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갈나무의 불청객?


#1
싱그러운 바람이 떡갈나무를 흔듭니다. 스스스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비비배배 산새들의 노랫소리가 어우러집니다. 종달새가 햇살이 잘 드는 곳에 앉아 깃털을 고릅니다. 곤줄박이는 둥지를 청소하고, 멧비둘기는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한가로운 오후의 떡갈나무 풍경입니다. 그때였습니다.

따다닥, 따다닥!

별안간 들리는 소리에 셋은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떡갈나무 가운데 난 옹이구멍에서 나무 쪼는 소리가 울렸습니다.

“아이, 귀 아파!”
“뭐야, 무슨 일이지?”
“누가 왔나 봐.”

새들은 소리가 나는 옹이구멍으로 몰려갔습니다. 구멍 안에서 딱따구리가 머리를 내밀었습니다. 딱따구리는 부리에 붙은 나뭇가루를 털어내며 말했습니다.

“안녕? 난 딱따구리야. 집 지을 곳을 찾다가 이곳에 옹이구멍이 있어서 왔어. 조금만 보수하면 될 것 같아. 너희들도 이곳에 사니?”
“우린 이 나무에 터를 잡은 지 이미 오래야.”

멧비둘기가 쏘아붙이듯 말했습니다.

“그럼 우리 이웃사촌이네? 반가워.”
“평화롭던 우리 영역에 불청객이라니….”

종달새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습니다. 곤줄박이도 날개를 퍼덕이며 불만을 표했습니다. 새들의 냉대에 의기소침해진 딱따구리는 집 짓기를 멈췄습니다. 새들이 자리를 비우면 계속할 요량이었습니다.

종달새, 곤줄박이, 멧비둘기가 둥지를 짓고 살아가는 떡갈나무는 산 중턱에 있는 오래되고 커다란 나무입니다. 떡갈나무는 열매로 새들의 배를 채워주고, 무성한 나뭇잎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비가 오면 우산이 되어 주었지요. 튼튼한 가지로 둥지를 받치고 있어 바람이 부는 날에도 둥지는 끄떡없었습니다. 그런 떡갈나무를 삶의 터전 삼아 오손도손 살아가는 종달새, 곤줄박이, 멧비둘기로서는 낯선 딱따구리가 영 달갑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딱따구리를 강제로 내쫓을 수도 없었지요. 어느 동물이든 자연을 공평하게 누릴 자격이 있으니까요.

새들은 딱따구리를 멀리했습니다. 딱따구리와 마주치면 고개를 홱 돌리거나 얼른 다른 곳으로 가버렸고, 숲에서 생긴 일을 이야기할 때도 끼워주지 않았습니다. 새 터전에서 만난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던 딱따구리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힘들게 찾은 보금자리를 떠나 다른 곳을 다시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서러움이 복받친 딱따구리는 눈물을 삼켰습니다.



#2
어느 아침, 기지개를 켜던 종달새는 양식을 구하러 온 멧돼지를 만났습니다.

“멧돼지야, 안녕! 도토리 주우러 왔니?”
“응. 그런데 도토리 양이 예전만큼은 아닌 것 같아. 나중엔 겨울 식량이 모자랄지도 모르겠어.”
“그래? 나무에 무슨 일이 있나?”

종달새는 떡갈나무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군데군데 나뭇잎은 시들었고, 껍질에 윤기도 없었습니다. 옆에 있던 곤줄박이가 말했습니다.

“그러게. 요새는 둥지를 보수하려고 해도 쓸 만한 잔가지가 별로 없어.”

때마침 땅굴에서 나온 땃쥐가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언제부턴가 떡갈나무 뿌리가 말라서 생기도 없고, 이상한 냄새까지 나는 것 같아.”

종달새, 곤줄박이, 멧비둘기가 대책을 세우려고 모였습니다.

“문제가 뭘까?”
“글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인 것 같은데.”
“부엉이 할아버지께 여쭤보면 어떨까?”

곤줄박이의 말에 종달새와 멧비둘기가 맞장구를 쳤습니다. 곤줄박이는 부엉이 할아버지를 모시고 오겠다며 산 위쪽으로 날아갔습니다. 이윽고 떡갈나무에 당도한 부엉이는 나무 주변을 빙 돌며 여기저기를 살폈습니다. 돋보기로 줄기를 관찰하기도 하고, 잎사귀의 상태도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러다 부엉이는 나무줄기 곳곳에 난 미세한 구멍들을 발견했습니다.


“벌레들이 떡갈나무 속을 갉아 먹고 있어. 그것 때문에 병이 든 게야. 이대로 가다간 나무가 죽을 수도 있어.”
“나무가 죽는다고요?”
“이제 우린 어떡해….”
“그럼, 벌레를 잡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말씀인가요?”

멧비둘기의 물음에 부엉이가 대답했습니다.

