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쿵쿵, 동물 아파트!


#1
딩동, 딩동!

벨이 울리자 사자는 TV 볼륨을 줄이며 시계를 봤습니다. 시침이 9를 넘어 10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 늦은 시간에 누구야?”

사자는 거실로 우다다 뛰어나오는 아들에게 이제 그만 자라며 등을 떠밀고는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벨을 누른 건 원숭이였습니다. 원숭이는 험상궂은 사자와 눈이 마주치곤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사자는 인상을 찡그린 채 원숭이를 훑어보며 물었습니다.

“뭐요?”

원숭이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아랫집에 사는 원숭이입니다. 저기, 인사를 드린 적이 없는 것 같아서…. 그, 그런데 시간이 늦었네요. 편안한 밤 보내세요.”

원숭이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사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 올리며 문을 닫았습니다.

다음 날, 사자는 퇴근하는 길에 분리수거장에서 속닥이고 있는 원숭이 부인과 가젤 부인을 봤습니다. 그들 뒤를 지나치려는 순간, ‘사자’라는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자는 발걸음을 늦추며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가젤 부인이 안타깝다는 듯 말했습니다.

“진짜요? 계속 뛰는 소리가 들리면 정말 힘드시겠어요.”
“남편이 어제 조금만 조심해달라고 부탁하러 올라갔는데, 아무 말 못 하고 그냥 내려왔어요.”
“사자한테 말하기가 쉽지 않았겠죠….”

대화를 엿듣고 있던 사자는 일부러 크게 “흠, 흠” 헛기침하고는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애가 뛸 수도 있지, 뭐!’

사자는 구시렁거리며 집으로 갔습니다. 현관에 들어서자 아들 사자가 우다다 달려와 아빠의 품에 안겼습니다.

“아빠, 이것 보세요. 엄마랑 바람개비 만들었어요!”

아들 사자는 바람개비를 들고 우다다 뛰며 거실을 빙빙 돌았습니다. 사자는 즐거워하는 아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습니다.



#2
“윗집에 누가 이사 오나 봐.”
“코끼리 가족이래요. 쌍둥이가 있던데요?”

쿵, 쿵, 쿵, 쿵!

아내 사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위층에서 육중한 발소리가 울렸습니다. 소파에서 신문을 보던 사자는 천장을 한번 힐끔 보고는 말했습니다.

“천장이 내려앉는 건 아니겠지?”

소음은 하루 종일 이어졌습니다. 심기가 불편해진 사자는 위층으로 올라가 거칠게 문을 두드렸습니다. 문이 열리며 코끼리가 얼굴을 내밀자 사자는 다짜고짜 소리쳤습니다.


“정리하느라 바쁜 건 알겠는데, 애들이 너무 쿵쿵거리는 거 아뇨?”
“아, 네….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사자는 고개 숙여 사과하는 코끼리를 뒤로한 채 쌩하고 돌아왔습니다. 이후로도 사자는 조금이라도 소음이 날 때마다 참지 못하고 윗집에 올라가 코끼리를 닦달했습니다.

“애가 둘이면 더 주의시켜야 할 거 아냐? 몇 번이나 올라가게 만드냐고!”

투덜거리며 현관에 들어서는 아빠를, 아들 사자가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사자는 의기소침해 보이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 심심해? 왜 그러고 있어? 바람개비 돌릴까?”

사자는 장난감 상자에서 바람개비를 꺼내어 아들에게 건넸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왜, 별로야? 농구할까?”

사자가 벽에 걸린 미니 농구대에 공을 던져 넣으며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들 사자가 걱정 어린 눈빛으로 물었습니다.

“뛰어도 돼요?”
“응?”
“아빠가 윗집에 가서 조용히 하라고 했잖아요. 그럼 우리도 뛰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농구대를 통과한 공이 바닥에 튕겨 사자 앞으로 데구루루 굴러왔습니다. 문득 사자는 바닥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아랫집에 사는 원숭이가 생각났거든요. 언젠가 집에 찾아와 싱거운 말만 하고 돌아간 일, 이웃에게 하소연하던 원숭이 부인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사자는 말없이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공을 장난감 상자에 도로 넣었습니다.



#3
사자는 아들과 놀아주려 함께 놀이터에 갔습니다. 놀이터에는 사자의 아들보다 두어 살 많아 보이는 원숭이와 가젤이 팽이를 돌리며 놀고 있었습니다. 아들 사자가 팽이에 관심을 보이자, 아이 원숭이가 힐끗 바라보더니 물었습니다.

“너도 해볼래?”

아들 사자는 아이 원숭이가 건네는 팽이를 쭈뼛쭈뼛 받아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아이 원숭이가 알려주는 대로 팽이 돌리기를 시도했습니다. 여러 번 시도한 끝에 팽이를 돌리는 데 성공한 아들 사자가 손뼉을 치며 기뻐했습니다. 사자는 벤치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 즈음, 사자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모래성을 쌓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집에 돌아갈 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이 원숭이는 아들 사자의 몸에 묻은 모래를 친절하게 털어주었습니다.

“같이 놀아줘서 고맙구나.”
“헤헤, 내일도 같이 놀기로 했어요.”

빙긋 웃는 아이 원숭이를 보며 사자는 잠시 머뭇거리다 넌지시 물었습니다.

“얘야, 혹시 우리 집 때문에 많이 시끄러웠니?”

아이 원숭이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네. 그런데 엄마 아빠가 저도 어릴 때 많이 뛰어다녀서 아랫집 사람들을 힘들게 했대요. 그래서 이해하신대요.”

사자는 원숭이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불만을 토로하지 않고 이해해 주니 고마운 생각도 들었지요. 아울러 윗집 코끼리 가족에게 심하게 대한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다음 날, 사자는 퇴근하는 길에 제과점에 들렀습니다. 아들이 좋아하는 쿠키를 고른 사자는 이내 같은 것으로 두 개를 더 집어 들었습니다.

딩동, 딩동!

현관문을 연 원숭이는 문밖에 서 있는 사자를 놀란 듯 바라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어제 이 집 아이가 제 아들과 잘 놀아줘서요. 그리고… 저희 아이가 집에서 뛰놀 때가 많았는데, 시끄럽진 않으셨을까 해서요. 앞으로는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자가 내민 쿠키 상자를 얼떨결에 받은 원숭이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아이가 어려서 그런걸요.”

머쓱한 얼굴로 돌아선 사자는 계단을 올라 코끼리 집 벨을 눌렀습니다. 코끼리는 사자의 방문에 긴장한 얼굴이었습니다.

“아들 것 사다가 댁의 아이들이 생각나서요. 그동안 제가 예민하게 굴었던 것도 같고요.”

사자의 말에 긴장이 풀린 코끼리가 귀를 펄럭이며 쿠키 상자를 받았습니다. 계단을 내려오는 사자의 발걸음이 매우 가벼웠습니다.

집에 들어서자 아들 사자가 종종걸음으로 아빠를 마중 나왔습니다. 아들을 품에 안으며 갈기를 비비는 사자의 머리 위로 쿵, 쿵! 소리가 났습니다.

“한동안 뜸하더니 또 시작인가?”
“그럴 수도 있지. 윗집 애들이 기분이 좋은가 보네.”

아내 사자는 남편의 말에 웬일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아들 사자는 그런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 보며 빙그레 웃음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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