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 말하고 소음으로 듣는 ‘잔소리’

잔소리라는 투박한 껍데기를 벗겨내고 그 속에 품은 마음을 단소리로 건네면 소통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
“공부해라”, “골고루 먹어라”, “일찍 다녀라”, “사용한 물건 제자리에 두어라”.

잔소리하는 사람은 자신의 조언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대의 태도를 문제 삼고, 듣는 사람은 계속 잔소리하는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잔소리하지 않고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의 부족한 점에 돋보기를 들이대기보다 이미 잘하고 있는 부분을 발견해 따뜻한 ‘단소리’를 건네는 것이다.

때로는 따끔한 조언과 충고도 필요하나, 가족의 가능성을 믿고 따뜻한 지지자 역할을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공부해라”, “골고루 먹어라”, “일찍 다녀라”, “사용한 물건 제자리에 두어라”.

가족에게 이런 잔소리 한번 안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 만약 잔소리를 듣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필시 가족에게 잔소리를 하는 쪽일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잔소리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흔히 사용되는 일상적인 화법이다.

사전에서는 잔소리를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는 것’ 혹은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하는 말’로 정의한다. 문제는 ‘쓸데없다’거나 ‘필요 이상’이라는 기준이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데 있다. 잔소리를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온도 차는 극명하게 갈린다. 화자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상대방을 위한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청자는 듣기 싫은 ‘소음’일 뿐이라며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의 간극 속에서 서로는 상처를 입는다. 잔소리하는 사람은 자신의 조언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대의 태도를 문제 삼고, 듣는 사람은 계속 잔소리하는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상대를 아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라도 소통 방식이 어긋나면 화자와 청자는 평행선을 달리는 선로처럼 서로의 마음에 가닿지 못한 채 겉돌기만 한다.



사랑과 관심이라는 동기의 함정



가정에서 잔소리를 하는 쪽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 또는 가정을 이끄는 가장, 집안일을 주도하는 주부와 같이, 어떤 면에서든 책임이 있거나 보호하는 입장에서 잔소리가 나온다. 책임과 보호가 애정에서 비롯되듯, 잔소리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선한 의도가 깔려 있다. 가족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걱정과 염려, 관심 등 잔소리의 동기 자체는 긍정적이고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것이 잔소리를 정당화하고 강화한다는 점에서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 ‘선의’라는 동기 때문에, 잔소리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을 잔소리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잘되기를,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므로, 그 말이 한낱 잔소리로 치부되면 섭섭해하고 억울해하는 것이다. 자신은 상대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상대가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상대를 위해서라는 마음을 좀 더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상대의 문제점을 바로잡아 주려는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 이는 곧 자신은 옳고 상대는 틀렸다거나 부족하다고 여긴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 부족해 보이는 면을 당사자는 전혀 불편해하지도,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점을 짚어서 계속 잔소리하는 이유는, 말하는 사람이 그 부분을 불편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결국 잔소리는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상대방이 맞춰주길 바라는 마음의 다른 표현일지 모른다.

혹시 잔소리 좀 그만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면, 서운해하는 대신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정말 상대를 위해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상대가 내 뜻대로 해야 내 마음이 편하고 안정될 것 같아서인지. 상대가 내 말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큰일이 벌어지는 상황도 아닌데 나만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듣기 싫은 소음이 되는 까닭



잔소리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이 상대에게 필요한 조언이라고 생각하지만, 잔소리냐 아니냐의 여부는 화자가 아닌 청자 편에서 결정된다. 아무리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라 해도 듣는 사람이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불쾌감을 느낀다면 그 말은 잔소리로 전락하고 만다. 소통의 성공 여부는 말의 내용보다 상대의 귀에 어떻게 들리느냐에 달린 셈이다.

잔소리라고 인식되면 거부감이 앞서는 이유 중 하나는 자율성이 침해당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유에 대한 욕구를 지니고 있어, 타인이 나의 행동을 교정하려 들면 무의식적으로 반발심을 갖게 된다. 스스로 하려던 일도 누군가의 지시나 간섭이 더해지면 행위의 주체가 자신에서 타인의 의지로 바뀌면서 의무나 강요가 되고, 관계의 균형도 깨지고 만다.