“그렇지. 문제는 어떻게 잡느냐는 거지.”

부엉이가 돌아간 후 새들은 벌레를 어떻게 잡으면 좋을지 고민했습니다.

“달콤한 걸로 벌레를 유인하면 어떨까?”

멧비둘기의 말에 나머지 둘이 좋은 생각이라며 호응했습니다. 멧비둘기는 벌들에게 얻어온 꿀을 벌레 먹은 구멍 곳곳에 묻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벌레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멧돼지에게 도움을 청하는 건 어떨까? 멧돼지가 나무에 힘껏 부딪치면 벌레들이 튀어나올지도 몰라.”

종달새의 부탁을 받고 온 멧돼지가 나무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습니다. ‘쿵!’ 하는 굉음과 함께 나뭇잎과 도토리가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새들은 숨죽이고 나무를 관찰했습니다. 하지만 벌레는 한 마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좋은 방법이 없을까?”
“에휴, 나무 속에 들어 있는 벌레를 무슨 수로 잡아.”
“하지만 나무가 병들게 그냥 둘 순 없잖아.”

그때 딱따구리가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혹시 내가 도울 일이 있을까?”
“넌 신경 안 써도 돼.”

종달새의 쌀쌀맞은 태도에 딱따구리가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습니다.

“나무 속에 있는 벌레를 잡아야 한다고 들었는데, 내가 한번 해봐도 될까?”

새들은 시큰둥한 표정이었지만 별도리가 없기에 딱따구리를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3
딱따구리는 발톱으로 나무 기둥을 단단히 붙잡고는 부리로 구멍 여기저기를 두드려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이쪽에 벌레가 모여 있는 것 같은데….”

딱따구리의 부리가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나무를 쪼아 구멍을 넓힌 딱따구리는 구멍에 부리를 대고 얇고 긴 혀를 밀어 넣었습니다. 이윽고 구멍에서 부리를 떼어내자 많은 벌레들이 딸려 나왔습니다. 벌레를 뱉어낸 딱따구리는 다시 벌레가 있는 곳을 찾고 훑어내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새들은 딱따구리의 모습을 경이로운 듯 바라보았습니다.

“어느 정도 해결하기는 했는데, 벌레를 하루 만에 퇴치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계속 힘써볼 테니 너무 걱정 마.”

그날 후로도 딱따구리는 틈틈이 나무를 살피고 벌레를 잡았습니다. 떡갈나무의 상태는 서서히 회복되어 갔습니다. 가지는 튼실해졌고, 잎사귀가 파릇파릇해졌으며, 도토리의 양도 늘었습니다. 나무를 살리려 날마다 애쓰는 딱따구리를 보며, 생기를 되찾아 가는 떡갈나무처럼 새들의 마음도 점차 변해갔습니다.

“떡갈나무가 예전 모습을 되찾아서 정말 다행이야.”
“딱따구리가 없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이렇게 될 줄 모르고 불청객이라 했으니… 미안하네.”

새들은 딱따구리를 박대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잘 대해줘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곤줄박이는 아침부터 나무를 세세히 살피고 있는 딱따구리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목마르지 않아? 내가 모아둔 아침 이슬이 있는데, 좀 마실래?”
“으응, 고마워. 이따 필요하면 얘기할게.”

멧비둘기도 딱따구리 곁으로 날아와 말을 걸었습니다.

“집은 완성됐니? 구멍 안에 있어서 되게 아늑해 보이던데.”
“조금만 더 손보면 돼. 완성되면 놀러 와.”

종달새도 끼어들었습니다.

“오후에 우리랑 같이 나들이 가지 않을래? 조금만 내려가면 산어귀에 꽃동산이 있거든.”
“그래? 나도 거기 가보고 싶어.”

신이 난 딱따구리가 위아래로 날며 떡갈나무 주위를 빙빙 돌았습니다. 나머지 새들도 노래하며 딱따구리와 함께 신나게 날았습니다.

병치레를 겪은 떡갈나무는 이전보다 더 건강해졌습니다. 새들은 벌레 사건을 계기로 떡갈나무를 더욱 소중히 여겼습니다. 넷이 힘을 합쳐 나무를 보살폈고, 서로 도우며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낯선 콩새 한 마리가 떡갈나무를 맴돌며 기웃거리더니 한 곳을 택해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구경을 다녀온 종달새, 곤줄박이, 멧비둘기, 딱따구리가 그 모습을 보고 다가가 인사했습니다.

“안녕! 잘 왔어. 우린 이 나무에 사는 새들이야.”
“환영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해.”
“한 나무에 살면 가족이나 마찬가지니까 앞으로 잘 지내자.”

딱따구리는 웃음으로 환영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새들의 환대에 콩새의 마음도 따뜻해졌습니다. 싱그러운 바람이 한차례 불고 지나가자 떡갈나무 잎사귀들이 팔랑거렸습니다. 마치 기분이 좋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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