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쿵!
침대에서 미끄러지며 엉덩방아를 찧은 한스는 바닥에 떨어진 이불과 베개를 주섬주섬 챙겼습니다. 침대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사선으로 세워졌던 매트리스가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이부자리를 정돈한 뒤 거실로 나갔습니다. 출근 준비를 마친 크리스틴이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잘 잤어요, 여보? 그렇게 일찍 일어나면 안 피곤해?”
“괜찮아요. 아침부터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일어나는 것보다는 훨씬 낫죠.”
아내의 말에 한스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당신, 오늘 엠마 학교에 가야 하니까 서둘러요. 엠마도 좀 깨워주고요.”
“엠마에겐 알람 시계가 있잖아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빠표 알람 시계!”
마침 엠마의 방에서 한스의 녹음된 목소리가 크게 울렸습니다. 잠시 후 부스스한 머리의 엠마가 하품하며 방문을 열었습니다.
“잘 잤니? 아빠 목소리 들으면서 일어나니까 기분 좋지?”
“소리가 너무 커서 귀가 따가워요.”
“우리 딸이 잠귀가 어두워서 일부러 크게 했는데…. 그러면 소리를 조금 낮춰줄게.”
한스는 엠마의 방에서 나팔 모양의 황동 스피커가 달린 시계를 들고 나왔습니다. 엠마는 금붕어가 헤엄치는 어항에 먹이를 흩뿌렸습니다. 그때, 동글납작한 기계가 아슬아슬하게 엠마의 발꿈치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깜짝 놀란 엠마가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물고기 먹이를 놓칠 뻔했습니다. 한스는 시계를 장식장에 내려놓고 소파 밑으로 들어가려는 기계를 향해 몸을 날렸습니다.
“잡았다! 이 먼지 싹싹이, 갑자기 속도가 왜 이렇게 빨라진 거지? 모터를 손봐야겠군….”
한스는 빠르게 돌아가는 바퀴를 보며 중얼거렸습니다. 크리스틴은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서며 말했습니다.
“엠마, 오늘은 엄마가 퇴근하고 데리러 갈게. 당신도 일일 교사 잘하고 와요.”
엠마는 창밖으로 아빠의 차를 바라봤습니다. 양쪽에 모양이 제각각인 사이드미러가 세 개씩 붙어 있고, 좌석 칸과 색이 다른 짐칸이 기차의 연결기 같은 장치로 매달려 있는 트럭이지요. 엠마는 입술을 쭉 내밀었습니다.
“아빠, 그냥 버스 타고 가면 안 돼요?”
#2
“안녕하세요! 엠마 아빠 한스입니다.”
엠마는 교단 가운데 선 아빠를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제 직업은 발명가입니다. 저의 모토는 ‘재미있고 유익한 물건을 만들자’입니다.”
한스는 가지고 온 상자에서 신발 한 켤레를 꺼냈습니다. 밑창에는 두꺼운 스프링이 여러 개 붙어 있었지요.

“이번에 발명한 작품입니다. 일명 ‘깡총 신발’. 이것만 있으면 지루한 등하굣길이 즐거워질 수 있지요.”
한스는 시범을 보이겠다며 신발을 갈아 신었습니다. 스프링 때문에 다리가 후들거리는데도 균형을 잃지 않는 모습에 아이들이 탄성을 질렀습니다. 그 반응에 한껏 고무된 한스는 깡총 신발을 신은 채로 교실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스프링의 탄력으로 보폭이 넓어 마치 붕붕 나는 듯했지요. 하지만 제자리에 착지하는 순간, 짓눌렸던 스프링이 튀어 오르면서 그의 몸이 발라당 뒤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은 웃음보를 터뜨렸습니다. 겨우 몸을 일으키는 아빠를 보며 엠마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습니다. 엠마는 아빠가 돌아간 후에도 내내 침울한 표정이었습니다.
“엄마, 다음 수업 때는 엄마가 오면 안 돼요?”
엄마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엠마는 수업 중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습니다. 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편의 모습을 상상하던 크리스틴이 미간을 찌푸렸습니다. 그러나 이내 밝은 표정을 지으며 엠마를 달랬습니다.
“그래도 널 사랑하는 마음은 다른 아빠들 못지않을걸? 널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하시는 거야. 며칠 전부터 캠핑 준비도 열심히 하고 계신단다.”
캠핑이라는 말에 엠마의 얼굴에 옅은 화색이 돌았습니다. 곁눈질로 딸의 표정을 살피던 크리스틴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집에 도착한 두 사람이 현관에 들어서자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작은 드론이 날아와 머리 위로 천연 소독제를 뿌렸습니다. 2층 난간에서 그물 소재의 해먹을 손질하던 한스가 아내와 딸을 반겼습니다.
“지난번 나무에 걸려서 찢어진 이 해먹, 지금 수선 중인데 내일 캠핑에는 못 가져갈 것 같아요.”
“꼭 필요한 건 아니니 상관없어요.”
크리스틴이 무심히 대답했습니다. 소파에 가방을 내려놓던 엠마는 탁자 위에 있는 낯선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아빠, 이건 뭐예요?”
“으응, 궁금하지? 널 위해 만든 거란다.”
엠마가 상자에 관심을 보이자 한스는 해먹을 팽개치고 한달음에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그러곤 소파에 앉아 상자 위아래로 현란하게 손가락을 움직였습니다.
“자, 이건 말이지. 일명 깜짝 상자란다. 열어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이렇게….”
