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고, 주변 환경이 쾌적하길 원하면 청소를 해야 한다. 또, 얻고 싶은 지식이 있으면 책을 보거나 인터넷을 검색해 공부해야 한다. 그렇다면 행복해지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자신의 감정을 보살피고 다루는 것이다.
감정은 이성과 대비되는 격으로, 어떠한 상황이나 대상에 대해 느끼는 ‘기분’이나 ‘마음 상태’를 의미한다. 사람은 아침에 눈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심지어 잠자는 동안 꿈속에서도 감정을 경험한다. 맑다가 흐려지고 폭풍우가 쏟아지다 햇빛이 비치는 날씨처럼, 감정은 평온하다 우울해지고 화가 치밀다가도 금세 누그러지는 등 시시때때로 변한다.
마음에 차오르는 감정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얼싸안고, 기쁨과 설렘을 느끼는 순간 스마트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는다. 좋아하는 일은 밤을 새워도 즐겁게 한다. 시험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이 든다면 준비를 더 철저히 하고, 타인에게 미안함을 느낌으로써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이처럼 모든 감정은 저마다 고유한 목적과 의미가 있다. 유쾌하지 않은 감정이라도 불필요하지 않다. 다만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지 못할 때는 행복과 점점 멀어지게 된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마음의 바다에서 키를 잡은 선장이 되어야 한다. 여러 요소에 의해 자연적으로 조성되는 날씨처럼, 감정도 여러 요소에 의해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현상이므로 옳다 그르다 판단할 대상이 아니다. “이런 말을 들었는데, 누구라도 이런 말 들으면 서운하겠죠?”, “이런 일로 기분 나빠 하면 속 좁은 건가요?” 하고 타인에게 허락을 구할 일도 아니다. 타인이 공감하거나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느낀 감정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기상에 따라 유연하게 배를 조종하는 선장과 같이, 감정을 느끼고 적절한 방법으로 조절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감정을 유발하는 요소 중에는 어떠한 상황이나 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흔히 감정을 말할 때 ‘누구 때문에’, ‘상황 때문에’라는 전제를 들곤 한다. 이는 자기 내면의 감정을 외부에서 조종하도록 키를 맡기는 셈이다. 설령 외부에서 원인 제공을 했다 하더라도 감정은 나의 것이다. 외부에서 감정을 만든 게 아니라 외부에서 온 자극이 일련의 사고 과정을 통해 내면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을 외부 탓으로 돌리면 감정의 주인이라 할 수 없다. ‘어떤 상황에 대해 혹은 어떤 사람의 행동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하니까 이런 감정을 느낀다’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살다 보면 때론 걱정하고 화내고 실망할 수밖에 없는 일들도 겪게 된다. 중요한 건 자신의 기분과 감정에 대한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아는 것이다. 기분이 좋든 나쁘든, 감정은 내 안에서 비롯된다. 그렇게 감정의 주인이 되었을 때 부정적인 감정을 보살피거나 다스릴 힘이 생기고, 긍정적인 감정을 오래 머물도록 붙잡아 둘 수 있다.
감정은 누구도 통제하지 못한다. 문제는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지, 감정 그 자체가 아니다. 감정 조절에 서툰 아이들은 “화가 나니까 화를 내지”라며 분노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과 표출하는 것을 동일시한다. 그러나 그 둘은 엄연히 다르다. 날씨를 바꾸지는 못해도 어떤 날씨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배울 수 있듯이, 감정 역시 통제할 순 없지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선택하는 일은 가능하다.
긍정적인 감정은 표출하더라도 문제 되는 경우가 크게 없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아무 때나 표출했다가는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중요한 일이 어긋나는 등 자신의 삶에 불행을 초래하고 만다. 겉으로 표출한다고 해서 감정이 풀리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감정을 무조건 무시하고 억누르면 어느 순간 폭발하게 된다. 억눌린 감정이 폭발하면 그 피해는 주로 가까운 가족이 고스란히 입는다.
