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동이가 조그만 앞발로 계속 얼굴을 쓰다듬으며 끙끙댑니다. 동동이는 두 달 전에 태어난 제 동생입니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얼굴이, 톡 건드리면 “빵!” 하고 터질 것만 같습니다. 금방 꽃잎 위를 오가며 꿀을 따는 꿀벌들을 보고 신기해 얼굴을 들이밀었다가 그만 따끔하게 봉변을 당하고 말았거든요.
“그러게 내가 살아 있는 건 함부로 건들지 말랬잖아.”
동동이의 얼굴이 시무룩해집니다.
봉봉이는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달콤한 잠에 빠져 있습니다. 동동이의 쌍둥이 동생인데, 시도 때도 없이 잠을 잡니다.
요 두 녀석의 형인 저는 ‘덕구’입니다. 우리 아빠 엄마의 자랑스러운 장남이죠! 제 이름은 주인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는데요, 큰 고민 없이 지으신 게 분명해요. 주인 할아버지가 저기 길 건너 버드나무 집 할아버지와 친하게 지내는데, 그곳에 사는 삽살개 형 이름이 ‘독구’인 것을 보면 말이죠.
아무튼, 저는 요즘 동동이와 봉봉이를 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엄마 아빠는 매일 주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따라 재 너머 밭에 나가거든요. 요즘은 무씨를 뿌릴 시기예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심어놓은 씨앗을 쪼아 먹으려고 산비둘기들이 많이 날아든답니다. 그럴 때면 우리 엄마 아빠가 새들을 모조리 쫓아냅니다. 너무 멋지지 않나요? 아무리 큰 날개를 가진 비둘기라도 엄마 아빠가 “컹컹” 하고 짖으면 꼼짝 못하고 멀리멀리 날아가버려요. 그래서 저도 열심히 연습 중이에요.
“왕왕!”
이렇게 말이죠! 좀 더 크고 힘차게, 우렁찬 소리를 내고 싶은데 아직은 잘 안됩니다. 동생들도 얼른 자라서 저처럼 엄마 아빠를 닮는 연습을 해야 할 텐데…. 하는 행동들을 보면 아직 멀었습니다.
“야, 그 얼굴로 또 어디가!”
봉봉이의 이부자리를 봐주는 사이 동동이가 꼬리를 흔들며 또 집 밖으로 나섭니다. 이번엔 나풀나풀 호랑나비를 쫓아가나 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또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얼른 집으로 데려와야죠.
“차라리 봉봉이처럼 낮잠을 자라. 거기 서, 동동아!”
앞집에는 동네의 사고뭉치, 바둑이가 삽니다. 단짝인 저랑 바둑이는 날마다 동네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풀도 뜯고 물장구도 치곤 했습니다. 해 질 녘이면 온몸에 도깨비바늘을 잔뜩 붙이고 집에 돌아와 엄마 아빠께 잔소리를 듣기도 했지요. 그런데 동동이와 봉봉이가 태어난 후로는 집 밖에 나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바둑이도 답답해합니다.
“옆 마을에 달마티안이라는 개가 이사 왔대. 이름부터가 멋지지 않니? 나랑 비슷한데 다리가 엄청 길다나 봐. 우리 한번 가보자!”
“안 돼. 동생들 봐야 해.”
“오늘 한 번만. 잠깐이면 되잖아, 응?”
바둑이가 애교 부리듯 바닥을 뒹굴며 졸라댑니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못 이기는 척 잠시만 다녀와야겠습니다. 동동이랑 봉봉이는 꼭 붙어서 잠이 들었으니, 금방 돌아오면 괜찮을 겁니다.
집을 나서니 동네 꼬마들이 웬 깡통을 들고 시시덕거립니다. 언젠가 매섭게 추웠던 겨울날 밤에 저 깡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불붙은 깡통을 휘휘 돌리던 모습이 마치 검은 하늘에 반짝이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아 신기해서 넋 놓고 바라봤거든요. 그걸 또 하려는 모양입니다. 얼른 달마티안을 만나고 와서 동동이, 봉봉이와 함께 구경해야겠습니다. 동생들도 반짝반짝하는 불빛을 보면 좋아할 거예요!
