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집


#1
톰의 가족은 엄마, 아빠, 누나, 할머니, 톰 이렇게 다섯 명입니다. 얼마 전에 톰의 아빠가 하는 사업이 어려워져서 톰의 가족은 작고 오래된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런데 새로 이사한 집에 자꾸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갑자기 전등이 나가는가 하면, 벽시계가 멈추고, 따뜻한 물이 안 나오기도 했지요. 톰의 가족은 원치 않은 이사를 한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집 여기저기에 고장이 나니 불만이 쌓여갔습니다.

“엄마, 온수기 아직 안 고쳤어? 따뜻한 물이 안 나와!”

욕실에 들어간 톰의 누나 조이가 신경질적으로 말했습니다.

“아빠한테 말했는데 바빠서 언제 고칠지 몰라.”

전등 대신 램프를 켠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톰의 엄마가 대답했습니다.

“아이고, 허리야. 비가 오려나.”
“어머님, 오늘 병원 안 가셨어요? 병원도 안 가고 계속 아프다고 하시니 원.”
“이건 고질병이라 병원에 가도 소용이 없어. 그냥 참아야지….”

톰의 할머니는 말끝을 흐렸습니다. 잠시 후, 현관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톰의 아빠가 휴대폰에 대고 고성을 지르며 집으로 들어섰습니다.

“제 사정 뻔히 알면서 자꾸 독촉하면 어떡합니까?”

톰이 갖고 놀던 고무 재질의 공이 바닥에 부딪혀 튀어 오르면서 아빠를 향했습니다. 공은 휴대폰을 든 아빠의 팔을 강타했고, 그로 인해 휴대폰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톰, 집에서 공놀이하지 말라고 했지!”

아빠가 버럭 큰소리를 내자 톰은 재빨리 공을 주워 들고 제 방으로 피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누가 손대지도 않았는데 거실에 있던 텔레비전이 꺼졌습니다. 건강 정보 프로그램에 심취해 있던 할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꾹 눌렀습니다. 하지만 꺼진 텔레비전 화면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거 왜 이러냐?”
“줘보세요.”

리모컨을 받아 든 아빠가 전원 버튼을 여러 번 눌러도 작동하지 않자, 텔레비전으로 가서 전원 버튼을 눌러보았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먹통이었습니다.

“희한한 일이네.”
“욕실 온수기는 언제 고칠 거예요?”

이유 없이 꺼져버린 텔레비전 때문에 약이 오른 톰의 아빠는 아내의 채근을 흘려들었습니다.

“에취!”

욕실에서 찬물로 씻고 나오던 조이가 재채기를 했습니다. 그러고는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집 정말 맘에 안 들어….”



#2
램프 불빛에 의지해 저녁 식사를 하는 톰의 가족은 말이 없었습니다. 톰은 아빠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최대한 얌전한 자세를 유지했고, 조이는 간간이 재채기하며 코를 훌쩍였습니다. 할머니는 불편한 허리를 한 번씩 꼿꼿이 세울 뿐, 며느리 눈치를 보느라 통증을 호소하지는 않았습니다. 톰의 엄마가 적막한 분위기를 깨려고 라디오를 틀었습니다. 라디오에서 디제이의 유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디제이는 초대 손님과 만담을 주고받던 중 큰 소리로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아니, 그런 일이 있었다고요? 우하하하!”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주방이 환해졌습니다. 꺼진 등에 불이 들어온 것입니다. 톰의 가족은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톰의 아빠가 램프를 끄며 말했습니다.

“수리할 곳이 하나 줄었군.”

주위가 밝아지자 식사 분위기도 한결 누그러졌습니다.

“그나저나 텔레비전은 왜 갑자기 고장 난 거냐? 멀쩡했는데….”

할머니는 저녁마다 챙겨 보던 프로그램을 다 못 봐서 아쉬운 듯했습니다.

“이참에 텔레비전을 바꾸는 게 어때요? 안 그래도 저 고물이 언제 고장 날까 싶었어요.”

톰의 엄마가 아빠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그때 또다시 라디오에서 폭소 터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텔레비전이 저절로 켜졌습니다.

“새로 살 필요가 없겠군.”

아빠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습니다. 그 순간 조이가 대단한 걸 발견이라도 한 듯 소리쳤습니다.

“유레카!”

