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훈아, 정훈아! 빨리 나와서 밥 먹어. 학교 늦겠다.”
엄마의 말에 형 동훈이와 동생 정훈이는 부엌으로 달려가 식탁 앞에 앉았습니다. 아침 메뉴는 두부가 들어간 된장국과 동그랑땡, 멸치볶음이었습니다. 달걀물을 입혀 노릇노릇하게 구운 동그랑땡에서 윤기가 좌르르 흘렀습니다.
“동그랑땡은 각자 접시에 있는 만큼만 먹기야. 알았지?”
“네! 잘 먹겠습니다!”
엄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동훈이는 동그랑땡을 집어 입안에 넣었습니다.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에 동훈이는 게 눈 감추듯 자기 접시에 있는 동그랑땡을 다 먹어 치웠습니다. 바닥을 드러낸 접시를 보며 입맛을 다시던 동훈이는, 정훈이의 접시에 남아있는 동그랑땡 한 개를 발견했습니다. 정훈이는 동그랑땡 먹는 걸 잊은 듯 된장국에 밥을 비비고 있었지요.
“동그랑땡 안 먹을 거지? 내가 대신 먹어줄게.”
동훈이는 동그랑땡을 날름 집어 먹었습니다. 순식간에 동그랑땡을 빼앗긴 정훈이가 입을 크게 벌렸습니다.
“어! 나 아껴 먹고 있었는데….”
“그래? 몰랐지.”
“유동훈, 자기 것만 먹어야 한다고 했잖아. 동생 걸 뺏어 먹으면 어떡하니?”
엄마가 동훈이에게 한 소리 했습니다. 동훈이는 능청스레 말했습니다.
“아껴 먹는지 몰랐단 말이에요. 미안.”
“치, 맨날 먼저 먹고는 미안하다고 해.”
정훈이는 입을 삐죽 내밀며 멸치볶음을 집어 먹었습니다. 동훈이는 별것 아닌 일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습니다.
점심시간, 동훈이는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급식실에서 줄을 섰습니다. 식판을 받아 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벽에 붙은 ‘오늘의 메뉴’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메뉴를 확인한 동훈이가 순간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오늘은 콩밥, 미역국, 떡갈비, 계란말이, 진미채볶음이네. 내가 좋아하는 것만 가득이잖아?”
동훈이의 뒤에 있던 찬우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동훈이는 아무 말 없이 푹 한숨을 쉬었습니다. 동훈이가 가장 피하고 싶은 메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훈이는 터덜터덜 배식대 앞으로 가 식판을 내밀었습니다. 모락모락 김이 솟아오르는, 검정콩이 가득 섞인 밥이 식판에 담겼습니다.
‘왜 맛있는 밥에 콩을 섞어서 맛없게 만드는 거야?’
자리에 앉은 동훈이는 하얀 밥 사이사이 고개를 내민 까만 콩들을 젓가락으로 골라냈습니다. 입안에서 미끄덩미끄덩 움직이는 데다 퍼석퍼석하고 맛도 없는 콩은 동훈이가 가장 싫어하는 음식입니다. 동훈이는 골라낸 콩을 앞에 두고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조회 시간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급식실에서 요즘 잔반이 많이 나온다고 하니 음식을 남기지 말고 먹자.”
동훈이는 다시 숟가락을 들어 올렸지만, 도저히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맞은편에 앉은 현찬이가 눈에 띄었습니다. 현찬이는 콩이 가득 들어간 밥 한 술을 입에 쏙 넣고는 우물거리며 먹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본 동훈이는 한 가지 꾀를 냈습니다.
“현찬아, 너 콩 좋아해?”
“응! 난 콩 좋아. 고소하고 맛있어.”
“그래? 네가 콩 좋아하니 내가 양보할게. 내 것도 먹어.”
“정말? 고마워.”
동훈이는 기다렸다는 듯 골라낸 콩을 숟가락에 모아 현찬이의 식판에 올려주었습니다. 현찬이는 수북한 콩을 보며 활짝 웃었습니다. 신이 난 얼굴로 콩을 입안에 가득 넣은 현찬이는, 동훈이에게 자신의 떡갈비 한 조각을 건넸습니다.

