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7년, 토목 기사 존 로블링은 뉴욕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잇는 현수교 건설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교량으로서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이자 공사의 위험성과 난도가 높아, 계획 기간만 15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1869년, 공사 시작을 앞두고 현장을 조사하던 존이 사고를 당해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거대 프로젝트는 그의 아들 워싱턴이 이어받았습니다. 아버지와 같은 토목 기술자였던 그는 몸을 사리지 않고 작업을 지휘했습니다. 강 아래 작업장에도 직접 내려가 감독하던 그는, 고압 환경을 반복해서 드나들다 그만 감압병에 걸려 전신이 마비되고 말았습니다. 다리 건설은 다시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워싱턴의 아내 에밀리가 나섰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이 병상에서 내리는 지시 사항을 현장에 전달하고 공사 진행 상황을 남편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다 점차 교량 건설에 관한 지식을 습득해 엔지니어 업무의 대부분을 맡았습니다. 일각에서는 로블링가에 닥친 불행으로 완공이 불가능하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에밀리의 활약으로 브루클린교는 1883년에 끝내 완공되었습니다.
뉴욕의 상징적 건축물인 브루클린교. 그 현판에는 존, 워싱턴, 에밀리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가족이 쓰러질 때마다 빈자리를 메우며 다리 건설을 일궈낸 이름들이 오래도록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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