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않은 일에 대한 책임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거나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위험발생의 원인을 야기한 자가 그 위험발생을 방지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발생된 결과에 의하여 처벌한다.”

대한민국 형법 제18조 ‘부작위범’에 대한 내용입니다. 일반적으로 법은 ‘어떤 행위를 한 것’, 즉 작위(作爲)에서 범죄의 근거를 찾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의무가 있는 사람이 그 의무를 이행할 능력이 있음에도 하지 않은 경우 역시 범죄로 규정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지 않은 안전요원,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치료하지 않은 의료진, 사고로 인한 부상자를 방치한 채 도주한 운전자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책임을 가진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비극이 직접 가해한 결과와 다르지 않으므로, 방관을 가해와 동일하다고 간주하는 것입니다.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책임을 묻는 목적은 처벌이 아닌 ‘보호’에 있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책임자의 범위를 넓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제삼자에게도 응급 상황에 처한 타인을 구조할 법적 의무를 부여합니다. 이러한 장치는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우리가 서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위기에 빠진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행위는, 나 역시 위기에 빠졌을 때 누군가의 손길을 기대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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