달마티안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둑이의 두 귀가 축 늘어졌습니다. 다리가 어쩜 그렇게 기냐고, 그에 비하면 자기는 땅강아지라고요. 뭔가 위로의 말을 해주려다가 말았습니다. 바둑이 말대로 달마티안은 다리도 길고 덩치도 좋았거든요. 문득 ‘다리가 길면 짖는 소리도 클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목소리마저 우렁차다면 저도 바둑이처럼 달마티안을 부러워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죠? 뭔가 타는 냄새가 납니다. 그것도 우리 집 쪽에서. 가끔 주인 할머니가 깜빡하셔서 냄비를 태우시는데 그 냄새는 아닙니다. 왠지 불길합니다. 바둑이에게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저는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아까 집을 나설 때 보았던 동네 꼬마들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불안한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를 키우던 외양간입니다. 바닥에 떨어진 성냥, 검게 그을린 깡통…. 여물로 주었던 볏짚이 많이 쌓여 있었는데 거기에 불씨가 옮겨붙었나 봅니다. 문제는 그 외양간 한편에 우리 집이 있다는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동동이와 봉봉이가 생전 처음 보는 불길 앞에서 발을 떼지 못한 채 파르르 떨고 있습니다. 외양간을 활활 태운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천장까지 치솟았습니다. 동생들을 구하려면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거대한 불길이 내뿜는 홧홧한 열기에 어쩌지 못하고 다리만 바들바들 떨립니다.
“깨갱깨갱.”
그때, 불길 사이로 동동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순간 저도 모르게 걸음이 동생들에게 향했습니다.
“왈왈! 덕구야, 안 돼!”
바둑이의 다급한 비명이 귀를 스치고, 곧이어 무언가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저는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엄마 아빠의 울부짖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습니다.
“하이고, 덕구야! 정신이 드나?”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너무 오랫동안 잠을 잔 건지 눈꺼풀이 붙은 것처럼 무겁습니다. 힘겹게 눈을 떠보니 주인 할머니가 상기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십니다.
“덕구 이 녀석아, 할머니가 얼마나 걱정하셨는지 몰라.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다.”
하얀 옷을 입은 이 사람은 얼마 전 동동이와 봉봉이에게 이따만 한 주사를 놓고 간 읍내 동물병원 아저씨입니다. 그때 동동이와 봉봉이가 아프다고 엄청 울어대서 아저씨를 미워했었습니다.
“덕구야, 마이 아프제? 니가 동동이랑 봉봉이 다 살렸다. 기특하구로.”
할머니가 따뜻한 손길로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등의 털은 불에 그을려 다 타버리고, 화상 때문에 붕대를 친친 감았습니다. 그거야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만, 왼쪽 뒷다리가 영 부자연스러운 게 이상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완전히 나으려면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거라네요.
시간이 꽤 흐르고, 등에 난 상처는 깨끗이 나아서 새 털이 보송보송 났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왼쪽 뒷다리가 불편해서 제대로 달릴 수 없습니다. 마당에 널어놓은 볍씨를 훔쳐 먹는 쥐를 잡으려면 발이 날래야 하는데 말예요.
슬프지 않으냐고요? 전혀요! 주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몸이 불편한 저를 더욱 애틋하게 보살펴주시거든요. 할아버지는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꼭 남겨서 제게 챙겨주곤 하십니다. 할머니는 저를 품에 안고 다니시며 동네 사람들에게 “동생을 구하려고 불 속에 뛰어든 의로운 덕구”라며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주시지요.
엄마 아빠는 아직도 제게 많이 미안해합니다. 어린 저희들만 두고 나가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요. 그러면서도 엄마 아빠를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지켜주어 정말 고마워합니다.
음, 동동이와 봉봉이는 어떻게 되었냐고요? 쑥쑥 자라서 저랑 몸집이 비슷해졌습니다. 둘은 언제 어디서든 든든하게 제 곁을 지킵니다. 엄마 아빠를 닮은 비둘기 퇴치 특공대가 될 준비도 틈틈이 하고 있고요.
비둘기를 보고 제가 우렁차게 짖으면, 다리가 불편한 저를 대신해 동동이와 봉봉이가 쏜살같이 달려 나갑니다. 그러면 산비둘기들은 숲속으로 도망가느라 정신없지요. 이만하면 찰떡 같은 호흡을 자랑하는 한 팀이죠? 덕구네 삼 형제, 앞으로 우리의 활약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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