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며느리에게 "우리 때는 더 힘들었다"며 공감해 주지 않는다는 시어머니 휴대폰 사용법을 묻는 아버지에게 "아직 이것도 모르세요?" 하며 답답해한다는 아들 할아버지가 편식하는 손주에게 "옛날에는 가난해서 밥도 못 먹었다" 했더니 "그럼 빵이라도 드시지 그랬어요?" 했다는 손주 이와 같은 이야기는 어김없이 '세대 차이'라는 화제로 이어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하는 세대 갈등,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까?
육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며느리에게 “우리 때는 더 힘들었다”며 공감해 주지 않는다는 시어머니, 휴대폰 사용법을 묻는 아버지에게 “아직 이것도 모르세요?” 하며 답답해한다는 아들, 할아버지가 편식하는 손주에게 “옛날에는 가난해서 밥도 못 먹었다” 했더니 “그럼 빵이라도 드시지 그랬어요?” 했다는 손주 이야기…. 이와 같은 이야기는 어김없이 ‘세대 차이’라는 화제로 이어진다.
세대란, 생물학적 관점으로는 사람이 출생하고 자라서 또다시 자녀를 생산하기까지의 평균 기간으로, 대략 20~30년간을 표준으로 한다. 사회학적으로는 같은 시대에 살면서 공통의 의식을 갖는 비슷한 연령층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수명이 길어지고 기술과 문화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세대의 교체 시기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심지어 쌍둥이에게도 세대 차이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세대 차이는 문화와 사고방식의 차이를 넘어 갈등으로 이어지곤 한다. 2020년 4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직장인 1만 3000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세대 갈등’에 대해 조사한 결과 63.9%가 ‘직장에서 세대 차이를 느낀다’고 답했는데, 세대 차이가 업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가정은 구세대와 신세대로 이루어진 조직의 최소 단위이자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조부모, 부모, 자녀로 이어지는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도 알고 보면 세대 차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고대 이집트, 춘추전국시대, 중세 로마, 조선 시대의 각종 유물과 문헌에서도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마뜩잖아하는 내용이 발견될 만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하는 세대 갈등.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까?
"모든 세대는 자기 세대가 앞선 세대보다 더 많이 알고 다음 세대보다 더 현명하다고 믿는다."
-조지 오웰 (영국 소설가)
세대 갈등의 원인은 무엇인가?
사람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와 환경의 영향을 받아 세상에 대한 관점과 삶에 대한 가치관이 형성된다. 물론 같은 세대 안에서도 개인차는 있지만, 대체로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공통적인 특징을 갖게 마련이다. 흐르는 시간은 환경, 이념, 문화, 기술 등 다방면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그 속에서 새롭게 출현하는 세대는 이전 세대에게 익숙한 틀과 종종 충돌을 일으키곤 한다. 지금 당연한 것이 이전 세대 때는 그렇지 않았다거나, 과거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일들이 지금은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는 다른 것일 뿐,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대상이 아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세대의 생각과 행동을 틀렸다고 할 때 갈등은 싹튼다. 구세대는 기존의 방식만을 고수하며 변화를 꺼리고, 신세대는 기존의 것을 고리타분하게 여기며 무조건 배척하는 식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자녀는 부모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하고, 부모는 자녀를 ‘이해할 수 없다’며 호소하게 된다.
나이로 사람을 차별하는 태도도 세대 갈등의 원인이다. 연장자라는 이유로 “내가 해봐서 아는데” 하며 상대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뜻에 따르기를 강요하거나, 아랫사람이 이치에 맞는 말을 하면 논리적으로 답하기보다는 “어디서 말대답이야?” 하고 버릇없게 보는 행위는 상대방에게 불만을 품게 하고 입을 닫게 만든다. 반대로, 상대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무시하며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하거나 대화에서 배제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마을의 공터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어른들의 쉼터였다. 친척, 이웃과의 교류도 활발해 다른 연령대와 어울릴 기회가 잦았다. 그러나 현대사회에는 다양한 세대가 함께할 만한 장소나 더불어 시간을 보낼 기회가 별로 없다. 세대 간 접점 부족은 서로에 대한 고정관념을 야기하고, 다른 세대를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안긴다. 이러한 사회적인 흐름 역시 세대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아랫세대를 대할 땐 열린 마음으로
같은 길이라도 자주 다녀봐서 능숙하게 목적지를 찾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초행길이라 헤매는 사람이 있다. 마찬가지로, 같은 상황이라도 한참을 앞서간 기성세대와 뒤따라가는 다음 세대가 인식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윗세대의 눈에는 아랫세대의 행동이 철없고 어설퍼 성에 안 차기도 한다.
