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오늘부터 우리 가족이 된 치치야. 귀엽지?”
현우가 고슴도치 우리를 거실 바닥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봇대와 찹쌀이에게 치치를 인사시켰습니다. 치치는 현우의 친척 동생이 키우던 고슴도치입니다. 친척 동생네가 외국으로 이민 가면서 치치를 더 이상 키울 수 없게 되자 현우는 부모님의 승낙을 받아 치치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봇대, 찹쌀이! 앞으로 말썽 그만 피우고 치치랑 잘 지내. 알았지?”
뚱한 표정을 짓고 있던 찹쌀이는 현우가 자리를 뜨자 하품하며 가버렸습니다. 봇대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꼬리를 흔들며 말을 걸었습니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내 이름은 봇대야. 현우 엄마가 나를 처음 발견했을 때 내가 전봇대 옆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어서 갖게 된 이름이야. 쟤는 하얘서 찹쌀이야. 현우 아빠 직장 동료의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을 때 그중 한 마리를 현우 아빠가 데려왔지. 보다시피 붙임성이 없어서 친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아침이면 현우네 가족이 등교와 출근 준비로 분주해. 내 말 듣고 있니?”
“…….”
“낯을 많이 가리는구나? 그래도 알아두면 도움이 될 거니까 계속할게. 현우네 가족이 모두 나가면 집은 적막해지지. 좋게 말하면 우리 세상이야. 오후에 현우가 학원 갔다 돌아오고, 저녁에 엄마가 퇴근해 식사 준비를 해. 식사 준비가 다 될 즈음 현우 아빠가 귀가하지. 그러면 가족 셋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함께 저녁을 먹어. 그야말로 화목한 가정의 표본이지. 모두 좋은 사람들이야. 아직은 낯설겠지만 너도 금방 적응할 거야.”
봇대가 악수를 청하려고 우리 안으로 앞발을 집어넣자, 치치는 뾰족한 가시를 잔뜩 세웠습니다.

“우아, 멋지다! 이렇게 서 있는 가시를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이야.”
치치는 봇대의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감탄하던 봇대는 자기만 보기 아깝다는 듯 찹쌀이를 불렀습니다. 캣타워에서 편한 자세로 창밖을 구경하던 찹쌀이는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느릿느릿 다가왔습니다.
“야, 치치 좀 봐. 가시가 꼿꼿이 섰… 응?”
치치의 가시는 어느새 가지런히 누워 있었습니다.
“치치, 찹쌀이가 못 봐서 그러는데 가시 좀 다시 세워 봐.”
“그래, 나도 보고 싶어.”
“내가 왜?”
“신기하니까.”
“싫어.”
“에이, 가족끼리 그 정도도 못 해주냐?”
“가족이라고 한 적 없는데?”
“아까 현우가 그랬잖아. 오늘부터 우린 가족이라고.”
“나를 데려온 현우는 가족이지만 너희들이랑은 그럴 생각 없어.”
치치는 톱밥 사이로 얼굴을 묻었습니다.
#2
봇대는 현우 아빠와 함께 이른 아침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상쾌한 바깥 공기를 마음껏 쐬고 온 봇대는 기분이 날아갈 듯했습니다. 사료가 꿀맛인 듯 허겁지겁 먹는 봇대를 보며, 치치가 찹쌀이에게 물었습니다.
“쟤는 아침마다 밖에 나갔다 와?”
찹쌀이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응, 봇대는 밖에 안 나가면 스트레스받아. 그래서 현우 가족이 하루에도 몇 번씩 데리고 나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녀석이네.”
아침 식사 후 설거지를 마친 현우 엄마는 청소기로 바닥을 밀었습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뭉쳐 있던 털들이 청소기 안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치치가 이번에는 봇대에게 물었습니다.
“현우 엄마는 맨날 저렇게 청소해?”
“응. 찹쌀이 몸에서 빠지는 털이 어마어마하거든. 지금처럼 털갈이 시기에는 거의 뿜어내는 수준이야. 그래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청소해야 해.”
‘쟤도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녀석이구먼.’
집을 치우고 출근 준비를 마친 현우 엄마가 현관을 나서자, 집에는 봇대와 찹쌀이, 치치만 남았습니다.
오후가 되니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를 내리던 하늘이 맑게 갰습니다. 봇대는 말린 고구마를 뜯어 먹는 데 몰입하고, 찹쌀이는 볕이 잘 드는 거실 창가에 앉아 혀로 털을 정리합니다. 치치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지요.
