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서 이번 환경의 날 특집은 민호 씨가 맡는 걸로. 어때요?”
사회부 팀장이 말했습니다. 민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지만, 선뜻 입을 열 수 없었습니다. 민호는 신문사에 입사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신입 기자입니다. 다가오는 환경의 날 특집 기사를 논의하던 중, 팀장이 취재 기사를 민호에게 배정한 것이었습니다.
“민호 씨 아버님이 미화원이시니까, 옆에서 아버님을 봐온 만큼 내밀한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괜찮겠네요.”
옆에 있던 민호의 선배도 거들었습니다. 민호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습니다. 환경미화원 아버지를 둔 민호가 이 건을 맡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반대할 명분은 없었으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회의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온 민호는 키보드를 두드렸습니다. ‘환경미화원 취재 기획안’이라고 제목을 썼지만, 다음 줄로 넘어가자 손이 멈췄습니다. 아버지를 취재원으로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이 낯설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생판 모르는 남이면 취재하기 편할 텐데….’
어쨌든 피할 수 없는 일이기에 민호는 기획안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민하던 민호는 문득 자신이 아버지가 하는 일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투박한 안전화와 남루한 작업복을 입고 남들이 자는 시간에 일하신다는 것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었지요.
‘내가 이렇게 아버지에게 무관심했나….’
민호는 복잡한 심경으로 기획안을 써 내려갔습니다.
“나를 취재한다고?”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던 아버지가 민호를 돌아보았습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민호의 말 끝에 아버지는 다 늙은 청소부가 뭐가 궁금하냐며 중얼거렸습니다. 하지만 말투와 달리 아버지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갔습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하시면 돼요.”
“오래 살고 볼 일이구나. 너 옛날에 학교에서 부모님 직업 조사해 오라고 했을 때 ‘청소부’라고 썼다가 반 친구들한테 놀림받았다고 창피해했던 거 기억나냐? 그런데 이제는 아버지를 취재한다니, 격세지감이다.”
“그땐 제가 철이 없었어요.”
웃음 짓는 아버지를 보며 민호는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아버지의 직업을 부끄러워하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셨을까 생각하니, 이제 와 죄송하기도 했습니다.
자정 무렵, 민호는 일 나가는 아버지를 따라나섰습니다. 어둠이 짙은 골목은 집집마다 내놓은 쓰레기들이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곳곳의 쓰레기들에 눈길을 주다 보니 그동안 무심코 다니던 길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수레가 연결된 오토바이에 올라탔습니다. 민호가 뒷좌석에 앉자 아버지가 시동을 걸었습니다. 좁은 골목길에 오토바이를 세운 아버지는 랜턴을 켜고 비탈진 골목길을 성큼성큼 올라갔습니다. 불빛 아래 쓰레기더미가 모습을 드러내자, 아버지는 봉지의 매듭 부분을 잡고 힘껏 들어 올렸습니다. 아버지는 제법 부피가 큰 쓰레기 봉지를 양손에 하나씩 잡은 채 길을 내려가 수레에 실었습니다. 가정용 음식물 쓰레기도 따로 담고, 놓친 쓰레기는 없는지 골목을 샅샅이 살피기도 했지요.
“쓰레기 수거하면서 가장 주의하시는 게 있어요?”
“쓰레기가 있던 자리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거지. 옮기다가 자잘한 것들이 빠져나올 수도 있으니까.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뒹구는 쓰레기를 보면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거 아니냐.”
아버지가 일반쓰레기 봉지에서 페트병을 빼내며 말했습니다. 다른 골목으로 간 아버지는 쓰레기 더미에서 커다란 마대를 집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무게에 못 이겨 몸이 휘청거렸습니다. 민호가 도우려 하자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넌 손대지 마라. 네 할 일이나 해.”
민호는 뻗었던 손을 슬며시 내렸습니다. 아버지는 힘겹게 자루를 들어 올렸습니다. 비척비척 비탈길을 내려가는 아버지가 일순 야위어 보였습니다.
쓰레기 수거 작업은 계속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수레가 가득 차자 아버지는 도로변에 쓰레기를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바로 차에 실을 텐데 굳이 열을 맞춰 쌓는 이유가 있으세요?”
“잘 모아두는 것도 내 일이야. 수거하는 이들이 편하도록 배치하는 거지. 서로 배려해야 같이, 또 오래 갈 수 있는 거야.”
쓰레기 봉지를 척척 올리며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민호도 팔을 걷어붙이고 아버지를 도왔습니다. 아버지의 만류에도 민호는 멈추지 않고 부지런히 쓰레기를 날랐습니다.