잔소리가 불쾌한 메시지로 전달되는 데는 전달 방식이 부정적인 까닭도 한몫한다. 상대의 기를 꺾는 한숨, 찌푸린 표정 등 비언어적인 요소에 짜증이 섞여 있으면, 청자는 화자의 날 선 감정에 먼저 자극받아 말의 알맹이는 들리지 않게 된다. 특히 비난과 훈계조의 어투는 일방적인 공격으로 인식되어 화자가 인격적으로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자신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말의 타당성과 상관없이 마음의 문을 닫고 만다.

무엇보다 잔소리가 듣기 싫은 소음이 되는 가장 큰 특징은 반복성에 있다. 아무리 유익한 말이라도 반복되는 순간, 우리의 뇌는 이를 유의미한 정보가 아닌 피로감을 유발하는 소리로 인식한다. 잔소리를 많이 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부족한 점을 계속 알려주면 고쳐지리라 생각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결코 발전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잔소리가 반복되면 나중에는 상대의 목소리만 들어도 스트레스 지수가 상승하는 거부 반응이 자리 잡게 된다.



잔소리 말고 단소리



잔소리하는 대상이 주로 가족인 점을 감안하면, 그 이면에 말하는 사람의 애정이 담겨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순수한 애정에서 비롯된 조언이라도 그 방식이 잘못되었다면 정당화될 수 없다. 다그치는 말을 반복하며 갈등을 빚는 이유는 상대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말하는 방법이 서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같은 말이라도 표현의 방식만 조금 바꾸면 잔소리에서 대화로 변모할 수 있다.

상대의 방어기제를 낮추고 자발적인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방을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하려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 때 마음을 열고 화자의 말에 귀 기울일 준비를 한다. 잔소리하는 이유는 상대의 행동이나 태도의 변화를 바라기 때문인데, 변화의 여부는 전적으로 상대에게 달렸다. 그러므로 요구하는 바를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도록, 부드러운 어조로 부탁해야 한다.

행동 하나하나 감시하고 확인하며 “해라”, “하지 마라” 식으로 지시하면 초점이 상대의 행동에 맞춰져 있어 공격적인 비난으로 들리기 쉽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바라는 점에 집중하면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이면서도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예컨대 “휴대폰 좀 그만 봐”라고 말하는 대신 “휴대폰을 너무 오래 보는 네가 걱정돼. 그러니 조금만 줄이면 좋을 것 같은데”라고 마음을 말하면 상대는 감정이 상하지 않으면서 애정을 느끼게 된다.

잔소리하지 않고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의 부족한 점에 돋보기를 들이대기보다 이미 잘하고 있는 부분을 발견해 따뜻한 ‘단소리’1)를 건네는 것이다. 흔히 가족 사이에서는 잘한 일보다 잘못한 일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지만, 유심히 관찰하면 상대의 노력과 수고가 보이고 칭찬거리를 발견할 수 있다. 때로는 따끔한 조언과 충고도 필요하나, 가족의 가능성을 믿고 따뜻한 지지자 역할을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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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심리학이나 관계론적 관점에서는 잔소리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기도 한다. 비록 서툰 소통법이어도 무관심보다는 더 낫다는 이유에서다. 잔소리는 분명 세련되지 못한 화법이지만 바꿔 생각해 보면 아무런 애정도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에너지를 써가며 잘못된 습관을 고치려 들거나 조언하지는 않을 것이다. 잔소리 대신 진심을 전할 수 있는 화법도 배워야겠지만, 상대의 잔소리 속에 담긴 마음을 읽어낼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다.

집안일로 잔소리하는 배우자에게 잔소리 좀 그만하라고 버럭 화내는 대신, “당신이 집안일을 도맡아 하느라 고생하는데 내가 성에 안 차서 답답하지? 미안해. 얼른 같이 하자”라며 마음을 알아준다면 어떨까. 일찍 다니라고 말하는 부모에게 “제가 늦게 다니면 걱정되니까 그러시는 거죠?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해요. 앞으로 늦어질 것 같으면 미리 연락드릴게요”라며 사랑의 언어로 해석한다면 잔소리는 분명 잦아들 것이다.

잔소리를 주로 하는 입장이라면 ‘나의 애정이 가족에게 비난으로 가닿지 않을까’를 고민하고, 잔소리를 듣는 입장이라면 ‘표현이 서툴기는 하지만 그 속에는 나를 향한 애정이 숨어 있겠구나’라고 이해할 때, 소음의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렇게 소음이 잦아든 자리에는 서로의 안녕과 행복을 바라는 진심이 남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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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소리, 《우리말샘》, “듣기에 좋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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