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만나러 가는 길


“여물은 제가 잘 챙길 테니, 소 걱정은 말고 편히 다녀오세요.”
“고맙네. 어제까지 날씨가 흐려서 오늘 배가 안 뜨려나 맘 졸였는데, 다행히 날씨가 좋구먼.”
“암요, 서울 아들네 잘 다녀오시라고 하늘이 도와주네요.”

정갈하게 차려입은 김 할아버지와 박 할머니는 옆집 새댁의 배웅을 받으며 선착장으로 갔습니다. 매표소 직원이 할아버지를 보고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오늘은 어쩐 일로 어머님까지 동행하셨네요? 어머님은 뱃멀미가 심해 장날에도 어르신만 다녀오셨잖아요.”
“으응, 아들네 좀 다녀올라고. 멀미약 먹었으니 할멈도 괜찮겄지.”

김 할아버지와 박 할머니는 늦은 나이에 얻은 외아들이 서울에 있는 학교를 나와 장가가서 아이를 낳을 때까지 서울행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소를 먹이느라 하루도 집을 비울 수 없는 데다, 명절이면 으레 아들이 집으로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박 할머니가 멀미를 심하게 해서, 대중교통을 여러 번 갈아타고 먼 길을 다녀오면 몸이 견뎌내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 할머니가 서울행을 마음먹은 건 얼마 전 며느리의 전화를 받고 나서였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큰 결심을 한 만큼 따라주기로 했습니다. 그날부터 노부부는 짐을 싸고, 아들 집에 가져갈 음식과 식재료들을 챙겼습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집 떠날 채비를 마친 노부부는 걱정과 설렘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승객을 태운 통통배가 넘실대며 물살을 가르기 시작하자 갈매기 떼가 끼룩끼룩 소리를 내며 따랐습니다.

“할멈, 괜찮소?”
“갈 길이 먼데 벌써부터 안 괜찮으면 어쩌우. 오랜만에 나오니 기분이 좋구려.”
“그래도 힘들면 얘기하게.”

배가 육지에 닿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기차역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습니다. 할아버지의 손짓에 차를 세운 택시 기사는 운전석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며 말했습니다.

“제가 트렁크에 짐을 실을 테니, 어르신들은 차에 타고 계세요.”
“기사 양반이 참 친절하구먼.”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흡족했습니다. 그런데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은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파란색 보따리가 어디 갔지?”
“네? 제가 분명 다 실었는데요.”
“하이고, 큰일 났네. 그 보따리 안에 중요한 게 들었는디.”
“그럼 여기 잠시만 계세요. 제가 어르신들 타셨던 곳에 얼른 다시 가보겠습니다.”
“기차 시간이 다가오는디. 기사 양반, 빨리 좀 갔다 와야 하겠네.”

택시 기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택시를 잡았던 곳으로 황급히 되돌아갔습니다.

“보따리가 귀하게 보이진 않으니 누가 가져가지는 않았을 거요. 기사 양반이 금방 가져온다고 했으니 기다려보자고.”

할아버지는 발을 동동 구르는 할머니를 안심시켰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도 애가 타는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서울행 기차가 하루에 두 대밖에 없어서, 타려던 기차를 놓치면 일곱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보따리를 포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할머니가 중요하다고 말한 보따리 속 내용물은 전복, 새우, 문어, 미역 같은 해산물이었습니다. 아들은 물론 며느리와 손녀까지 해산물을 좋아해 애지중지 챙겨온 거라 놓고 갈 순 없었습니다. 금방 온다던 택시는 좀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러다 진짜 기차 놓치는 거 아닌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습니다. 택시는 기차 출발 시간이 임박해서야 돌아왔습니다.

“보따리 찾았습니다! 짐을 실을 때 제가 빠뜨렸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되돌아가는 길 차선에 사고가 나서 어찌나 막히던지, 많이 지체됐습니다. 기차가 떠난 건 아니죠?”
“출발 시간이 임박했는디, 가 봐야지. 할멈, 어서 갑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허둥지둥 짐을 들고 달렸지만 급한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플랫폼에 도착하자 기차는 이미 출발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역무원에게 다급히 손짓해 봤지만, 기차를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멀어지는 기차 꽁무니를 허망한 얼굴로 바라보았습니다.

“이를 어쩐담?”
“다른 수가 없는지 역무원한테 한번 물어봐요.”

역무원은 다음 기차를 기다리느니 고속버스를 타면 더 빨리 도착할 거라고 일러주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고속버스터미널로 가기 위해 또다시 택시를 잡았습니다. 택시 기사가 트렁크 문을 열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짐을 빠뜨릴세라 하나하나 눈으로 확인해 가며 실었습니다. 터미널에 내려 서울행 버스 시간표를 보니 30분 뒤에 있었습니다.

