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한 솔이네 캠핑


#1
“솔아, 하늘 좀 봐. 구름이 너무 예쁘지 않니?”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솔이가 마지못해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러고는 대답 대신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물었습니다.

“언제 도착하는 거예요?”

“거의 다 왔어. 십오 분만 가면 돼.”

운전대를 잡은 아빠가 내비게이션을 힐끗하고는 백미러로 솔이를 보며 대답했습니다.

“누나, 우리 개울에서 물고기 잡자.”

“귀찮아. 너 혼자 잡아.”

“누나도 재미있을걸?”

“전혀.”

흙길을 달리던 자동차가 돌부리를 밟자 네 가족은 휘청했고, 짐칸에 실린 캠핑 장비들도 들썩거렸습니다. 지호는 차가 흔들리는 틈을 타 몸을 일부러 비척대며 솔이의 어깨에 기댔습니다. 솔이는 휴대폰에 눈을 고정한 채 어깨로 지호를 밀어냈습니다. 지호가 밀리지 않으려고 버티자, 솔이는 등받이에서 몸을 뗐습니다. 지호의 상체가 솔이의 등 뒤로 넘어갔습니다. 그 순간 지호는 웃음이 터졌고, 지호의 품에 있던 푸들 몽이는 솔이의 무릎 위로 뛰어올랐습니다.

“김지호, 장난 좀 그만 쳐.”

“누나가 계속 휴대폰만 보고 있으니까 그렇지.”

“네가 원해서 가는 거잖아. 난 캠핑 별로라고.”

“치.”

아빠가 뒷자리까지 들릴 만큼 크게 말했습니다.

“오, 생각보다 경치가 너무 좋은데?”

“그러게요.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어요.”

엄마가 아빠의 말을 거들며 창문을 내리고 팔을 밖으로 내밀었습니다. 쭉쭉 뻗은 나무들이 푸른 잎의 향연을 펼쳤고, 길 따라 흐르는 얕은 개천이 햇살에 비쳐 반짝였습니다. 아빠는 산허리에 차를 멈춰 세웠습니다. 자동차 엔진이 꺼지자 산새들의 울음소리만 멀리서 들려올 뿐이었습니다.

차에서 내린 솔이의 가족은 짐칸에서 캠핑 장비들을 꺼냈습니다. 몽이는 땅에 닿자마자 주위를 빠른 속도로 빙빙 뛰어다녔습니다. 아빠가 야심 차게 준비한 텐트는 네 가족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넉넉하면서도 아늑했습니다. 갖가지 주방 기구들을 챙겨온 엄마는 닭볶음탕 만들 재료들을 손질하기 시작했습니다. 지호는 몽이와 공놀이에 빠졌고, 솔이는 캠핑 의자에 기대어 앉아 눈을 감았습니다.

산속의 밤은 일찍 찾아왔습니다. 저녁을 배불리 먹은 가족은 후식으로 과일화채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캠핑에 흥미 없다며 억지로 따라나섰던 솔이도 어느새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따뜻하고 포근한 침낭 속에 몸을 쏙 집어넣은 네 가족은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몽이는 이미 쿠션과 한 몸이 되어 곯아떨어졌습니다.



#2
“여보, 얘들아. 어서 일어나.”

“응? 이게 무슨 소리예요?”

가족을 다급히 깨우는 아빠 목소리에 엄마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며 물었습니다.

“잠결에 빗소리가 들려 일기예보를 확인했더니, 태풍이 갑자기 경로를 바꿔 빠르게 이동하고 있대. 지금 당장 철수해야겠어.”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텐트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뒤척이는 아이들을 쓰다듬으며 깨웠습니다. 솔이와 지호는 자다 말고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엄마 아빠는 비를 맞으며 텐트를 걷어 짐을 챙겼고, 솔이와 지호는 몽이를 데리고 차에서 기다렸습니다.

“내일 개울에서 물고기 잡으려고 했는데….”

“너는 이 상황에서 물고기 생각이 나니?”

“치.”

“으그, 다음에 다시 오면 네 소원대로 같이 물고기 잡아줄게.”

지호가 반색하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솔이도 마지못해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걸었습니다. 빗방울은 더욱 굵어지고 바람도 세차게 불었습니다. 쿵, 짐칸 문이 닫히는 소리에 이어 엄마 아빠가 옷에 묻은 물기를 털며 차에 올라탔습니다.

“날씨가 이럴 줄은 몰랐네.”

“그나저나 돌아가는 길은 괜찮겠죠?”

“어서 가보자고.”

아빠가 차에 시동을 걸고 서둘러 액셀 페달을 밟았습니다. 길이 진흙탕으로 변해 차가 이리저리 미끄러졌습니다. 아빠는 핸들을 두 손으로 꽉 움켜잡았습니다. 와이퍼가 좌우로 쉴 새 없이 움직였지만, 자동차 앞 유리는 이내 물 범벅이 되었습니다. 창밖에는 나뭇가지들이 휘청댔고, 어두운 하늘에 번쩍하고 섬광이 비치더니 우르르 쾅쾅 하며 천둥소리가 울렸습니다.

