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킴이 미어캣 코코


광활한 사막의 지평선 너머에서 찬란한 해가 둥실 떠오릅니다. 햇빛이 깜깜한 하늘을 밝히고 잠든 동물들을 깨우는 시간, 미어캣 코코가 사는 굴에도 아침이 왔습니다.

“흐엄. 잘 잤다!”

코코는 따사로운 햇살에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습니다.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밖으로 나가자 상쾌한 공기가 코코를 반깁니다.

“좋아. 오늘도 신나게 놀아볼까?”

그때 코코를 찾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코코야, 아침 먹으러 오렴.”
“네, 엄마!”

오늘 아침 메뉴는 고소한 나뭇잎 스프. 그런데 코코는 스프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살금살금 부엌을 나가 거실에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동생 미미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코코 오빠, 어디 가려고? 오늘 지킴이 수업 있잖아. 어제도 안 가… 읍!”
“쉿!”

깜짝 놀란 코코는 쏜살같이 달려와 미미의 입을 막고 귓속말을 했습니다.

“야, 조용히 해. 엄마 아빠한테 들키면 큰일 난단 말이야.”
“오빠도 이제 지킴이잖아. 얼른 배워야지!”

‘지킴이’는 낮 시간 동안 언덕에 서서 망을 보는 미어캣을 가리킵니다. 탁 트인 사막에서 천적의 표적이 되면 아주 위험하기 때문에, 다른 미어캣에게 위험을 알리고 피할 수 있도록 돕는 지킴이의 역할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모든 미어캣은 정해진 나이가 되면 ‘지킴이 수업’을 받습니다.

그런데 코코는 지킴이가 되는 게 싫습니다. 하루 종일 가만히 서서 망을 봐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좀이 쑤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지금껏 부모님 몰래 지킴이 수업에 가지 않았지요. 하지만 코코의 엄마 아빠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코코의 아빠가 지킴이 대장이라 자주 지킴이 수업을 진행하는데, 그때마다 코코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코코는 오늘도 수업에 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미미에게 입단속을 단단히 한 뒤 집을 나섰지요. 그리고 해가 질 즈음까지 신나게 놀다 집에 돌아왔습니다.

“오늘 어디 다녀왔니?”

문을 열고 들어서는 코코에게 엄마가 물었습니다.

“오, 오늘요? 메뚜기를 사냥할 만한 좋은 곳이 없을까 찾다 왔어요.”

코코는 저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엄마는 속이 상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그랬구나. 그런데 코코야, 사냥할 곳은 엄마가 찾을 테니 너는 앞으로 지킴이 수업에 가렴. 알겠지? 여보, 내일 수업 가실 때 코코 꼭 데려가세요.”
“걱정 말아요!”

아빠는 엄마와 코코에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습니다. 코코는 수업에 가기 싫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코코는 아빠를 따라 지킴이 수업에 갔습니다. 수업 주제는 ‘독수리가 나타났을 때 보내는 신호’였습니다.

“자, 따라 해보세요. 양팔을 좌우로 쭉 뻗고, 세 번 위아래로 흔듭니다. 이 동작은 독수리가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뜻이에요. 독수리가 두 마리일 때는….”

미어캣들은 능숙하게 코코 아빠의 시범을 따라 했습니다. 하지만 수업에 처음 온 코코는 크고 작은 실수를 되풀이했습니다. 혼자 자꾸만 엉뚱한 동작을 하는 코코의 모습에 결국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에잇, 이게 뭐야. 괜히 수업에 와서 창피만 당했잖아.’

코코는 잔뜩 심술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튿날엔 아침 인사를 건네는 엄마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화장실에 가는 척 방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길로 굴을 나섰습니다. 식사 자리에서 아빠와 마주하면 또 지킴이 수업에 가야 할 게 뻔했으니까요. 특별히 갈 곳도 없었지만 어디든 지킴이 수업에 가는 것보다는 좋았습니다. 무작정 걷던 코코는 어느새 굴과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이르렀습니다.

‘휴, 덥다. 배도 슬슬 고프고.’

코코는 잠시 쉴 만한 그늘을 찾으려고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때, 멀리서 지킴이 미어캣들이 보내는 신호가 눈에 띄었습니다.

