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학이 시작된 지 일주일, 트루디는 차라리 학교에 가고 싶을 만큼 심심했습니다. 방학이면 아빠와 함께 스노클링을 하거나 조각배를 타고 놀러 가곤 했는데, 이번 방학은 아빠 없이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필 아빠 출장이 방학과 겹칠 게 뭐람.’
해 질 녘, 트루디는 창가에 앉아 주황빛으로 물든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퉁탕거리는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헨리였습니다.
“누나, 누나! 이것 봐!”
헨리는 숨을 헐떡이며 트루디에게 책 한 권을 내밀었습니다. 트루디는 천천히 책 제목을 읽었습니다.
“콩크진주를 찾아서. 처음 보는 책이네?”
콩크진주는 ‘콩크’라는 조개에서 나는 진주입니다. 트루디가 사는 카리브해 연안 지역에 주로 서식하는 콩크조개는 소라처럼 생겨 진주를 품기 어렵습니다. 콩크진주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이지요. 그래서 사랑스러운 분홍빛을 띠는 콩크진주는 그 자체로 아주 귀한 보물입니다.
“엄마가 아빠 책이라며 책꽂이에 꽂아달라고 하셨어. 근데 이 책에 진짜 신기한 게 있다!”
헨리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트루디는 책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닳을 대로 닳은 가죽 표지에 종이는 누렇게 변했고 제목에 입힌 금박은 군데군데 벗겨져 있는 것이, 족히 수십 년은 돼 보였습니다. 트루디의 마음에 서서히 호기심이 피어올랐습니다.
헨리는 금빛 책갈피가 끼워진 부분을 펼쳤습니다. 유독 종이가 두껍고 끝이 벌어진 페이지가 나왔습니다. 조심스럽게 페이지의 귀퉁이 부분을 벌리자 그 사이에서 여러 번 접힌 낡은 종이가 나왔습니다. 종이의 정체는 놀랍게도 트루디네 동네 지도였습니다. 얼마 전에 문을 연 레스토랑까지 정확히 나와 있었지요. 지도의 중간 지점에는 선명한 분홍색 ‘X’ 표시가 있었습니다.
“우아….”
트루디는 오래된 책 사이에서 나온,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같이 낡은 종이에 어떻게 최신 지도가 그려져 있는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X’ 표시가 눈에 확 띄었습니다. ‘콩크진주를 찾아서’라는 책 제목으로 미루어 보아 콩크진주가 있는 위치를 표시한 게 분명했습니다.
헨리와 트루디는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심심함으로 한동안 울적했던 남매의 눈빛이 오랜만에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둘은 콩크진주를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트루디와 헨리는 책에서 발견한 지도를 엄마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엄마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지도를 살펴봤습니다.
“그래서, 오늘 콩크진주를 찾으러 가겠다는 거야?”
둘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엄마가 무작정 지도만 믿고 가려느냐며 말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흔쾌히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잘 다녀오라는 응원까지 받았지요. 남매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어디 보자, ‘X’ 표시가 된 곳이….”
트루디는 돋보기를 들고 지도를 자세히 살폈습니다.
“음, ‘조개 언덕’쯤이네.”
“조개 언덕? 누나, 나 조금 무서워.”
조개 언덕은 실제 언덕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바닷가 근처에 여러 조개껍데기를 쌓아둔 곳을 말합니다. 무늬가 예쁜 조개껍데기를 이렇게 모아두었다가 관광객에게 기념품으로 팔거나 고급 장신구를 만드는 데 쓰지요. 몇몇 어른들이 우스개로 그곳을 ‘조개 무덤’이라 부르는 바람에 헨리처럼 어린아이들에게는 은근히 공포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괜찮아. 예쁜 조개껍데기도 많고, 실제로 보면 하나도 안 무서워.”
“정말?”
“그럼. 그리고 누나가 있잖아. 자, 누나 손 잡아.”
헨리는 트루디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트루디는 헨리가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조개 언덕을 향해 가는 길, 주변 풍경은 한없이 평화로웠습니다. 새로 생긴 레스토랑의 테라스에는 몇몇 손님들이 아이스티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맞은편 기념품 가게에선 주인아주머니의 통통 기타 퉁기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해변에서는 비치발리볼 경기가 한창이었습니다. 경기하는 아저씨들을 보자 트루디는 문득 아빠가 떠올랐습니다.
‘아빠는 지금쯤 바쁘게 일하고 계시겠지?’
오늘처럼 보물을 찾아 나서는 날 아빠와 함께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빠는 트루디가 지도를 볼 때 옆에서 방향을 알려주고, 헨리가 조개 언덕을 무서워하면 번쩍 안아 올려 안심시켜주었을 것입니다. 괜스레 아빠가 더 보고 싶어졌습니다.