“으악, 무서워.”

지호가 몸을 웅크리며 소리쳤습니다. 덩달아 몽이도 낑낑대며 솔이의 품을 파고들었습니다. 솔이가 지호의 어깨를 끌어안았습니다.

“괜찮아, 겁낼 거 없어.”

엄마가 뒷좌석을 향해 몸을 돌리며 따듯한 눈빛으로 아이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아빠가 오디오 버튼을 눌러 잔잔한 클래식을 틀자, 차 안이 한결 아늑해졌습니다. 솔이는 무릎에 있던 담요를 펼쳐 지호의 몸을 덮어주었습니다. 묵묵히 차를 몰던 아빠가 나긋한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우리 각자 행복했던 순간을 말해보는 거 어때?”

모두가 무언으로 동의한 듯 생각에 잠겼습니다. 흐르는 음악과 함께 가족이 차례로 한마디씩 했습니다.

“아빠는, 지호가 태어났을 때. 솔이가 동생 생겼다며 엄청 좋아했거든.”

“솔이랑 지호가 엄마 생일이라고 꽃다발 줬을 때. 너무 감동했어.”

“음…. 저는 엄마랑 아빠랑 처음으로 놀이동산 갔을 때요.”

“난 지금. 왜냐면 다 같이 있으니까.”

마지막 지호의 대답에 나머지 가족들이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3
달리던 차가 강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아빠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다리까지 삼킬 듯 불어난 강물이 흙탕물로 변해 빠른 속도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위험해서 건너면 안 되겠어. 돌아서 가야 할 것 같아.”

“아빠, 우리 집에 언제 도착하는 거예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안전한 길로 가자.”

차는 다시 비포장길로 들어섰습니다. 차가 꿀렁거리며 요동치자 잠들었던 지호와 몽이가 깼습니다. 바퀴가 진흙탕에 빠지는 바람에 운전대를 잡은 아빠가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차는 또다시 멈춰 섰습니다. 강풍에 쓰러진 나무가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조수석 서랍에서 장갑 좀 꺼내줘요. 나무 좀 치우고 올게.”

“저도 같이 가요.”

엄마 아빠는 차 밖으로 나갔습니다. 밖은 여전히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각자 한 팔로 우산을 들고, 다른 팔로 쓰러진 나무를 밀었습니다. 육중한 나무는 쉽게 밀리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솔이의 눈썹이 찡그려졌습니다. 솔이는 안절부절못하다 차 문을 열었습니다.

“누나, 어디 가?”

“나도 도우려고.”

솔이가 합세하려고 나갔지만, 엄마 아빠가 만류했습니다.

“넌 들어가 있어.”

“싫어, 나도 할래.”

“그러면 아빠 우산을 씌워드려.”

솔이가 아빠 우산을 받아 대신 들었습니다. 두 팔이 자유로워진 아빠는 좀 더 세게 나무를 밀었습니다. 하지만 나무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솔이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습니다. 쓰러진 나무 옆에 삐죽 튀어나온 돌이었습니다.

“나무가 돌부리에 걸려서 안 밀리는 것 같아요. 반대로 밀어보세요.”

솔이의 말대로 나무를 반대쪽으로 밀자, 그제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솔이 말이 맞았어! 힘 빼기 전에 발견해서 다행이야.”

아빠의 칭찬에 솔이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습니다. 누나가 아빠 옆에서 우산을 받쳐주고 있는 모습을 본 지호가, 자신은 엄마 우산을 들어주겠다며 나왔습니다. 엄마의 두 손도 자유로워지자, 나무가 밀리는 속도는 훨씬 빨라졌습니다. 솔이와 지호가 “영차, 영차” 하며 목청껏 응원했습니다. 엄마 아빠는 힘을 다해 나무를 길가로 밀어냈고, 마침내 길이 열렸습니다.

“와! 우리 가족이 해냈다.”

지호가 팔을 위로 쭉 뻗으며 환호했습니다. 네 가족은 빗속에서 서로를 얼싸안았습니다. 옷은 젖고 신발은 흙탕물 범벅이 되었지만, 마음에서 차오르는 기쁨으로 얼굴은 햇살처럼 빛났습니다. 차는 비포장길을 달려 고속도로로 나왔습니다. 세찬 비바람을 거침없이 헤치며 집으로 향하는 길, 솔이가 말했습니다.

“다음에 캠핑 다시 와요.”

“너 캠핑 싫다며?”

“이번에 하다 말아서 아쉽잖아요.”

모두 찬성하며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못다 한 캠핑은 네 식구의 마음에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행복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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