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과 필기구


우주 진출 초기 우주비행사들은 임무를 수행하면서 중요한 내용을 기록할 때 연필을 사용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문제가 제기되어 사용을 중단해야 했다. 연필심의 재료인 흑연이 전도체1)인 까닭에, 심이 마모하면서 날리는 흑연 가루와 부러진 심이 무중력 상태를 떠돌다 우주선 내 전자장치에 닿으면 고장이나 화재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볼펜을 사용하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볼펜은 우주에서 무용지물이다. 볼펜은 잉크가 중력에 의해 아래로 흘러내리면 펜 끝의 미세한 구슬이 돌면서 잉크를 묻혀 내는 원리이기 때문에, 무중력 상태에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우주인의 필기구 문제는 미국의 사업가 폴 피셔(Paul Fisher)가 ‘우주 펜(Space Pen)’을 발명함으로 해결되었다. 1969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주비행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우주 펜은, 잉크가 담긴 관의 압력을 높여 잉크를 배출하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아래에서 끌어당기는 중력 대신 위에서 밀어내는 힘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인지하지 못하는 중에도 우리는 중력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우리 손에 쥐어진 흔한 볼펜 한 자루가 그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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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기를 통과시키는 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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