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왕족 이경검에게는 ‘효숙’이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늘그막에 얻은 외동딸이라 애정이 각별했던 이경검은 외출할 때도 종종 효숙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하루는 새로 사들여 한창 수리 중인 저택에 딸을 데려가서는 농담 삼아 말했습니다.
“수리가 끝나면 이 집은 효숙이 것이다.”
아버지의 말을 굳게 믿은 효숙은 그때부터 자신에게 집이 생겼다며 만나는 이들에게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결국 온 집안 식구가 알게 돼 수습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자, 이경검은 자신의 무책임한 언행을 뉘우쳤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약속을 지킬 요량으로 기와집 한 채를 따로 사서 효숙에게 양도한다는 상속 문서를 작성했지요. 이때 효숙의 나이는 아홉 살로,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어린 딸에게 집을 증여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1596년에 작성된 이 상속 문서는 ‘이경검 부부 별급문기*’라는 이름으로 현존하고 있습니다. 무심코 건넨 실언이라도 약속을 지켜 자식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이 그 속에 담겨 있습니다.
*별급문기: 조선 시대에, 재산을 증여할 때 사용하던 문서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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