‘가만 있자, 저 신호가 무슨 뜻이었지?’


양팔을 좌우로 쭉 펴고 세 번 위아래로 흔드는 동작. 바로 독수리가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코코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커다란 독수리가 발톱을 바짝 세우고 코코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헉! 큰일 났다!’

온몸이 얼어붙은 코코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코코야! 이쪽이야!”
“아빠?”

코코는 갑자기 들린 아빠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있는 힘껏 코코에게 달려온 아빠는 코코의 손을 잡고 비상대피용 굴로 코코를 밀어 넣었습니다.

“어서 들어가!”
“아빠! 아빠는요?”

굴은 생각보다 좁았습니다. 먼저 들어간 코코는 안전했지만, 아빠의 몸은 아직 굴 밖으로 반쯤 나와 있었습니다. 코코는 독수리가 아빠를 잡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온몸의 털이 쭈뼛 섰습니다. 그러자 저도 모르게 정신없이 굴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갔습니다.

“아빠! 안으로 더 들어오세요! 얼른요!”

마침내 굴 안으로 완전히 몸을 숨긴 아빠와 코코는 서로를 꼭 껴안았습니다.

얼마쯤 지났을까요, 바깥에서 지킴이 미어캣들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제 나와도 돼요! 독수리 지나갔어요.”

그제서야 코코는 아빠를 꼭 껴안았던 팔을 풀었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지킴이 미어캣들이 코코와 아빠를 둘러쌌습니다.


“대장님, 정말 대단하세요.”
“맞아요. 저희는 신호를 보낼 생각만 했지, 코코에게 직접 뛰어갈 생각은 전혀 못 했어요.”

지킴이들은 입을 모아 코코 아빠의 용기를 칭찬했습니다. 코코 아빠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습니다.

“아니야. 누구라도 독수리가 자기 아들을 노리고 있다면 당장 뛰어갈 거다. 그리고 코코의 땅파기 실력도 한몫했단다. 코코가 순식간에 굴을 더 파지 않았다면? 어휴, 생각만 해도 아찔하구나.”

아빠의 말을 들은 지킴이 미어캣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코코를 쳐다보았습니다. 코코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리고 아빠를 위험에 빠트린 자신이 부끄러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아빠, 지킴이 형들, 모두 미안해요. 나 하나 때문에….”

아빠는 코코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습니다.

“괜찮아, 코코야. 이렇게 무사하니 얼마나 다행이니.”
“그래, 고생했어.”
“너는 땅파기 전문 지킴이 하면 되겠다! 그치?”

한 미어캣이 열심히 굴 파는 시늉을 하며 말했습니다. 눈물로 얼룩진 코코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습니다.



“하나! 둘! 하나! 둘!”

힘찬 구령 소리가 고요한 사막의 아침을 깨웁니다. 예비 지킴이들이 코코 아빠의 구령에 맞춰 열심히 준비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침 일찍 엄마와 메뚜기 사냥에 나선 미미는 우렁찬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운동하는 지킴이들을 바라보던 미미가 깜짝 놀라서 말했습니다.

“엄마! 저기 좀 보세요!”

미미의 시선을 따라가자 코코가 보입니다. 코코는 맨 뒷줄에서 다른 미어캣들과 열심히 체조를 하고 있었습니다. 미미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엄마, 오빠가 웬일이래요?”

엄마는 흐뭇한 표정으로 코코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글쎄, 아빠의 뒤를 잇는 지킴이 대장이 되겠다나?”
“정말요?”
“너도 오빠한테 이것저것 많이 배워 두렴. 곧 있으면 지킴이 수업에 가잖니.”
“우아. 저도 이제 지킴이가 되는 거예요? 신난다!”

미미가 폴짝폴짝 뜁니다. 함박웃음을 짓는 엄마와 미미 위에 펼쳐진 하늘이 오늘따라 더욱 파랗습니다. 또 어디선가 독수리가 날아올지도 모른다고요? 걱정 마세요. 지킴이 미어캣들이 사막을 든든히 살피고 있답니다.
Go Top
정말 삭제하시겠습니까? 복구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