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팥떡

어린 시절, 부모님의 맞벌이로 저는 외할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할머니를 생각하면 애틋한 느낌이 듭니다. 저의 어릴 적 사진에는, 예쁜 리본을 달고 공주 드레스를 입은 친구들과 달리 헐렁한 바지에 볼이 빨갛게 익은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아침에 눈떠서 밤에 잠들기까지, 할머니는 저의 유일한 친구이자 부모님이 되어주셨지요.

이따금 할머니는 새벽 시장에 가셨습니다. 그사이 잠에서 깨어나 할머니가 보이지 않으면 저는 할머니를 찾아 집 안 구석구석을 다니며 목이 쉴 때까지 울었습니다. 할머니는 저를 혼자 두고 간 게 미안하셨는지 돌아오실 때 팥시루떡과 팥송편을 사 오곤 하셨습니다. 저는 언제 울었냐는 듯 웃으며 떡을 그 자리에서 모두 해치웠습니다. 따끈따끈한 팥시루떡을 먹으면 속에 뜨끈한 기운이 퍼졌고, 쫄깃한 팥송편은 팥소의 달콤한 맛이 오래도록 입안에 감돌았습니다.

성인이 되어 언젠가 할머니를 따라 시장에 간 적이 있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 손을 잡고 갔을 때는 크고 넓게만 느껴졌던 시장이 작고 좁게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제가 그만큼 커버렸기 때문이겠지요. 할머니가 자주 가시던 떡집의 사장님을 알아보고 인사를 드렸더니, 사장님은 할머니와 저를 번갈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습니다.

“옴마야, 이게 누고? 소희가 벌써 이렇게 컸나? 안 그래도 니 온다고 팥송편 챙겨놨다. 할머니가 올 때마다 니 얘기를 얼마나 하던지, 팥송편을 안 만들 수가 없었다니까.”

지금도 저는 팥이 든 떡을 가장 좋아합니다. 요즘 떡집에는 팥시루떡 대신 노란 콩가루를 묻힌 콩시루떡이, 팥송편 대신 콩, 대추, 밤, 깨, 꿀 등 여러 가지 소를 넣은 송편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더군요. 한번은 할머니께 전화해 투정을 부렸습니다.

“할무니, 떡집에 가도 팥송편을 안 팔드라. 옛날에 할머니가 사준 팥송편이 먹고 싶다.”
“아이고, 그랬나? 할머니가 사다 놓을게. 언제 올 끼고?”

여든을 바라보는 연세이지만 할머니는 제가 갈 때마다 팥시루떡과 팥송편을 사다 놓으십니다.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팥떡은 할머니의 사랑 덕분에 더 따뜻하고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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