부정적인 감정을 잠재우려면 먼저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막연히 ‘짜증 나’, ‘기분 나빠’ 하는 대신 길을 찾아가듯 ‘왜 화가 나지?’라는 질문부터 시작해 감정의 원인을 탐색해 보자. 이때 감정과 생각을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 ‘나를 무시한다는 느낌’, ‘불공평하다는 느낌’은 생각이지, 감정이 아니다.
감정은 상황과 상대방의 언행을 해석하는 자신만의 생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하는 이 생각이 사실인가, 나의 해석인가. 사실이라면 그 증거가 있는가’를 따져봐야 한다. 같은 자극이라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따라 유발되는 감정이 달라진다.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감정으로 이어지고,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감정과 행동 사이에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힘을 기르면 충동을 자제하고, 불행을 초래하는 행동을 거를 수 있다.
늘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늘 불행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 행복해 보인다고 항상 좋은 일만 있지는 않을 것이고, 불행해 보인다고 늘 안 좋은 일만 있지도 않을 것이다. 같은 상황이라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달라서 그로 인해 다른 감정을 경험한다. 그리고 상황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은 자주 경험하는 쪽으로 길이 난다.
다시 말해, 뇌는 좋은 감정보다 익숙한 감정을 선택한다.1) 외부 자극에 계속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그것은 그렇게 반응하도록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불쾌한 감정이라 하더라도 그것에 익숙해지면 뇌는 그 감정을 선호하므로, 행복하면 오히려 낯설고 불편할 수 있다. 뇌는 습관이 된 감정을 강화하기 때문에 기분 좋은 감정을 자주 떠올리면서 즐거운 마음을 유지하면 외부의 자극도 더욱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심리학자들은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라고 말한다. 강도가 100인 기쁨을 어쩌다 한 번 느끼는 사람보다 강도가 10인 기쁨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뜻이다. 시험에 합격하거나, 선물을 받거나, 임금이 오르는 등 기쁨과 만족의 감정을 강하게 경험하는 일은 일상에서 자주 접하기 어려우므로, 이러한 일로만 행복을 느낀다면 삶은 결과적으로 불행해진다. 대신 소소한 긍정적인 감정을 자주 느끼면 행복한 정서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 스트레스 상황에 맞닥뜨려도 부정적인 감정에서 빨리 벗어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이 감정 습관이 자신을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든다. 내키지 않은 일을 해야 하거나 피하고 싶은 대상을 마주할 때 이왕이면 좋은 감정을 선택하자. 그런 선택들이 쌓이고 쌓이면 행복으로 가는 감정 습관이 형성된다.
어떤 집에 사는지, 어떤 자동차를 타는지가 아닌, 자신의 감정을 얼마나 잘 조절할 수 있는지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부족한 것 하나 없는 풍족한 생활을 누리면서도 늘 기분이 나쁜 채로 살아간다면 무슨 소용 있을까. 세상은 감정에 따라 달리 보이는 법이다. 우울하면 세상이 끝난 듯 보이고, 화가 나면 세상이 엉망으로 보인다. 또, 사랑하면 세상이 온통 핑크빛으로 보인다. 따라서 좋은 감정 습관을 유지하는 것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복과 불행을 나누는 요인이 내면에 있어 자신이 조절할 수 있다는 건 참으로 다행 아닐까. 외부의 상황이나 주위 사람이 바뀔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스스로 행복을 선택할 수 있으니. ‘물은 셀프서비스’라고 써 붙여 놓은 식당에 가면 “손님, 물 나왔습니다” 하고 종업원이 물을 갖다주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직접 떠서 마셔야 한다. 이 세상에 던져진 우리 역시 “손님, 행복 나왔습니다” 하고 누군가 행복을 가져다주기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직접 구해서 누려야 한다. 행복은 어디까지나 ‘셀프서비스’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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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용철, 《감정은 습관이다》, 추수밭, 2013, 15-21쪽.