한스가 상자를 열려는 순간, 안방에서 크리스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엠마! 용돈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니?”
“아, 맞다!”
엠마가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달려갔습니다. 한스는 관객 없는 무대에 선 듯 김샌 표정으로 상자를 내려놓았습니다.
#3
“아이스박스, 침낭, 캠핑 의자, 그릴…. 여보, 랜턴이 안 보이는데요?”
짐칸에 실은 물건들을 꼼꼼히 살피던 크리스틴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한스는 짐을 나르다 말고 옆집과 맞닿은 울타리에서 로버트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가족끼리 캠핑이라, 참 즐겁겠구먼. 나도 한창때는 아이들 데리고 숲으로, 바다로 여행을 많이 다녔지. 요즘은 밤에 스탠드 하나 켜놓고 혼자 추리소설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네.”
“나중에 재미있는 소설 하나 추천해 주세요. 독서가 발명에도 도움이 되거든요. 아, 말씀하신 라디오는 갔다 와서 바로 고쳐 드리겠습니다.”
한스는 로버트 할아버지에게 인사한 뒤 작업실에서 랜턴을 꺼내와 크리스틴에게 건넸습니다. 짐을 가득 실은 한스의 트럭이 주택가를 빠져나와 마을 밖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날 밤, 모자를 깊게 눌러쓴 한 남자가 한스의 집 앞을 서성였습니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남자는 재빨리 담장을 넘었습니다. 그러고는 길고 얇은 송곳을 자물쇠 구멍에 찔러 넣었습니다. 문이 열리자 남자는 까치발을 하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손전등을 켜 집 안 여기저기를 살피던 남자는 거실 탁자 위에 놓인 상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조심스레 뚜껑을 열었습니다.
“으악!”

그 순간 상자에서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인형이 튀어나와 춤을 췄습니다. 그는 반사적으로 뒷걸음질하다 장식장에 등을 부딪쳤습니다. 그 충격으로 장식장 위에 있던 알람 시계가 떨어져 그의 발등을 강타했습니다. 그는 “악!” 소리를 내며 펄쩍 뛰었습니다. 이어 알람 시계에서 나팔 소리와 함께 한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일어나, 일어나! 엠마, 학교 갈 시간이야! 학교 갈 시간이야!”
놀란 남자는 허겁지겁 현관을 향해 뛰어가다 그만 바닥에 있던 먼지 싹싹이를 밟았습니다. 순간 먼지 싹싹이가 켜져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바람에 그는 균형을 잃고 소파 위로 쓰러졌습니다. 그때 그의 몸이 드론 리모컨의 작동 버튼을 눌렀고, 드론은 윙윙 소리를 내며 날아오르다 난간에 걸쳐 있던 해먹을 낚아챘습니다. 드론은 해먹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몸을 일으켜 세우려던 남자는 떨어지는 그물 해먹에 갇혀버렸지요. 그는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썼지만, 버둥댈수록 해먹은 더 단단히 엉켰습니다.
잠시 후, 희미한 사이렌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한스의 집 앞에서 일정한 크기로 울렸습니다. 이윽고 경찰에 붙잡힌 남자가 밖으로 끌려 나왔습니다. 사이렌 소리는 다시 점점 줄어들며 저 멀리 사라졌습니다.
#4
“여느 날처럼 추리 소설에 빠져있는데 이상한 소리가 계속 들리더군. 나팔 소리가 났다가, 남자 목소리도 들리고.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밖을 내다봤더니, 소리가 자네 집에서 나더라고. 번쩍번쩍 불빛까지 새어 나오고 말이야. 그래서 경찰에 신고했지.”
로버트 할아버지는 캠핑에서 돌아온 한스의 가족에게 간밤에 있었던 일을 전해주었습니다. 크리스틴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질러진 거실을 둘러보았습니다. 놀라기는 한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빠, 도둑이 깜짝 상자를 열었나 봐요!”
엠마가 바닥에 나동그라진 상자를 가리키며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당신이 만든 발명품들이 도둑을 잡았네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듯 크리스틴이 심장에 손을 갖다댔습니다. 한스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한쪽 눈썹을 찡긋 치켜 올렸습니다.
다음 날 저녁, 크리스틴은 오랜만에 한스의 작업실 문을 열었습니다. 곳곳에 쌓인 먼지를 보며, 크리스틴은 그동안 한스의 일에 무심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언제 한번 작업실 대청소를 해야겠어요.”
크리스틴은 가져온 레모네이드를 책상에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작업에 몰두하던 한스가 크리스틴을 보고 기쁜 기색을 띠었습니다.
“당신이 작업실을 청소해 준다고?”
“못할 것도 없죠.”
“그럼 나야 고맙지.”
한스는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이마에 땀을 훔쳐내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때 엠마가 알람 시계를 들고 작업실로 왔습니다.
“아빠, 이거 언제 손봐주실 거예요?”
“아! 얼른 고쳐드려야죠, 손님.”
“오늘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도둑 얘기를 해줬어요. 아빠 발명품들이 우리 집을 지켰다고요.”
“그래? 친구들이 뭐라고 하던?”
“발명가 아빠가 있어서 좋겠대요!”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물론이죠!”
엠마는 아빠를 와락 껴안았습니다. 크리스틴도 두 팔을 활짝 벌려 남편과 딸을 동시에 안았습니다. 한스는 이참에 가족을 지킬 진짜 발명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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