한참을 걷다보니 드디어 조개 언덕이 보였습니다. 수많은 조개껍데기들 사이, 콩크조개 껍데기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곳곳에 박혀 있었습니다.
“누나! 우리 얼른 콩크진주 찾아보자!”
두려워하던 헨리는 그새 활기를 되찾고 조개 언덕을 향해 뛰어갔습니다. 그러고는 영화에서 본 고고학자처럼 손에 흰 장갑을 끼고 콩크조개 껍데기를 주워 붓으로 모래를 털기 시작했습니다.
트루디는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나무 아래 끊어진 해먹을 들춰보기도 하고, 얕은 바다에서 수경을 끼고 물 밑을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곤 속이 빈 콩크조개 껍데기들뿐이었습니다.
트루디는 물에서 나와 다시 헨리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때, 밑동에 ‘X’ 표시 팻말이 꽂힌 코코넛나무가 눈에 띄었습니다.
‘저게 뭐지?’
트루디는 얼른 달려가 코코넛나무 아래를 파 보았습니다. 흙이 부드러워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팔 수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손끝에 단단한 게 만져졌습니다.
“헨리! 헨리! 얼른 여기로 와봐!”

트루디가 부르는 소리에 헨리는 들고 있던 조개껍데기를 내려놓고 얼른 뛰어갔습니다. 트루디는 땅속에서 발견한 상자를 조심스레 꺼냈습니다. 작은 조개껍데기들로 아기자기하게 장식된 상자였습니다. 상자는 금빛 하트 모양 자물쇠로 잠겨 있었는데, 자물쇠에는 이런 라벨이 붙어 있었습니다.
「힌트 -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의 생일」
트루디의 머릿속에는 딱 한 사람, 아빠가 떠올랐습니다. 트루디는 떨리는 마음으로 자물쇠의 숫자를 아빠 생일에 맞췄습니다. 그러자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열렸습니다. 상자 안에는 큼지막한 콩크조개와 둘둘 말린 베이지색 종이, 정성스레 포장된 쿠키가 들어 있었습니다. 트루디는 종이를 꺼내 펼쳤습니다.
‘사랑하는 트루디, 헨리.’
낯익은 글씨였습니다.
“아빠! 아빠다!”
헨리가 소리쳤습니다. 트루디는 헨리를 위해 소리 내어 편지를 읽었습니다.
「사랑하는 트루디, 헨리. 안녕? 아빠는 너희가 이 보물을 찾아낼 줄 알았다. 아빠 없이 방학을 보내야 할 너희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깜짝 선물이야.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구나. 이 선물에는 할아버지의 유산(오래된 책), 엄마의 지혜(지도를 옷 속에 넣고 세탁기에 돌려 해지게 만듦) 그리고 아빠의 정성(꽤 오랜 시간을 들여서 찾은 예쁜 콩크조개)이 들어 있단다. 가족 모두의 사랑이 가득 담겼지. 트루디, 헨리. 남은 방학 건강하게 보내고, 엄마 잘 도와드리고 있으렴. 돌아가자마자 꼭 껴안아 주마. 사랑한다!」
트루디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아, 헨리, 여기 추신도 있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분명 배고플 테니 사이좋게 쿠키를 나눠 먹으렴. 엄마가.”
“역시, 우리 엄마 아빠가 최고야!”
헨리는 콩크조개와 쿠키를 꺼내며 환호했습니다. 그날, 둘은 콩크진주 못지않게 값진 보물을 찾았습니다. 엄마 아빠의 아주 큰 사랑을요.
엄마는 보물 상자를 들고 돌아온 남매를 활짝 웃으며 맞았습니다.
“우리 귀염둥이들! 아빠가 숨겨둔 선물을 찾았구나!”
“네! 정말 최고의 보물이에요.”
트루디와 헨리는 자랑스럽게 상자를 열어 콩크조개와 편지를 꺼냈습니다. 엄마는 콩크조개를 거실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었습니다.
그 후 트루디와 헨리는 지루할 틈 없이 알찬 나날을 보냈습니다. 열심히 방학 숙제를 하며 이것저것 엄마를 도와드리느라 바빴으니까요. 방학이 끝나기 며칠 전, 아빠는 예정보다 일찍 돌아오셨습니다. 아빠는 현관문에 들어서자마자 너른 품으로 트루디와 헨리를 다정하게 안아주었습니다. 거실에는 진한 분홍색을 띤 콩크조개가 가족의 사랑을 품은 듯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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