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 코코와 장수풍뎅이 아저씨


#1
꽃잎 위에 살포시 앉았다가 널따란 날개를 펄럭이며 다른 꽃잎으로 우아하게 날아가는 노랑나비를, 코코는 산초잎을 갉아 먹다 말고 눈을 떼지 못한 채 바라보았습니다. 코코는 통통한 몸매를 가진 초록색 애벌레입니다. 좋아하는 건 먹는 것과 자는 것. 장래 희망은 나비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나비가 되는 것입니다. 코코가 노랑나비를 눈으로 따라가며 자신의 황홀한 미래를 그리던 그때 찬물을 끼얹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장수풍뎅이 아저씨였습니다.

“에헴, 요새 애벌레들은 인사할 줄 모른다니까!”

어느 틈에 코코 곁에 와 있던 장수풍뎅이 아저씨는 갑옷처럼 단단하고 반질반질한 등껍질과 머리 위로 쭉 뻗은 커다란 뿔로 위용을 뽐냈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코코는 인사 안 하는 애벌레가 된 것이 못내 억울했지만, 아저씨가 와 있는 줄 몰랐다고 말해도 소용없을 것 같았습니다.

“오늘도 늦잠 잤냐?”
“아뇨, 오늘은 일찍 일어났어요.”

코코가 자신만만하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장수풍뎅이 아저씨는 여전히 못마땅하다는 듯 팔짱을 끼며 말했습니다.

“내가 애벌레일 때는 말이야, 매일 새벽이슬에 세수하고 하루를 시작했어. 요새 애벌레들은 너무 게을러, 쯧쯧. 그리고 먹이 먹을 때 연한 새잎만 골라 먹던데, 닥치는 대로 먹어야지 그렇게 깨작깨작 먹으면 못 써.”
‘또 잔소리 시작이군….’
“자고로 건강한 나비가 되려면 말이야, 부지런히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나중에 날갯짓 두 번 하고 숨차다고 헉헉대지 않으려면.”
‘아저씨, 그냥 가던 길 가시면 안 돼요?’

장수풍뎅이 아저씨는 코코의 쀼루퉁한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습니다.

“너 풍뎅이 되어봤냐? 난 애벌레 되어봤거든.”
‘아무렴요.’
“어른이 하는 말 하나도 틀린 것 없어. 그러니 잔소리처럼 듣지 말고 새겨들어.”
‘이제야 끝났군.’

코코는 장수풍뎅이 아저씨의 잔소리가 끝나고서야 “네” 하고 작은 목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장수풍뎅이 아저씨는 숲속에서 알아주는 잔소리쟁이입니다. 특히 애벌레를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지요. 한마디라도 하고 가야 직성이 풀리는 듯했습니다. 애벌레들은 장수풍뎅이 아저씨의 우람한 풍채와 무시무시한 뿔, 당당한 목소리의 위세에 눌려 꼼짝없이 잔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개중에는 저 멀리 장수풍뎅이 아저씨가 보이면 나뭇잎 뒤로 몸을 숨기는 애벌레도 있지요.



#2
“핫둘, 핫둘….”

우렁한 기합 소리에 코코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아침부터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이미 해는 중천에 떠 있었습니다. 코코의 눈앞으로 얇고 기다란 애벌레가 몸을 유연하게 반씩 접었다 폈다 하면서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안녕? 난 자벌레 꼬무라고 해. 낮잠을 깨웠다면 미안해.”
‘낮잠?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코코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기지개를 켰습니다.

“어딜 그렇게 부지런히 가는 거야?”
“운동 기록을 깨보려고. 5분 안에 이 나무 꼭대기에 오르는 게 오늘의 목표야.”
“목표를 이루면 뭐가 좋은데?”
“새로운 목표를 세워서 이루다 보면 나중에 더 건강하고 멋진 자나방이 될 거라고 믿거든.”

그때, 장수풍뎅이 아저씨가 날아가다 코코와 꼬무를 발견하고는 그들이 있는 나뭇가지 위에 착지했습니다.

“꼬무, 여기서 뭐 하고 있누?”

코코에게 잔소리할 때와는 달리 장수풍뎅이 아저씨의 목소리는 다정다감했습니다.

