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전거가 좋은 주인을 만난 것 같아 기쁘네요.”
“잘 사용할게요. 저렴하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앤디는 그동안 타고 다니던 자전거를 중고 거래로 미련 없이 처분했습니다. 더 이상 자전거를 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앤디에게는 자동차가 생겼습니다. 모서리가 둥근 유선형 디자인에 작지만 다부져 보이는 파란색 경차로, 아버지가 몰던 것입니다.
앤디가 물려받은 자동차는 그의 가족과 오랜 시간을 함께했습니다. 앤디의 아버지는 앤디와 그의 여동생이 어렸을 때, 분유와 기저귀 값을 벌기 위해 이 자동차를 타고 물건을 팔러 다녔습니다. 아이들이 걷고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드넓은 세계를 보여주려고 아내와 아이들을 차에 태워 숲으로 바다로 내달렸지요.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간 후로는 자동차로 통학을 시켜주었습니다.
앤디의 아버지가 부지런히 일하는 동안 앤디의 어머니도 틈틈이 일하며 살림을 알뜰히 꾸렸습니다. 덕분에 그리 넉넉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 않게 생활할 수 있었지요. 앤디의 아버지는 형편이 나아지고도 구태여 자동차를 바꾸려 하지 않았습니다. 평소 세심하게 관리한 까닭에 특별히 고장 난 곳도 없고, 무엇보다 차에 대한 애정이 깊었기 때문입니다. 주위에서 자동차를 안 바꾸느냐고 물을 때마다 앤디의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아직 쌩쌩하다구!”
그렇게 앤디의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던 자동차는 얼마 전 초보 운전 스티커가 붙은 채 앤디에게 왔습니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앤디는, 부모님의 검소함을 닮아 졸업반이 될 때까지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자전거를 이용하며 교통비도 아꼈지요. 이제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리는 차들을 피해 다니지 않아도 되고, 땡볕 아래서 페달을 밟느라 땀 흘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비 오는 날 복잡한 전철에서 사람들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지요. 앤디는 자동차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습니다. 운전대를 잡으니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았죠.
앤디는 홀가분한 듯 자전거를 실었던 트렁크를 힘껏 닫고 손에 묻은 먼지를 털었습니다. 손목시계를 보니 아르바이트 갈 시간까지 여유가 있었습니다.
‘운전 연습도 할 겸 새로운 길로 가볼까?’
앤디는 운전석 문을 열고 심호흡을 크게 했습니다. 그러고는 한쪽 다리를 운전대 아래에 집어넣으며 천천히 허리를 굽혀 자동차 안으로 몸을 욱여넣었습니다. 이어 몸을 최대한 안쪽으로 밀며 나머지 다리를 조심스레 끌어당겼습니다. 머리가 천장에 부딪히지 않으려면 엉덩이를 등받이로부터 살짝 떼고 머리를 약간 숙여야 했습니다. 운전석에 앉은 다음 한쪽 엉덩이를 들고 문을 힘껏 당겼습니다. 다행히 문이 몸에 부딪혀 튕겨 나가지 않고 제대로 닫혔습니다.
‘휴-.’
구부정한 채로 핸들을 잡은 앤디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편안한 자세를 찾은 뒤 시동을 걸었습니다. 앤디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자동차에 유일한 결함이 있다면, 그가 몰고 다니기에 차가 너무 작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니, 자동차의 결함이라기보다 그의 몸집이 예사롭지 않다고 해야 맞겠네요.
먹성이 좋은 앤디는 청소년기에 발육이 남달랐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몸집이 커졌고, 해가 바뀌면 몸에 맞는 옷이 없었습니다. 성장이 멈춘 이후에도 키와 배 둘레가 남들보다 한 뼘은 더했습니다. 그런 앤디는 운전이 서툴러 핸들을 잡으면 잔뜩 긴장하는 데다 자세마저 웅크린 탓에,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릴 때면 온몸이 뻐근했습니다. 그래도 차가 없던 때를 생각하면 그마저도 행복했지요.
#2
“라라 랄라-.”
앤디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일부러 먼 길을 돌아, 아르바이트하는 대형마트 주차장에 들어섰습니다. 주차장에 방치된 카트를 수거하던 동료 노아가 그를 발견하곤 다가왔습니다.
“어이, 초보! 운전은 할만해?”
“물론이지. 아직 무사고야.”
“네가 타서 그런지 차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걱정 마. 땅에 닿지는 않을 테니.”
“차에 껴서 못 나오는 건 아니지?”
앤디의 주먹을 가까스로 피한 노아가 손을 흔들며 카트를 밀고 갔습니다. 자전거를 탈 때 재주 부리는 곰 같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던 앤디는, 자전거가 자동차로 바뀐 이후에도 종종 놀림조의 말을 들었습니다. 자가용을 갖게 된 초반에는 만족감이 한창 고조되어 있었기에 어떤 말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계속 듣다 보니 언젠가부터 생선 가시처럼 목구멍에 걸리는 듯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취업을 준비하는 앤디에게 삼촌이 한 회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하자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오랜만에 정장을 꺼내 입은 앤디는 바지가 몸에 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긴장된 마음을 추스르며 집을 나선 그는 차창에 비친 모습을 보고 넥타이 위치를 바로잡았습니다. 담벼락에 앉아 커다란 막대사탕을 핥고 있던 집주인의 말괄량이 딸이 툭 던지듯 말했습니다.