“할멈. 내가 요깃거리를 사 올 테니, 여기서 짐 지키고 있구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뒤로하고 매점으로 향했습니다. 대합실 의자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할머니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습니다.

“앞이 안 보여서 그러는데, ○○ 가는 버스 어디서 타는지 좀 알려주시오.”

할머니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검은 안경을 쓴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습니다. 주위에 다른 사람은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버스 승차장마다 적힌 지역명을 눈으로 살핀 끝에 그 사람이 말한 곳을 찾아냈습니다. 터미널 맨 끝에 있는 승차장이었습니다.

“몸을 오른쪽으로 조금 돌려서 끝까지 곧장 걸어가시우.”

그는 꾸벅 인사를 하고는 할머니가 일러준 대로 가는가 싶더니 점점 다른 방향으로 틀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할머니는 벌떡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서는 직접 길을 안내했습니다. 지팡이로 장애물을 확인하며 한 걸음씩 내딛는 그의 속도에 맞춰 걷자니 속도가 더뎠습니다. 그가 버스에 올라타는 모습까지 확인한 할머니가 다시 자리로 돌아왔을 때, 할아버지는 말도 없이 사라진 할머니를 찾느라 애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내가 다섯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닌디, 어디 잠깐 갔는 갑다 하믄 될 걸 뭘 그리 호들갑이우.”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아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나를 잘 붙잡고 다니게.”
“허허, 알았수.”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기차를 놓친 건 아깝지만 버스라도 타게 돼 다행이라며 한시름 놓인다는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러고는 매점에서 사 온 빵과 우유를 나눠 먹었습니다. 새벽부터 서두른 데다 보따리 사건으로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 탓에, 버스가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눈꺼풀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내려갔습니다. 버스는 한참을 달렸습니다. 단잠에 빠졌던 할아버지는 버스가 정차하는 느낌에 눈을 떴습니다. 버스를 세운 기사가 말했습니다.

“휴게소입니다. 15분 후에 출발하겠습니다. 늦지 않게 착석해 주세요.”

멀미가 심한 할머니는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조심스레 깨웠습니다.

“할멈, 일어나 봐.”
“으응, 여기가 어디우?”
“휴게소에 왔으니 화장실 갔다 오자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차에서 내려 팔다리를 움직이며 몸을 풀었습니다. 그러고는 각자 볼일을 보고 화장실 앞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먼저 나온 할머니는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배를 감싸며 나오는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아까 먹었던 우유가 탈이 났나, 배가 살살 아프더라고. 얼른 갑시다. 늦을라.”

할머니는 앞장서는 할아버지 뒤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찾아간 버스는 다른 지역으로 가는 버스였습니다.

“이상허다. 여기가 맞는데?”
“우리가 탔던 버스는 빨간색 아니우?”
“빨간색이었다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빨간색 버스를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빨간색 버스 중 서울행은 없었습니다. 넓은 주차장을 한참 돌아다니다 보니 버스 기사가 말한 15분이 이미 지나버렸습니다. 초조해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무나 붙잡고 물었습니다.

“서울행 버스 봤소?”

사람들은 다들 고개를 저으며 지나갔습니다. 그러다 어느 젊은이가, 자신이 탄 버스 옆에 주차된 버스가 서울행이었다며 직접 안내해 주었습니다. 서울행 버스는 빨간색이 아닌 파란색이었습니다.

“아이고, 버스를 못 찾아 늦었소. 미안하우, 기사 양반.”
“이렇게 늦으시면 어떡합니까! 승객들이 다들 기다리고 있는데.”

기사의 볼멘소리에 주눅이 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자리로 가면서 통로 좌우에 앉은 승객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습니다. 또다시 한참을 달린 버스는 오후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모든 게 낯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지하철을 탔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몇 정거장을 달려 다른 노선으로 갈아탄 뒤 또 몇 정거장을 지나 마침내 아들이 사는 동네에 도착했습니다.

양손에 짐을 들고 한 걸음 한 걸음 아들 집으로 향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 먼 길을 어떻게 오셨어요. 길도 잘 모르시면서….”

마주 앉은 아들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습니다. 큰 수술을 받은 아들은,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아프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회복될 무렵에야 며느리가 소식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들의 말에 손사래를 쳤습니다. 얼굴에서 지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우린 하나도 안 힘들었다. 그렇지, 영감?”
“암, 아들 덕분에 서울 구경도 하고 좋았지.”

할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수술이 잘됐다니 다행이다. 고생 많았다.”

할머니는 아들의 야윈 등을 손바닥으로 천천히 쓸어내렸습니다. 창밖에는 험난했던 하루가 저물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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