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보안관 어니스트


어니스트가 따끈한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물자마자 따르릉, 신고 전화가 울렸습니다.

“마을 앞 사거리에 싸움이 났어요! 빨리 와주세요.”

오전 내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들을 처리하고 겨우 사무소에 돌아왔는데 또 호출입니다. 어니스트는 투덜거리며 토스트를 입에 우겨넣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마을 앞은 장이 서는 날이라 무척 붐볐습니다. 복잡한 길 한가운데 마차 두 대가 멈춰 있었습니다.

“보안관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제복을 입은 어니스트를 본 마부들은 일이 복잡하게 됐다며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팔짱을 끼고 서 있던 마부가 말했습니다.

“이 마차가 저를 앞지르다 제 마차 바퀴를 긁었어요.”

그의 말에 멜빵바지를 입은 상대편 마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합니다.

“저는 급한데, 이 사람이 마차를 너무 천천히 몰잖아요.”
“마을 앞에서는 원래 천천히 달려야 하는 거 몰라요?”

마부들은 옥신각신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어니스트는 두 사람 사이로 안전봉을 휘둘렀습니다.

“어어, 그만들 하세요. 보아하니 속도위반을 하셨군요. 법규에 따라 처리하겠습니다. 피해 보상 합의는 보안관 사무소에서 하는 걸로.”

말을 마친 어니스트는 멜빵바지를 입은 마부에게 신분증을 달라고 했습니다. 마부는 억울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아니, 이만한 일로 보안관 사무소까지 가야 합니까? 저는 지금 시간이….”
“어쨌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까.”

마부는 풀 죽은 듯 한숨을 쉬었습니다. 상대편 마부는 일이 점점 커지자 난처해하며 그냥 화해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원칙대로 해야 한다는 어니스트의 단호함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보안관 사무소로 향했습니다.

“휴, 피곤하다 피곤해.”

두 사람이 돌아간 뒤 어니스트가 기지개를 켰습니다. 십 년 가까이 보안관으로 일하면서, 별것 아닌 일까지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수없이 많았습니다. 잘못한 사람이 고집을 부리며 험한 말을 하는 건 예사요, 삿대질에 손찌검까지 한 적도 있었지요.

그럴 때 정답은 ‘법대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어떤 경우든 사건을 확실히 처리하려면 법의 잣대를 들이미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 한 꽃집에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어떤 소년이 화분을 훔쳤다고요.

‘어두워질 무렵을 노렸나 보군. 얼른 가봐야겠어.’

어니스트는 서둘러 꽃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꽃집 앞에는 덩치 큰 주인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꽃 도둑은 조그만 꼬마였습니다. 아이는 보랏빛 수국 화분을 품에 꼭 안고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서 있었습니다.

“이 아이군요. 어려서 보호자를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보안관 사무소로 가시죠.”

그 말에 아이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으앙, 안 돼요. 저는 이 화분이 당장 필요해요!”
“얘야, 필요하면 값을 치러야 할 것 아니냐. 그렇게 가져가면 도둑이야, 도둑!”

꽃집 주인의 말에 아이는 더 크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품에 안은 화분을 놓지 않았습니다. 꽃집 주인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습니다.


“어린아이라 저도 좋게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전혀 뉘우치질 않는군요.”

아이는 아예 자리에 주저앉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타일러도 보고, 큰소리도 쳐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한 소년이 아이를 흘끗 쳐다보다 깜짝 놀라 달려왔습니다.

“앤디, 거기서 뭐해!”
“형!”

아이는 벌떡 일어나 소년의 품에 안겼습니다. 소년은 눈물로 범벅이 된 동생의 얼굴을 보고 무슨 일인지 물었습니다. 꽃집 주인은 상황을 설명한 뒤 부모님을 만나 얘기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소년이 고개를 떨구며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생과 잠깐 이야기를 나눠도 될까요?”

어니스트는 혹시라도 둘이 도망칠까 싶어 탐탁지 않았지만, 꽃집 주인이 허락해 그러마고 했습니다. 소년은 동생을 데리고 꽃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잠시 후, 두 소년이 밖으로 나왔습니다. 화분은 형의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동생앤디가 손을 모으고 훌쩍이며 말했습니다.

“아저씨, 죄송해요. 엄마에게 꽃을 선물하고 싶어서 그랬어요. 오늘이 엄마 생일이….”