“자동차가 불쌍해….”
목구멍에 걸린 생선 가시가 움찔하는 것 같았습니다. 철없는 아이가 하는 말에 얼굴 붉히는 쩨쩨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던 앤디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대꾸했습니다.
“이래 봬도 나보다 튼튼한 녀석인걸!”
적절한 대응이라 생각하며 운전석 문을 열고 한쪽 다리를 집어넣을 때였습니다.
‘찌직-.’
그의 육중한 몸을 이기지 못해 바짓가랑이의 박음질이 그만 터져버렸습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차에 몸을 싣던 앤디가 상황을 파악하곤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부아가 났습니다. 그동안 덮어놓았던 불편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솟구치는 듯했습니다. 그는 노여움을 애써 가라앉히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몸에 맞는 바지를 찾아 입었습니다. 자켓과 어울리지 않는 원단의 바지였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앤디의 후일담을 들으며 폭소를 터트린 친구 제리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습니다.
“어떻게 됐긴, 면접은 완전 망쳤지.”
“하하하, 그러지 말고 차를 바꾸는 게 어때?”
“아버지께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는걸. 새 차를 사기에도 아직 무리고.”
그러자 또 다른 친구 빌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습니다.
“이게 다 너한테 안 맞는 차 때문이잖아. 내 차 한번 타보면 생각이 바뀔걸?”
“참, 너 차 샀다고 했지.”
앤디의 목소리가 작아졌습니다. 그날 앤디와 제리는 빌의 자동차를 시승했습니다. 빌의 중형 자동차는 몸을 한껏 굽히지 않아도 좌석에 쉽게 앉을 수 있었고, 허리를 꼿꼿이 세워도 머리가 천장에 닿지 않았습니다. 등받이에 몸을 누이니 안락한 승차감에 눈이 스르르 감길 정도였습니다. 자신의 작은 자동차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편안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앤디는 몸으로는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마음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습니다. 묘한 감정을 털어버리려 그는 휙휙 지나가는 차창 밖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3
휴일 아침, 앤디가 미뤄온 세차를 하려고 일찍이 집을 나섰습니다. 세차장에 도착한 그는 차 문을 모두 활짝 열어젖히고 발매트를 걷어냈습니다. 걷어낸 발매트는 진공청소기로 먼지를 흡입하고 세제를 도포한 뒤 브러시로 문질렀습니다. 고압 세척기로 거품을 씻어낸 발매트는 잘 마르도록 바닥에 펼쳐 두었습니다. 이어 에어건을 집어 든 그는 컵홀더와 통풍구, 대시보드 등의 먼지를 제거하고, 청소기로 바닥을 청소했습니다. 그러고는 물기 있는 천으로 차량 내부 곳곳을 닦았습니다. 작은 차 안에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자 앤디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아, 글로브박스도 청소해야지.’
그러고 보니 글로브박스를 열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운전석에 앉은 앤디는 팔을 뻗어 글로브박스를 열었습니다. 그러자 하얀색 봉투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게 뭐지?’
앤디는 봉투 안에 든 종이를 펼쳤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 앤디
네가 태어났을 때, 나와 네 엄마는 어렸고 수중에 가진 것이 없었어.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돈을 꾸어 어렵게 이 차를 마련했지. 양육비와 생활비를 벌며 빚도 갚아야 했기에 열심히 일했어. 비록 가난했지만 너희를 데리고 어디든 갈 수 있어 우린 매우 행복했단다. 지구 스무 바퀴만큼의 거리를 달리는 동안 우리 가족의 추억이 쌓인 이 차를 네가 기꺼이 물려받는다니, 무척 기쁘구나. 더 좋은 차를 물려주지 못해 미안하다. 부디 안전하게 타고 다니렴. 아빠가.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글자 하나하나가 앤디의 마음 구석구석을 채웠습니다. 아버지가 오래된 작은 자동차를 버리지 못한 이유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이 차가 소중한 건 이 차와 함께한 가족과의 추억이 소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앤디는 아버지로부터 단순히 자동차를 물려받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앤디는 아버지께 물려받은 작은 자동차가 특별하고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충분히 감당할 만큼의 불편이, 주위에서 불어대는 입김으로 부풀려져 자신만의 행복을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처음 운전대를 잡았을 때의 행복이 앤디의 마음에 다시금 차올랐습니다.
자동차 밖으로 나온 앤디는 차 문을 모두 닫고 세척기로 물을 골고루 뿌렸습니다. 그러고는 스펀지에 세제 거품을 묻혀 차체와 타이어, 휠 등을 꼼꼼하게 문질렀습니다. 그런 다음 다시 물을 뿌려 거품을 말끔히 씻어냈습니다. 먼지를 머금은 거품과 함께 마음의 불순물도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듯했습니다.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 것으로 세차를 끝낸 앤디는 개운한 마음으로 운전석에 앉았습니다. 시동을 걸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던 앤디가 눈썹을 씰룩거렸습니다.
‘차가 작아서 세차가 수월하군. 어디 그뿐이야? 좁은 길도 요리조리 잘 다닐 수 있고, 주차도 편리하지. 암, 초보 운전자인 나에게 이만한 차가 없어. 완전 제격이라구!’
앤디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습니다. 햇살에 비쳐 반짝반짝 빛나는 앤디의 작은 자동차가 세차장을 부드럽게 빠져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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