집하를 마친 아버지와 민호가 잠시 숨을 돌릴 때였습니다.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도로 반대편에 있는 동료를 향해 손을 흔들었습니다. 상대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아버지와 민호가 있는 쪽으로 건너왔습니다.
“행님, 이분은 누구십니꺼?”
“어, 종성아. 우리 아들이다.”
“아! 그 기자 한다는 아드님입니꺼? 아이고, 반갑습니다. 근데 뭔 일로 같이 나오셨습니꺼?”
“특집 기사 쓴다고. 기자 아들 덕분에 내가 인터뷰를 다 한다.”
“아이고, 그렇습니꺼? 안 그래도 행님이 아들 자랑을 하도 많이 해가 한번 보고 싶었습니더. 어릴 때부터 착하고, 공부도 잘하고, 성실해가 유명한 신문사 떡하니 붙어가꼬 기자 됐다고 안 캤십니꺼.”
“크흠….”
종성의 말에 아버지는 헛기침하며 자리를 피했습니다. 민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무뚝뚝한 아버지가 아들 자랑을 했을 줄은 몰랐지요. 종성은 넉살 좋게 웃으며 민호 옆에 앉았습니다.
“내가 취재거리 하나 주까요? 사실, 행님이 내 생명의 은인입니더.”
“생명의 은인이요?”
“행님 없었으면 내는 쥐도 새도 모르게 얼어 죽었을 깁니더. 내가 사업하다 쫄딱 망해가 길바닥에 나앉았다 아입니꺼. 한동안 이곳저곳 떠돌아댕기면서 노숙했지예. 그러다 행님을 만났습니더. 그런데 내가 눈에 밟혔는지 행님이 시청에 건의해가 일자리를 추천한 깁니더. 그때 국가에서 하는 노숙인 사회복귀 머시기 카는 게 있었는데, 행님 덕분에 기회를 잡은 기지요. 그전에는 내가 마냥 쓸모없는 사람맹키로 느껴졌는데, 이 일 하면서 나도 우리 사회에 뭔가 도움이 되는 것 같아가 보람차고 뿌듯합니더. 지금은 두 다리 뻗고 잘 전셋집도 있으니까네 성공했지예. 행님이 내 인생을 바꿔논 깁니더.”
종성은 그때가 생각난 듯 더운 숨을 뱉었습니다. 민호는 멀리 서 있는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묵묵히 쓰레기통을 재배치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작업이 마무리됐습니다. 동트는 하늘을 보며 집으로 향하던 아버지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험한 일 한다고 수고했다. 힘들진 않았냐?”
“네, 괜찮아요. 아버지는 이 일을 매일 하려면 힘드시겠어요.”
“이젠 익숙하지. 그래도 일이 끝나고 쓰레기가 치워진 길을 보면 기분이 좋다.”
“골목길이 말끔해진 걸 보니 뿌듯한데요?”
“하루라도 치우지 않으면 동네가 병들어. 동네가 병들면 사람들 마음에도 병이 나. 난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면서 마음에 담아둔 근심, 걱정까지 내놓는다고 생각한다. 아침에 새로운 마음으로 일어나 깨끗한 길을 걸으면 하루가 산뜻하지 않겠냐?”
민호의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그동안 아버지의 수고를 헤아려드리지 못하고 무심히 지나친 것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쓰레기투성이인 골목길을 쾌적하게 만들기 위해 힘썼을 아버지가 누구보다 존경스러웠습니다.
눈가가 뜨거워진 민호는 코를 쓱 문지르며 수첩을 펼쳤습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붙잡아 메모하느라 민호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다녀왔습니다.”
집에 돌아온 민호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아버지에게 인사했습니다. 아버지는 “왔냐” 하고 짧게 답하며 민호를 반겼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신문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민호가 쓴 환경의 날 특집 기사 면이었습니다. 민호는 아버지에게 휴대폰을 내밀었습니다.
“아버지, 같은 기사가 인터넷에도 올라갔어요.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네요.”
아버지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민호의 휴대폰을 건네받았습니다.
‘응원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우리 동네의 숨은 영웅!’….
댓글을 찬찬히 읽는 아버지의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갔습니다.
“허허, 아들 덕분에 응원도 받고. 힘이 나네.”
아버지는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말했습니다. 민호가 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덕분이에요. 감사해요.”
‘그리고 죄송해요. 그동안 아버지께 무심했어요.’
민호는 아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작은 체구의 아버지가, 여느 때보다 크고 든든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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