아이는 감정이 북받치는지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내일 품삯을 받으면 값을 배로 치를 테니, 하루만 시간을 주시면 안 될까요?”

그렇게 말하는 형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습니다. 병이 위중한 소년의 어머니는 꽃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아빠가 엄마의 약값을 마련하려 밤낮없이 일을 하셔서 엄마의 생일을 챙길 사람이 자신들밖에 없다고요. 꽃집 주인은 콧등이 시큰했습니다.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하구나. 그렇지만 꼬마야, 이렇게 마련한 선물은 엄마에게 기쁨보다 근심을 드릴 수 있단다. 다음엔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해라. 알겠지?”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꽃집 주인은 수국 한 송이쯤 얼마든지 줄 수 있다며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꽃집으로 들어갔습니다. 형제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어니스트는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돼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앤디의 형은 철없는 동생 때문에 실례했다며 어니스트에게 거듭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동생을 잘 가르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아니다, 얘야. 나야말로 속사정도 모르고 어린아이를 윽박지르기만 했으니, 부끄럽구나.”

그때, 꽃집 주인이 예쁜 연두색 리본이 묶인 수국 화분을 들고 나왔습니다. 훨씬 근사해진 화분을 보고, 눈물 자국이 채 마르지 않은 아이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났습니다. 어니스트와 꽃집 주인은 형제가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지켜봤습 니다.

사무소로 돌아가는 길, 어니스트는 방금 일어난 일을 곰곰이 되짚어보았습니다. 원칙대로라면 당장 아이를 잡아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꽃값의 몇 배를 물려야 했겠지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형이 동생을 잘 달래고 진심으로 사과했지. 사정을 알게 된 꽃집 주인도 아이들을 흔쾌히 용서해줬고….’

어니스트는 무릎을 탁 쳤습니다. 일이 더 큰 다툼으로 번지지 않고 잘 해결된 이유는 진심 어린 사과와 용서에 있었습니다. 그러려면 속사정을 들여다볼 줄 아는 넓은 마음이 필요했고요. 지끈거리던 머리가 맑아진 느낌, 무언가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동틀 무렵 순찰을 돌던 어니스트의 눈에 과일이 가득 담긴 수레를 끌고 가는 남자가 보였습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는 마을 어귀에 수레를 세우고 좌판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어, 저기는 장사를 하면 안 되는 곳인데.’

어니스트는 호루라기를 불며 남자에게 다가갔습니다. 남자는 인상을 찡그리며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아이 참, 아침부터 운이 안 좋네. 거 오늘 하루만 봐주시오.”

어니스트는 순간 욱했지만, 어제 꽃집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어쩌면 그에게 오늘 꼭 장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니스트가 친절하게 물었습니다.

“과일이 참 싱싱하네요. 날개 돋친 듯 팔리겠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마차가 많이 다니는 길목이라 위험합니다. 다른 장소를 찾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러자 그는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음,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사실 오늘 갖고 나온 과일이 좀 많다오. 이 많은 걸 얼른 팔아야 하다 보니 내 마음이 급했나 봄세.”

내리다 만 과일 상자를 쳐다보던 그는 결심한 듯 상자를 도로 수레에 실었습니다. 그러고는 조금만 더 가면 인적은 조금 뜸해도 장사하기 좋은 자리가 있으니 그곳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어니스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명한 생각이라고 맞장구쳐주었습니다. 남자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침부터 고생이 많습니다그려. 벌금을 물릴 수도 있는데, 사정을 헤아려줘서 고맙소.”

그러더니 잘 익은 사과 하나를 어니스트에게 건넸습니다. 오늘 하루도 힘내라는 응원과 함께요. 그 말에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사건사고, 자리에 앉을라치면 울리는 신고 전화…. 어니스트의 하루는 변함없이 바쁘게 돌아갔습니다. 달라진 것은, 열심히 발로 뛰는 어니스트의 입에서 한숨이 아닌 콧노래가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보안관학교에서 배운 원리 원칙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어니스트는 생각했습니다. 먼저 마음을 헤아려주면 서로 얼굴을 붉힐 일이 사라지니까요. 꽃집에서 두 소년을 만난 일은, 수국 화분에 매어진 연둣빛 리본처럼 어니스트를 더 멋진 보안관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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