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얘들아, 얼른 일어나 봐.”
이른 아침, 아이들의 침실 문을 연 아빠가 들뜬 목소리로 아이들을 깨웠습니다. 두세 살 터울의 첫째 벨라, 둘째 막스, 막내 레오가 아빠의 목소리에 몸을 뒤척였습니다. 아빠는 차례차례 아이들의 볼에 입을 맞추며 등을 두드렸습니다. 벨라가 헝클어진 머리를 넘기며 물었습니다.
“아빠, 무슨 일이에요?”
“보여줄 게 있단다. 아마 깜짝 놀랄 거야.”
궁금증을 자아내는 아빠의 말에, 막스와 레오도 눈을 떴습니다. 셋은 아빠를 따라 아래층 거실로 내려갔습니다. 재봉틀로 쿠션 커버를 만들던 엄마가,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들에게 다가가 아침 인사를 건넸습니다.
“우리 세 보물, 잘 잤니?”
커튼으로 가려진 거실 창 앞에서 아빠가 눈짓을 하자, 엄마도 아빠 옆으로 가 한쪽 커튼을 잡았습니다. 아이들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아빠 엄마를 바라보았습니다.
“여러분, 겨울 왕국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아빠 엄마가 커튼을 양쪽으로 와락 젖히자, 아이들의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졌습니다. 창밖에는 하얀 세상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길도, 지붕도, 나무도, 온 마을이 하늘에서 펑펑 내리는 함박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었습니다. 창가로 달려간 막스가 들떠서 말했습니다.
“누나, 레오. 눈싸움하러 가자!”
“난 눈사람 만들래.”
레오도 신이 나 방방 뛰었습니다.
여느 때보다 아침밥을 든든히 먹은 셋은, 엄마가 챙겨준 모자와 장갑으로 무장하고는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아이들이 가는 곳마다 발자국이 찍혔고, 찍힌 발자국을 보며 아이들은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이웃에 사는 또래 친구들과 편을 나눠 신나게 눈싸움도 했습니다.
“형, 누나. 이제 눈사람 만들자. 엄청 크게!”
“좋아! 내가 머리를 만들 테니 막스, 넌 레오랑 몸통을 만들어. 근데 레오, 네 점퍼 어디 갔어?”
“눈싸움할 때 땀이 나서 저기 나무에 걸어놨어.”
의기양양한 레오의 대답에, 벨라는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셋은 눈사람 만들기에 돌입했습니다. 벨라는 눈덩이를 단단히 뭉쳐 땅에 대고 굴리며 불려갔고, 막스와 레오는 주위 바닥의 눈을 긁어모아 몸통을 점점 키워 갔습니다. 셋은 추위도 잊은 채 눈덩이를 키우는 데 열중했습니다. 몸통이 레오의 허리 높이만큼 쌓였을 때, 벨라가 만든 눈덩이를 셋이 힘을 모아 그 위에 얹었습니다. 그러고는 나뭇가지를 꽂아 눈, 코, 입을 만들었습니다. 눈사람을 완성한 셋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습니다.
#2
“콜록콜록!”
레오가 기침을 하자 몸이 들썩였습니다. 엄마는 레오의 침대에 걸터앉아 걱정스러운 얼굴로 레오의 이마를 짚어보곤 이불을 목까지 올려주었습니다.
“약 먹었으니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레오가 점퍼 벗었을 때 입혀주는 건데….”
곁에 선 벨라가 미안해하자, 엄마는 고개를 저으며 벨라를 안아주었습니다. 그때, 막스가 침실 문을 빼꼼 열고 벨라에게 와보라며 손짓했습니다. 막스를 따라 거실 창가로 간 벨라가 미간을 찌푸렸습니다.
“힝, 눈사람이 망가져 버렸네.”
“레오가 얼마나 좋아했는데, 저걸 보면 실망하겠지?”
침울한 표정을 짓던 벨라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습니다.
“다시 만들면 되지. 가자.”
벨라와 막스는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새 기온이 올라 눈은 대부분 녹아버렸고, 눈사람의 잔해들을 모아 다시 뭉쳐보아도 이전 크기로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누나, 눈사람을 만들 눈이 없는데 어떡해?”
벨라가 한참 고민하더니 눈을 반짝이며 말했습니다.
“좋은 생각이 났어. 흰 눈처럼 하얀 솜으로 만드는 거야!”
막스의 표정도 밝아졌습니다. 집으로 달려간 둘은, 엄마가 쿠션을 만들려고 사놓은 솜을 써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커다란 곰인형을 갈라 그 속에서 빼낸 솜도 합쳤습니다. 그래도 양이 부족하자, 둘은 모아놓은 용돈을 들고 문방구로 내달렸습니다.
