻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코를 훌쩍이면서요. 아빠는 등을 돌리고 서 있었는데, 제 짐작으로는 애써 눈물을 삼키는 것 같았어요. 그동안 엄마 아빠의 웃는 얼굴만 보았던 저는 속으로 깜짝 놀랐어요. 나만 힘든 게 아니라 엄마 아빠도 힘들다는 걸, 내가 아프면 두 분도 아프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난 행복한 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가 눈물 흘리며 기도할 만큼 나를 사랑한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아프지만 행복했어요.

그날 이후로는 엄마 아빠에게 짜증도 안 내고, 치료도 열심히 받았어요. 편식하지 않고 밥도 잘 먹었어요. 제가 빨리 나아야 엄마가 안 슬퍼하고 아빠도 다른 아빠들처럼 일하러 갈 수 있을 테니까요. 조금 더 일찍 그런 마음이 들었으면 좋았겠지만,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하는 게 엄마 아빠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엄마처럼 하나님께 기도도 열심히 했어요. 제 병이 빨리 나아서 엄마 아빠가 슬퍼하지 않게 해달라고요. 세 식구가 얼른 집에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요. 하나님이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모르지만, 결국 이렇게 들어주셨어요.

“빈아, 집에 갈 준비 다 됐다!”

채비를 마친 아빠가 제 손을 잡고 이끌었어요. 엄마가 퇴근해서 집에 가면 축하하는 의미로 맛있는 것을 먹자고 했어요. 집에서 엄마 아빠랑 먹는 저녁이라니, 정말 신나요!

“이따 집에서 만나자꾸나.”
“네, 엄마. 뭐 먹을지 생각하고 있을게요.”

그렇게 저는 엄마, 아니 나의 자랑스러운 하모니카 선생님과 행복한 작별 인사를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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