“너도 이거 먹어.”
“어…. 왜? 너 떡갈비 싫어해?”
“아니, 좋아하지. 너도 내가 좋아하는 콩 양보해 줬잖아.”
현찬이의 말에 동훈이는 마음 한구석에서 따스한 뭔가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콩이 싫어서 양보한 건데, 맛있는 반찬을 양보해 준 현찬이가 고마웠습니다. 동훈이는 현찬이가 준 떡갈비를 베어 물었습니다. 이제까지 먹은 떡갈비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녀왔습니다!”
집에 돌아온 동훈이는 엄마를 찾아 베란다로 갔습니다. 엄마가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습니다.
“오늘 하루 어땠니?”
“재미있었어요. 점심시간에 친구가 저한테 떡갈비를 양보해 줬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반찬인데도 안 먹고 저한테 줬어요.”
“그래? 대단하네. 진짜 양보를 할 줄 아는 친구구나.”
“진짜 양보요?”
“응. 자기가 좋아하거나 아끼는 것이라도 다른 사람한테 줄 줄 아는 거지. 동훈이는 친구한테 뭘 양보했니?”
“콩이요….”
동훈이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 순간 동훈이는 현찬이에게 콩을 주었던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자신이 한 건 양보를 가장한 떠넘기기였다는 걸, 동훈이도 알고 있었거든요.
“형, 오늘 형이 텔레비전 볼 차례지? 자.”
그때 거실에 있던 정훈이가 리모컨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다른 둘은 매일 돌아가며 채널 선택권을 가졌습니다. 시계를 보니 동훈이가 좋아하는 스포츠 예능이 시작할 즈음이었습니다. 동시에 정훈이가 보는 만화영화가 방영되는 시간이기도 했지요. 동훈이는 정훈이가 건넨 리모컨을 슬쩍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야. 네가 보고 싶은 거 봐.”
동훈이의 말에 정훈이가 이상하다는 듯 형을 쳐다보았습니다.
“형이 웬일이야?”
“난 나중에 하이라이트 영상 보면 돼.”
동훈이의 말에 정훈이는 활짝 웃으며 소파 위로 펄쩍 뛰어올랐습니다. 동훈이는 정훈이의 옆에 나란히 앉아 함께 텔레비전을 보았습니다. 사이좋은 형제의 모습에 엄마도 빙그레 미소를 지었습니다.
“우와, 오늘은 돈가스야!”
메뉴를 확인한 찬우가 동훈이에게 들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배식대 앞에 선 동훈이는 힘차게 팔을 쭉 뻗어 식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고는 식판에 담긴 두툼한 돈가스를 보며 입맛을 다셨습니다.
자리에 앉은 동훈이는 돈가스 한 조각을 소스에 푹 찍어 입에 넣었습니다. 고소한 튀김과 간이 잘 밴 고기, 새콤달콤한 소스의 맛이 입안 가득 퍼졌습니다. 동훈이는 바쁘게 젓가락을 놀리며 돈가스를 먹었습니다.
배가 찰 무렵, 동훈이는 문득 옆에 있는 찬우를 돌아보았습니다. 찬우의 식판은 벌써 텅 비어 있었습니다. 찬우는 아직 배가 고픈 듯 젓가락으로 식판을 긁어 소스를 찍어 먹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동훈이는 마지막 돈가스 한 조각을 찬우의 식판에 올려주었습니다. 찬우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이거 먹어. 너 돈가스 좋아하잖아.”
“나 주는 거야? 고마워!”
찬우는 돈가스를 한입에 먹었습니다. 돈가스를 음미하는 찬우를 바라보던 동훈이는 가슴 한구석이 간질간질했습니다. 몽글몽글하고 따스한 구름이 마음속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습니다. 한 조각을 덜 먹었지만 양껏 먹은 것처럼 속이 든든했지요.
‘좋아하는 걸 나눠주는 기분, 생각보다 좋은걸.’
동훈이의 얼굴에 슬며시 웃음이 피었습니다. 엄마가 말한, 진짜 양보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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