가족의 시선이 일제히 조이에게로 향했습니다. 조이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전등이 켜졌을 때와 텔레비전이 켜졌을 때의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라디오에서 웃음소리가 난 거죠. 이게 이 집의 놀라운 비밀이에요. 웃음소리가 이 집의 에너지원인 거예요! 그렇다면 반대로 에너지가 소진되는 때는 언제일까요?”
“화내는 소리가 날 때?”

톰이 자신 없는 투로 말했어요. 그러나 조이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맞장구쳤습니다.

“그렇지! 텔레비전이 언제 꺼졌어요?”
“네 아빠가 톰한테 큰소리칠 때였지.”
“그것 보라고요. 제 말이 틀림없다니까요.”
“에이, 설마. 그럼 우리 다 같이 웃어봐요. 누나 말이 맞는지 확인해 보면 되잖아요.”

톰의 가족은 서로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하더니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하하”, “호호”, “허허”, “히히”.

그러자 멈추었던 전자벽시계가 작동했습니다.

“어? 진짜 누나 말이 맞네!”



#3
새로 이사한 집의 비밀을 알게 된 후부터 톰의 가족은 일부러라도 웃음소리를 크게 내자고 약속했습니다. 웃음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레 말도 긍정적으로 바뀌고 말투도 부드럽게 나왔습니다. 집 여기저기서 발생했던 문제들은 모두 정상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엄마, 오랜만에 따뜻한 물로 씻으니 너무 기분 좋아. 꺄르르.”
“그렇지? 호호, 감기는 좀 어떠니?”
“약 먹으니 괜찮아진 것 같아요. 히히.”
“참, 어머님. 내일 비 예보 있던데, 혹시 허리 아프지 않으세요?”
“허허, 견딜 만하다. 아프다, 아프다 하니 더 아프더구나.”
“조금 나아지셨다니 다행이에요. 그래도 편찮으시면 말씀하세요. 제가 병원 모시고 갈게요.”
“아이고, 말만 들어도 고맙구나. 허허.”

잠시 후, 현관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톰의 아빠가 누군가와 통화하며 집으로 들어섰습니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면 제가 어떻게든 마련해 보겠습니다.”

톰은 아빠가 오자 가지고 놀던 공을 급히 바구니에 던져 넣으려다 그만 조준을 잘못해 아빠의 팔을 맞히고 말았습니다. 그 바람에 아빠가 휴대폰을 놓칠 뻔했지만 다른 손으로 얼른 붙잡아 떨어뜨리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일이 잘되면 대표님 덕분인 줄 알겠습니다. 하하.”

전화를 끊은 아빠는 톰을 향해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토옴, 공놀이가 하고 싶은 거구나. 다가오는 휴일에 아빠랑 같이 운동장에 가서 공놀이할까?”
“네, 좋아요!”
“그럼 집에서는 공놀이 말고 다른 놀이를 할 수 있겠니?”
“네, 색종이로 종이접기 할래요.”

톰이 펄쩍 뛰며 좋아했습니다. 그때 방에서 조이가 나오자 아빠의 표정이 더욱 밝아졌습니다.

“조이, 수학경시대회 결과 나왔다면서? 엄마한테 들었다. 수고했어. 하하.”
“1등도 아닌데요, 뭘.”
“3등은 아무나 하는 줄 아니? 조이, 이 할미는 네가 자랑스럽구나.”
“그 기념으로 오늘 저녁 메뉴는 치킨과 피자예요.”

주방에서 엄마가 식탁매트를 깔며 하는 말에 톰과 조이가 환호했습니다.

“당신 퇴근하면 바로 먹으려고 일찍 배달시켰는데, 왜 아직 안 오나 모르겠어요.”
“지난번에도 주문한 메뉴를 착각하고 잘못 갖다준 그 가게 아니야?”
“맞아요. 그래도 거기가 제일 맛있어요.”

아빠는 전화기를 들며 목소리를 가다듬었습니다.

“음, 거기 피자 가게죠? 배달한 음식이 안 와서 전화 걸었습니다. 네? 준비 중이라고요? 아니, 주문한 지가 언젠데 아직 출발도 안 하면 어떡합니까?”

아빠의 언성이 점점 높아졌습니다. 그러자 지켜보는 가족의 긴장감도 아울러 높아졌습니다.

“지난번에도 음식을 잘못 배달해 줘서 난감했는데, 또 이러시면 곤란하죠! 남의 집 저녁 시간을 망쳐놓을 셈입니까?”

아빠는 결국 고성을 질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거실을 비추던 등이 꺼져버렸습니다. 그 순간 가족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한꺼번에 외쳤습니다.

“아빠!” “여보!” “아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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