“운동하고 있었어요. 고치 지을 때가 가까워서요.”
“그래, 고치는 어떻게 지을지 생각해 봤나?”
“그럼요. 고치 설계도는 이미 짜 놨어요. 시험 삼아 실을 뽑아내 봤더니, 끊어지지 않고 튼튼하더라고요. 고치를 삼중 구조로 지을 수 있을 만큼 양도 충분히 나올 것 같아요.”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보람이 있네그래.”
“고치 지을 장소도 미리 점찍어 두었어요.”
“잘했다. 꼬무, 넌 분명 훌륭한 자나방이 될 게야.”
“아저씨가 여러 가지 관심 어린 조언을 해주신 덕택이죠. 감사합니다, 아저씨.”
“잔소리 같은 말이라도 네가 귀담아들었으니 도움이 된 게지. 허허.”

장수풍뎅이 아저씨는 손을 내저으면서도 얼굴에 뿌듯해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꼬무와 아저씨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코코는 자신이 중요한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름답고 우아한 나비를 꿈꾸면서도 꿈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하루아침에 꼬무처럼 살아갈 자신은 없었습니다. 일찍 일어나는 건 너무 힘들고, 운동하는 건 너무 귀찮고, 먹기 싫은 잎까지 먹어야 한다는 건 너무 괴롭거든요. 사실 장수풍뎅이 아저씨의 말이 다 옳다는 건 코코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기 싫으니까 잔소리로 들을 뿐이었죠.

우렁찬 기합 소리를 내며 길을 재촉하는 꼬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코코는 한숨을 폭 내쉬었습니다.



#3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렸습니다. 나뭇잎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니 코코는 여느 때보다 잠이 달게 느껴졌습니다. 먹구름이 하늘을 덮은 탓에 날이 어둑어둑해 늦잠 자기에도 딱 좋았습니다.

비가 그친 뒤에야 눈을 뜬 코코는 배가 무척 고팠습니다. 좋아하는 새잎을 먹으러 가려고 꿈틀꿈틀 움직이던 코코는 나뭇가지를 타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코코 살려!”

땅은 비에 젖어 질척거렸습니다. 온몸에 진흙이 잔뜩 묻은 코코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습니다. 움직여 보려고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평소 운동량이 부족해서인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도와주세요! 아무도 없나요?”
‘이러다 새한테 먹히는 건 아니겠지?’

숲속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코코는 두려워 몸을 오들오들 떨었습니다. 그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래서 내가 운동 열심히 하라고 했거늘.”

장수풍뎅이 아저씨였습니다. 이날처럼 아저씨가 반가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아저씨는 뿔로 코코 주위의 진흙을 파낸 뒤 코코를 껴안고 ‘붕’ 진동음을 내며 힘껏 날아올랐습니다. 그러고는 포포가 몸에 묻은 흙탕물을 씻어낼 수 있도록 빗물이 고인 넓은 나뭇잎 위에 살포시 내려놓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코코는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아저씨에 대한 고마움 때문인지, 그동안 속으로 아저씨를 싫어한 데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위험에서 벗어난 안도감 때문인지, 아니면 셋 다 때문인지 알 수 없는 눈물이었습니다. 장수풍뎅이 아저씨는 코코의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코코야, 애벌레 시절이 왜 있는지 아니? 나비가 되기까지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거든. 너처럼 여린 애벌레가 장차 나비가 되려면 더 단단해져야 해.”

코코는 아저씨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맞아, 나비는 저절로 되지 않아. 고치를 만들고, 고치를 뚫고 나와서, 마침내 푸른 하늘을 맘껏 날 수 있으려면 힘을 길러야 해.’

코코는 아저씨가 했던 잔소리들을 하나하나 되새겨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씩 노력해 보기로 다짐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눈을 뜬 코코는 새잎, 오래된 잎 가리지 않고 ‘사각사각’ 맛있게 갉아 먹었습니다. 오래된 잎에서는 새잎에서 맡을 수 없었던 깊은 향이 진하게 퍼졌습니다. 식감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잎을 고루고루 배불리 먹었을 때, 부화한 지 얼마 안 된 투명한 애벌레가 코코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투명한 애벌레는 작은 잎사귀 한 장 먹는 것도 힘겨워 보였습니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인생 선배로서 괜스레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코코는 투명한 애벌레에게 다가갔습니다.

“더 먹어야지. 너처럼 갓 부화했을 때 부지런히 잘 먹어야 신진대사가 잘 돌면서 기초체력이 다져진다고. 안 그러면 근력이 없어서 나뭇가지를 타다가 땅에 떨어질 수도 있어.”

나무줄기에 달라붙어 수액을 찾던 장수풍뎅이 아저씨가 코코의 말에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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