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9년 3월 1일, 일본의 탄압에 항거와 분노가 폭발한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우체국 직원, 곡물 중매인, 농민, 학생 등 지극히 평범했던 이들은 자주독립을 선포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모진 고문과 취조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왜 만세를 불렀느냐’는 심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삶에 쪼들리고 있는 2천만 동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무거운 형벌도 각오하고서 한 일이기 때문에 목숨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34세 조선총독부 순사보 정호석)
“양심의 폭발로서 억제할 수가 없었다. 성공하지 못하면 처벌된다는 것을 각오하였다.” (26세 교사 김지웅)
“조선인 전부의 이익과 행복이 된다고 생각하여 결행한 것이며, 한 사람이나 한 가문의 명예 따위를 위하여 한 일은 아니다.” (44세 농민 이경섭)
“난 조선 사람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그것은 그저 당연한 일일 뿐이었다.” (19세 학생 김동혁)
3·1운동은 독립을 향한 전 국민의 일치된 마음을 불타오르게 했고, 이를 계기로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임시정부를 구심점으로 독립투사들이 끊임없이 활동한 결과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꿈에 그리던 해방의 날을 맞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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