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인들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시험대에 오른다.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직장에서는 능력과 성과로, 혹은 사회에서 가깝고 먼 사람들에 의해 말투, 이미지, 태도 등을 끊임없이 평가받으며 살아간다. 그런 환경 속에서 뭔가 잘 해냈을 때는 박수를 받지만, 실수하고 잘 못했을 때는 비판의 화살을 맞거나 냉정한 대가를 치른다. 작은 실수 하나가 크게 확대되기도 하고, 과정은 생략된 채 결과로만 낙인찍히기도 한다.
세상이 시험대라면 가정은 안식처다. 누구나 집에 머무는 동안은 평가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가족만큼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보다 조건 없이 자신을 사랑해 주기를 기대한다. 가정에서마저 서로를 조건부로 인정한다면 인생은 얼마나 메마르고 팍팍할까.
가정은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가족의 좋은 점을 발견해 칭찬하고 잘했을 때 함께 기뻐하는 일만큼, 부족함을 보듬어주고 실수했을 때 감싸주는 일도 중요하다. 비판받거나 거부당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받고자 하는 바람은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욕구다. 그 욕구가 가정 안에서 온전히 채워질 때, 집은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안식처가 된다.
넘어지는 것보다 더 아픈 일
사람은 살아가면서 숱한 실수를 하고 의도하지 않게 잘못을 저지른다. 아무에게 들키지 않거나 다른 사람과 연관된 일이 아니라면 남몰래 속상함을 느끼는 정도에 그치겠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부족한 모습을 보이거나 자신의 부족함이 타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면 속상함을 넘어 여러 가지 부정적인 심리가 작용한다. 체면이 구겨진 데 대한 수치심, 폐를 끼쳤다는 미안함, 평가에 대한 걱정, 사이가 멀어질까 하는 불안,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자괴감과 죄책감까지.
그러한 마음을 극복하기 위한 행동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변명하거나 이유를 설명하고, 위축되어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행동하기도 한다. 길을 걷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사람이 무릎이 깨져도 곧장 일어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길을 재촉하곤 하는데, 이는 몸의 통증보다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더 크기 때문이다.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는 상황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곤 한다. 바로, 비난과 책망이다. 넘어져 창피하고 아픈 사람에게 “앞을 잘 보고 다녀!” 하고 나무라는 것이다. 사람은 실수 그 자체보다 타인의 따가운 반응에 더 큰 좌절감을 느낀다. 실수와 잘못을 두려워하는 이유도 다른 사람이 보일 부정적인 반응 때문인 경우가 많다.
가족은 서로의 약점과 부족함을 너무나 잘 아는 만큼 비난과 책망의 말도 내뱉기 쉽다. 부족한 모습을 보였을 때 비난과 책망이 돌아오면 자신을 되돌아볼 여유는 달아나고 자신을 지키려 방어하는 데 급급하게 된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 마음을 닫게 만들고,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가족은 더 이상 편안히 기댈 대상이 되지 못한다.
서로 감싸줄 때 같은 편이 된다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의 차이는 가족 중 누군가 부족한 모습을 보였을 때 확연하게 드러난다. 행복한 가정은 “그러니까 내가 뭐랬어?”라며 상대를 탓하거나 “네가 잘못했네”라며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가족의 약점을 공격의 기회로 삼지 않고 따뜻하게 감싸준다.
흔히 누군가의 허물을 감싸준다고 하면 그가 저지른 잘못을 눈감아 주거나 옳지 않은 행동까지 무조건 옹호하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감싸준다는 건 상대의 잘못 자체를 부정하거나 정당화하는 식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게 아니다. 잘못을 인지하되 마음은 보듬어주는 태도다. 상대가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상황에서 보호해 주는 것, ‘네가 완벽하지 않아도 이곳은 너에게 안전한 곳’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타인이 실수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을 했을 때,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 보고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감싸주는 사랑은 그 사람의 사정과 마음을 보려는 노력이 선행된다. “왜 그랬어?”보다 “괜찮아?”, “정말 힘들었겠구나”가 먼저다. 그 한마디가 때로는 어떤 조언보다 강하다.