그때였습니다. 어디선가 몸집이 큰 파리 한 마리가 날아와 평온한 공기를 가르며 거실을 빙빙 돌았습니다. 파리를 포착한 찹쌀이는 털을 핥다 말고 매서운 눈으로 파리의 동선을 좇았습니다. 빠른 속도로 거실을 날아다니던 파리는 하필 벼르고 있는 찹쌀이의 코에 내려와 앉았습니다. 찹쌀이는 앞발로 코 앞을 휘저었습니다. 파리가 찹쌀이의 앞발을 피해 소파 옆에 있는 올리브나무 화분에 붙었습니다. 찹쌀이는 화분을 향해 펀치를 날렸습니다. 그 바람에 화분이 넘어가 흙이 바닥으로 우르르 쏟아졌습니다. 잔뜩 약이 오른 찹쌀이는 끈질기게 파리를 쫓았습니다. 여기저기 달음박질하는 찹쌀이 주변으로 털들이 훌훌 흩날렸습니다.

화분 넘어가는 소리에 잠에서 깬 치치가 그 광경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치치의 경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봇대가 어느 틈엔가 화장실에 걸린 두루마리 휴지의 끄트머리를 물고 거실로 달려왔습니다. 휴지가 거실을 가로지르며 점점 길어지자, 신이 난 봇대는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봇대가 도는 방향을 따라 휴지가 봇대의 몸을 칭칭 감았습니다. 그러다 휴지가 끊어지자, 봇대는 휴지를 정신없이 물어뜯었습니다. 뜯긴 휴지 조각들로 거실은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에휴, 산만해. 현우네 가족은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애들을 어떻게 키우는 거지?’
평온을 되찾은 봇대와 찹쌀이는 어질러진 거실을 보고 그제야 정신이 드는 듯했습니다.
“이제 곧 현우가 올 텐데. 어떡하지? 우리 또 사고 쳤네….”
봇대의 말에 치치가 단호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우리라니? 너희들이지!”
#3
“띠리릭!”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셋은 긴장한 채 숨을 죽였습니다. 현우가 친구 수민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봇대, 찹쌀이-.”
현우 집에 자주 놀러오는 수민이 익숙한 듯 둘을 불렀습니다. 봇대가 번개처럼 달려가 앞발로 수민의 다리를 짚고 서서 꼬리가 떨어질 듯 마구 흔들어 댔습니다. 수민은 그런 봇대를 두 손으로 쓰다듬었습니다. 슬금슬금 수민의 곁으로 다가간 찹쌀이는 배를 보이며 바닥에 드러누웠습니다. 수민은 찹쌀이의 배를 살살 문지르며 예뻐했습니다.
“야, 너희들 또 사고 쳤냐?”
현우가 거실을 보고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치치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 같아도 한숨 나오겠다.’
“이제 치치도 왔으니까 말썽 피우지 말라고 했지!”
“치치?”
“응, 얼마 전에 친척 동생 집에서 고슴도치를 데려왔거든.”
“야, 너희 집은 동물원 해도 되겠다.”
“우리 가족 다 동물을 좋아하니까. 그리고 귀엽잖아.”
“고슴도치가 귀엽다고? 봇대는 붙임성이 좋아 사람을 격하게 반겨주니 귀엽고, 찹쌀이는 도도한 척 뚱해도 애교 부릴 땐 사랑스럽지. 그런데 고슴도치는…. 가시 때문에 안을 수도 없고 예민해서 키우기 힘들다고 들었는데? 손도 많이 가고 말야.”
치치는 수민의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은 봇대와 찹쌀이처럼 집을 엉망으로 만들지도 않고 우리 안에 얌전히 있어서 수고를 덜 끼치는 줄 알았거든요. 봇대, 찹쌀이랑은 다르다고 생각했지요. 곰곰 돌이켜 보니 예민해서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한 건 사실이었습니다. 봇대와 찹쌀이처럼 사람을 반기거나 애교를 부리지도 않고 누군가의 손이 닿을라치면 오히려 가시를 세웠으니, 치치는 수민의 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봇대와 찹쌀이는 현우와 수민이 주는 간식을 먹으며 재롱을 피웠습니다. 현우와 수민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치치는 마음이 울적해졌습니다.
낚싯대 모양의 장난감으로 찹쌀이와 놀아주던 현우가 문득 치치를 보고는 다가왔습니다.
“치치, 혼자 있으니까 심심하지? 같이 놀자.”
현우는 고슴도치 우리를 가까이 끌어당겼습니다. 봇대와 찹쌀이가 따스한 시선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시선을 주고받으며 한자리에서 어울리다 보니 치치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행복한 기운에 밀려난 듯, 울적했던 마음도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던 수민이 시계를 확인하고 집에 갈 채비를 하자, 현우가 수민을 배웅하려고 따라나섰습니다. 봇대와 찹쌀이는 닫히는 현관문을 아쉬운 듯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치치가 주뼛거리며 말했습니다.
“너네, 내가 가시 세우는 거 보고 싶다고 했지?”
봇대와 찹쌀이가 반색했습니다. 치치는 심호흡을 한번 하더니 등에 힘을 주어 가시를 꼿꼿이 세웠습니다.
“우아!”
봇대와 찹쌀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감탄했습니다. 가시를 세운 모습에 호감을 갖다니, 치치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고마웠습니다. 새로운 가족과 사이좋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치치는 다시 한번 볼끈, 등에 힘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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