감정은 이성과 대비되는 격으로, 어떠한 상황이나 대상에 대해 느끼는 ‘기분’이나 ‘마음 상태’를 의미한다. 사람은 아침에 눈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심지어 잠자는 동안 꿈속에서도 감정을 경험한다. 맑다가 흐려지고 폭풍우가 쏟아지다 햇빛이 비치는 날씨처럼, 감정은 평온하다 우울해지고 화가 치밀다가도 금세 누그러지는 등 시시때때로 변한다.
마음에 차오르는 감정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얼싸안고, 기쁨과 설렘을 느끼는 순간 스마트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는다. 좋아하는 일은 밤을 새워도 즐겁게 한다. 시험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이 든다면 준비를 더 철저히 하고, 타인에게 미안함을 느낌으로써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이처럼 모든 감정은 저마다 고유한 목적과 의미가 있다. 유쾌하지 않은 감정이라도 불필요하지 않다. 다만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지 못할 때는 행복과 점점 멀어지게 된다.
감정의 주인은 바로 자신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마음의 바다에서 키를 잡은 선장이 되어야 한다. 여러 요소에 의해 자연적으로 조성되는 날씨처럼, 감정도 여러 요소에 의해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현상이므로 옳다 그르다 판단할 대상이 아니다. “이런 말을 들었는데, 누구라도 이런 말 들으면 서운하겠죠?”, “이런 일로 기분 나빠 하면 속 좁은 건가요?” 하고 타인에게 허락을 구할 일도 아니다. 타인이 공감하거나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느낀 감정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기상에 따라 유연하게 배를 조종하는 선장과 같이, 감정을 느끼고 적절한 방법으로 조절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감정을 유발하는 요소 중에는 어떠한 상황이나 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흔히 감정을 말할 때 ‘누구 때문에’, ‘상황 때문에’라는 전제를 들곤 한다. 이는 자기 내면의 감정을 외부에서 조종하도록 키를 맡기는 셈이다. 설령 외부에서 원인 제공을 했다 하더라도 감정은 나의 것이다. 외부에서 감정을 만든 게 아니라 외부에서 온 자극이 일련의 사고 과정을 통해 내면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을 외부 탓으로 돌리면 감정의 주인이라 할 수 없다. ‘어떤 상황에 대해 혹은 어떤 사람의 행동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하니까 이런 감정을 느낀다’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살다 보면 때론 걱정하고 화내고 실망할 수밖에 없는 일들도 겪게 된다. 중요한 건 자신의 기분과 감정에 대한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아는 것이다. 기분이 좋든 나쁘든, 감정은 내 안에서 비롯된다. 그렇게 감정의 주인이 되었을 때 부정적인 감정을 보살피거나 다스릴 힘이 생기고, 긍정적인 감정을 오래 머물도록 붙잡아 둘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 자세히 들여다보기
감정은 누구도 통제하지 못한다. 문제는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지, 감정 그 자체가 아니다. 감정 조절에 서툰 아이들은 “화가 나니까 화를 내지”라며 분노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과 표출하는 것을 동일시한다. 그러나 그 둘은 엄연히 다르다. 날씨를 바꾸지는 못해도 어떤 날씨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배울 수 있듯이, 감정 역시 통제할 순 없지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선택하는 일은 가능하다.
긍정적인 감정은 표출하더라도 문제 되는 경우가 크게 없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아무 때나 표출했다가는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중요한 일이 어긋나는 등 자신의 삶에 불행을 초래하고 만다. 겉으로 표출한다고 해서 감정이 풀리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감정을 무조건 무시하고 억누르면 어느 순간 폭발하게 된다. 억눌린 감정이 폭발하면 그 피해는 주로 가까운 가족이 고스란히 입는다.