물론 잘못한 부분에 대해 훈계하고 책임을 묻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따뜻한 수용이 전제될 때, 훈계는 공격이 아닌 사랑으로 전해진다. 이해와 공감으로 감싸주면 상대는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돌아볼 여유가 생겨 조언을 건넬 필요가 없어지기도 한다.
상대의 허물을 덮어주려면 실수와 사람을 분리해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가 저지른 행위로 그 사람을 규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과 행위를 동일시하면 부족한 모습을 보일 때 “네가 하는 일이 그렇지” 하고 비난하기 쉽다. 행위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비판의 화살이 사람을 향하면 그 사람을 잃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과 행위를 별개로 다루면 문제가 생겨도 관계는 지킬 수 있다.
세상이 다 손가락질해도 가족만큼은 서로의 편이 되어주어야 한다. 비록 실수하더라도 존재 가치는 변함없다는 믿음으로 서로 감싸줄 때, ‘내 편이 있다’는 든든함은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다.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의 힘
가족 사이에 ‘실수해도 안전하다’는 믿음이 뿌리내리면 소통은 투명해진다. 책망이 잦은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피하려 숨기는 일이 많고, 작은 실수를 덮으려다 더 큰 일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나 감싸주는 분위기라면 실패를 감추거나 잘못을 숨길 필요가 없어진다. 자녀가 학교에서 있었던 힘든 일을 털어놓을 수 있고, 부부가 서로의 두려움을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다. 솔직한 대화가 쌓이면 유대는 더욱 깊어진다.
허물을 덮어주면 상대가 안일해지거나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봐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따뜻한 수용은 오히려 잘못을 스스로 바로잡으려는 동기를 유발한다. 가족이 나의 실수를 감싸주었을 때 느낀 고마움은, 받은 대로 돌려주려는 호혜성의 원리에 따라 좋은 모습으로 갚게 된다. 본인 역시 가족의 허물을 덮어주려는 마음이 작용해 선순환을 이룬다.
아이든 어른이든 안전하다고 느낄 때 성장한다. 실수해도 비난받지 않는다는 믿음은 다시 시도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포용은 단순히 실수를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을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시키는 전략인 셈이다. 허물을 덮어주는 분위기가 정착된 가정의 구성원들은 외부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도 높다. 감싸주는 행위가 개인의 자존감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밖에서는 끊임없이 평가받더라도, 집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감싸주는 가족이 있어 그로 인해 채워지는 위로와 용기가 살아가는 힘의 근원이 된다.
이러한 정서적 안전감이 쌓이면 가정은 갈등이 생겨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가족 간 갈등을 얼마나 겪느냐보다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 가정의 화목을 결정하는데, 서로 감싸주는 가족은 비난 대신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어가므로 갈등 후 관계 회복 속도가 빠르다. 결국 가정 안에서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는 일은 가족 구성원 모두의 정서와 관계, 성장의 토대가 될 뿐 아니라 가정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다른 이의 허물을 덮어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의 공간이 넓다는 증거다. 마음이 좁으면 상대의 작은 허물도 크게 느껴진다. 감싸주는 사랑을 하려면 우선 나에게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가족의 허물에 가시 돋친 말부터 나온다면 내 마음의 공간을 살펴보자. 그리고 조금씩 넓히는 연습을 해보자. 그 연습의 무대는 가까이에 있다. 오늘 저녁 식탁이, 운전에 서툰 배우자가 운전대를 잡았을 때가, 아이가 물컵을 쏟은 순간이 바로 그 무대다.
사람은 누구나 완전하지 않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곳이 가정이기에, “그래도 나는 네 편이야”라고 서로 말해줘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자신의 부족함은 스스로 짊어져야 하지만, 때때로 타인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간절히 필요하다. 그렇게 가장 약한 순간에 가족의 진가가 나타난다.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 가족이 손을 잡아주고 감싸준 기억은 삶의 고비마다 등불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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