그렇다고 경험 부족으로 미숙한 사람에게 실수와 실패를 탓하는 건 마치 초행길을 가는 사람에게 길도 제대로 못 찾느냐고 비난하는 것과 같다. 그 길에 익숙한 사람 역시 처음에는 헤맸을 테고, 이 길 저 길 다니며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적당한 길을 찾았을 것이다. 게다가 길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숨겨진 또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 과거에는 넓었던 길이 공사로 인해 좁아지기도 하고 아예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니 앞서간 사람은 뒤서는 사람에게 자신이 제시하는 길이 옳으니 그대로 따라오라고 강요하기보다는 응원과 격려를 보내야 한다. 정 도와주고 싶다면 애정 어린 마음이 함께 전달되어야 한다. 명령, 지시의 형태가 아닌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며 제안하고 동의를 구하는 식이다. 도움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내용도 중요하지만 방식에도 신경 써야 한다.
나이가 들고 경험치가 쌓이면 그렇지 못한 사람을 대할 때 ‘내가 너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그런 생각은 자칫 아랫사람을 하대하게 만든다. 자신을 하대하는 이를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상대가 윗사람이고 자신은 불리한 위치에 있기에 마지못해 따를 수는 있어도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는 어렵다.
새로운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내 생각이 다 맞는 건 아니다’라는 열린 마음과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경험과 지식은 부족해도 오히려 그러한 점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상황은 얼마든지 있다. 아랫사람을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로 대하느냐, 배울 점이 있는 인격체로 대하느냐에 따라 관계의 질이 달라진다. 또한, 그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나 때는 말이야” 하고 과거 자신의 상황에 비추어 판단하는 대신 귀를 열고 공감해 주어야 한다. 시대가 다르고 세상이 변한 만큼 직면하게 되는 고민과 어려움은 다르고, 윗사람이 보기에는 별거 아닌 일도 당사자에게는 심각하고 큰 문제일 수 있다.
윗세대를 대할 땐 예의를 지켜 공손하게
한국속담에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기는 쉬워도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는 뜻이다. 사랑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만큼 세대 갈등을 개선함에 있어서도 윗세대의 역할이 중요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윗세대에만 떠넘길 수는 없다. 소통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주 다녀봐서 잘 아는 길을, 초행길이라 긴가민가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는 사람이 있으면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에 바로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그런 마음에서 하는 이전 세대의 말이 다음 세대에는 성가실 수 있다. 그러나 어릴 땐 뻔한 잔소리로 들렸던 어른들의 말씀이 크니까 이해되더라는 말을 성인들은 흔히 한다. 과거에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거나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일들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와닿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전 세대와의 소통으로 얻는 지혜와 지식은 간접 경험의 폭을 넓혀주고 삶의 면역력을 키워준다. 설령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이 세련되지 못해도 그 의도를 이해할 필요는 있다.
생각과 사고방식이 수긍되지 않아 구세대와 대화하기가 어렵더라도 ‘말이 안 통해’라며 벽을 세우는 대신, 살아온 시대가 달라 어쩔 수 없이 다르게 형성된 관념이 있음을 인정하자. 생각과 의견을 얘기하는 건 좋지만 손윗사람에게 세대 차이 운운하며 반박하면 자칫 무례해 보이기 쉬우니 공손한 말로 설득하려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어도 어른을 공경하고 예의를 갖추는 인간적인 도리까지 케케묵은 구시대적 문화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인격과 연륜이 반드시 살아온 세월과 비례하는 건 아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도 여전히 사람은 부족하고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며, 때때로 아랫사람의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런 경우 실망하기보다는 그에 상응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면 어떨까.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형편이 있고 장단점에 개인차가 있다. ‘어른이라면 이렇게 해야 해’ 하며 자신이 만든 잣대로 비판하는 대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그 속에서도 배울 점을 찾게 될지 모른다.
사람은 태어나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 마지막에는 늙어 죽는다. 평생 한 세대에만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과거의 신세대가 지금은 구세대가 되고, 지금의 신세대도 언젠가는 구세대가 된다. 자녀가 걸어가는 길은 부모가 지나온 길이요, 부모가 걸어가는 길은 자녀가 걸어갈 길인 것이다. 그렇기에 서로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시기는 달라도 서로가 지나온 세대를 반드시 경험하기 때문이다.
세대 차이는 더러 오해와 불통을 불러오는 요인이 되지만, 서로의 강점을 인정하고 배우며 상호 보완한다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발전과 성장의 훌륭한 디딤돌이 된다. 아파트 윗집과 아랫집이 같은 동네, 같은 건물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처럼, 나이 든 세대와 젊은 세대도 결국은 같은 시대, 같은 세상을 살아간다. 아랫사람에게는 열린 마음으로, 윗사람에게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할 때, 여러 세대가 더불어 살아가는 가정과 사회는 대립이 아닌 공존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