부정적인 감정을 잠재우려면 먼저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막연히 ‘짜증 나’, ‘기분 나빠’ 하는 대신 길을 찾아가듯 ‘왜 화가 나지?’라는 질문부터 시작해 감정의 원인을 탐색해 보자. 이때 감정과 생각을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 ‘나를 무시한다는 느낌’, ‘불공평하다는 느낌’은 생각이지, 감정이 아니다.
감정은 상황과 상대방의 언행을 해석하는 자신만의 생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하는 이 생각이 사실인가, 나의 해석인가. 사실이라면 그 증거가 있는가’를 따져봐야 한다. 같은 자극이라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따라 유발되는 감정이 달라진다.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감정으로 이어지고,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감정과 행동 사이에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힘을 기르면 충동을 자제하고, 불행을 초래하는 행동을 거를 수 있다.
행복도, 불행도 습관이 된다
늘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늘 불행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 행복해 보인다고 항상 좋은 일만 있지는 않을 것이고, 불행해 보인다고 늘 안 좋은 일만 있지도 않을 것이다. 같은 상황이라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달라서 그로 인해 다른 감정을 경험한다. 그리고 상황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은 자주 경험하는 쪽으로 길이 난다.
다시 말해, 뇌는 좋은 감정보다 익숙한 감정을 선택한다.1) 외부 자극에 계속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그것은 그렇게 반응하도록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불쾌한 감정이라 하더라도 그것에 익숙해지면 뇌는 그 감정을 선호하므로, 행복하면 오히려 낯설고 불편할 수 있다. 뇌는 습관이 된 감정을 강화하기 때문에 기분 좋은 감정을 자주 떠올리면서 즐거운 마음을 유지하면 외부의 자극도 더욱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심리학자들은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라고 말한다. 강도가 100인 기쁨을 어쩌다 한 번 느끼는 사람보다 강도가 10인 기쁨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뜻이다. 시험에 합격하거나, 선물을 받거나, 임금이 오르는 등 기쁨과 만족의 감정을 강하게 경험하는 일은 일상에서 자주 접하기 어려우므로, 이러한 일로만 행복을 느낀다면 삶은 결과적으로 불행해진다. 대신 소소한 긍정적인 감정을 자주 느끼면 행복한 정서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 스트레스 상황에 맞닥뜨려도 부정적인 감정에서 빨리 벗어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이 감정 습관이 자신을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든다. 내키지 않은 일을 해야 하거나 피하고 싶은 대상을 마주할 때 이왕이면 좋은 감정을 선택하자. 그런 선택들이 쌓이고 쌓이면 행복으로 가는 감정 습관이 형성된다.
어떤 집에 사는지, 어떤 자동차를 타는지가 아닌, 자신의 감정을 얼마나 잘 조절할 수 있는지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부족한 것 하나 없는 풍족한 생활을 누리면서도 늘 기분이 나쁜 채로 살아간다면 무슨 소용 있을까. 세상은 감정에 따라 달리 보이는 법이다. 우울하면 세상이 끝난 듯 보이고, 화가 나면 세상이 엉망으로 보인다. 또, 사랑하면 세상이 온통 핑크빛으로 보인다. 따라서 좋은 감정 습관을 유지하는 것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복과 불행을 나누는 요인이 내면에 있어 자신이 조절할 수 있다는 건 참으로 다행 아닐까. 외부의 상황이나 주위 사람이 바뀔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스스로 행복을 선택할 수 있으니. ‘물은 셀프서비스’라고 써 붙여 놓은 식당에 가면 “손님, 물 나왔습니다” 하고 종업원이 물을 갖다주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직접 떠서 마셔야 한다. 이 세상에 던져진 우리 역시 “손님, 행복 나왔습니다” 하고 누군가 행복을 가져다주기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직접 구해서 누려야 한다. 행복은 어디까지나 ‘셀프서비스’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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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용철, 《감정은 습관이다》, 추수밭, 2013, 15-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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