“아저씨, 솜 있어요?”
“솜은 없단다.”
둘은 문방구를 나와 장난감 가게로 갔습니다.
“아주머니, 솜 있어요?”
“솜은 없는데, 어디에 쓰려고 그러니?”
“동생이 좋아하는 눈사람을 만들려고요. 그 앤 감기에 걸려 누워 있거든요.”
장난감 가게 주인은 미소를 짓더니 아이들을 문밖으로 데려가 손가락으로 한곳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기, 이불 가게에 가보렴.”
장난감 가게 주인이 알려준 이불 가게에서 마침내 솜을 구한 둘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 정도면 집에 있는 솜이랑 합쳐서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 수 있겠지?”
“응, 충분할 것 같아.”
벨라와 막스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습니다. 들뜬 막스가 누나를 채근하며 달리다, 튀어나온 보도블록에 걸려 그만 넘어졌습니다.
“막스, 괜찮아?”
막스는 무릎을 감싸며 얼굴을 찡그리다 얼른 훌훌 털고 일어났습니다.
“응, 괜찮아. 빨리 눈사람 만들러 가자.”
#3
벨라와 막스는 솜뭉치를 앞에 두고 또다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솜만 있으면 눈사람을 만들 수 있을 거란 기대와 달리, 솜은 눈처럼 한데 뭉쳐지지 않았습니다.
“누나, 아무리 눌러도 솜이 서로 안 붙는데 어떡하지?”
“휴, 그러게 말이야.”
“엄마한테 도와달라고 하자. 엄마는 할 수 있을 거야!”
막스의 손에 이끌려 온 엄마가 솜뭉치를 보더니 안경을 추키며 말했습니다.
“인형처럼 눈사람 모양의 외피를 만들어 그 안을 솜으로 채우면 어때?”
“우아, 좋아요!”
엄마는 흰 천을 뚝딱 재단해 재봉틀로 쓱쓱 박아 눈사람 모양의 외피를 만들었습니다. 벨라와 막스가 그 안을 솜으로 꽉꽉 채우자 엄마가 입구를 바늘로 꿰맸습니다. 그러고는 갈색 실로 마치 나뭇가지처럼 눈, 코, 입을 수놓아 눈사람, 아니 솜사람을 완성했습니다. 벨라와 막스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감탄했습니다.
레오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용히 솜사람을 들고 나간 세 사람은, 눈사람이 있던 위치에 솜사람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바닥이 둥근 솜사람은 가만히 서 있지 않고 자꾸만 넘어졌습니다.
“여보, 얘들아.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에게 엄마가 상황을 설명하자, 아빠는 곧장 창고로 가서 나무 막대와 여러 도구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고는 능숙하게 흙바닥을 파고 막대를 세워 지지대를 만든 뒤, 핀을 박는 도구로 지지대에 솜사람을 고정시켰습니다. 솜사람은 그전처럼 넘어지지 않고 꼿꼿이 세워졌습니다.
“우아, 아빠 최고!”
그날 저녁, 온 가족이 식탁에 앉았습니다. 엄마는 아픈 레오를 위해 닭고기 수프를 만들었습니다. 감기 증세가 한결 나아진 레오는 문득 눈사람이 떠올라 거실 창가로 갔습니다. 레오가 자리에 돌아와 앉으며 이상하다는 듯 물었습니다.
“아빠! 나무에 있던 눈도, 길에 있던 눈도 다 녹아 없어졌는데, 눈사람은 그대로예요.”
“그것 참 신기하구나. 하나님이 우리 레오를 위해 눈사람을 지켜주고 계시나 봐.”
벨라와 막스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참았고, 그 모습을 엄마가 흐뭇하게 바라보았습니다.
휴일 아침, 세 아이가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로 온 집이 떠들썩했습니다.
“엄마, 아빠.”
“여기 보세요.”
“겨울 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벨라, 막스, 레오가 거실 커튼을 열어젖히며 꺄르르 웃었습니다. 창밖에는 또다시 함박눈이 내려 세상을 온통 하얗게 칠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는 아빠와 재봉틀을 돌리는 엄마에게 우르르 달려가 매달렸습니다.
“오늘은 엄마 아빠랑 같이 눈사람 만들고 싶어요.”
“그럼 지난번 눈사람보다 더 크게 만들 수 있겠다.”
“오늘은 더워도 점퍼 안 벗을게요.”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아빠가 말했습니다.
“그래. 나가서 친구 눈사람을 만들어주자꾸나.”
“와!”
앞마당에 세워진 솜사람 위에도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여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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