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하고 포근한 '안전기지', 가정

사람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심리적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 신체가 위험에 노출되지 않더라도, 의식주가 충분히 해결되더라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으면 안전하다고 느끼기 어렵다.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안전감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서로의 심신을 보살피고 돌보는 관계인 가족은 모두가 외면해도 받아주는 곳,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곳이다. 곧 서로에게 안전기지가 되어준다는 말이다.

유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항상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가족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가족이라는 안락하고 포근한 안도감은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 학교와 직장 등에서 활동하는 과정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집에 돌아와 가족과 함께 “잘했어”, “수고했어”, “사랑해”라는 대화로 사랑과 위로를 나눌 때 소진된 에너지가 충전되며 또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힘이 생긴다.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바람 불면 기둥이 휘청거리며, 벽은 균열로 금이 간 데다, 창과 문은 뒤틀려 여닫기 어려운 집.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이런 집에서 살아야 한다면 하루하루가 불안과 공포의 연속일 것이다. 안전한 환경에서 보호받기를 바라는 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속한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즐겁지 않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도 마음껏 웃을 수 없다.


흔히 ‘안전’ 하면 물리적으로 위험 요소가 없는 환경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람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신체의 안전만큼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심리적 안전이다. 신체가 위험에 노출되지 않더라도, 의식주가 충분히 해결되더라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으면 안전하다고 느끼기 어렵다. 상처받을 염려 없이 전적으로 믿고 자신의 마음을 무장 해제 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대상을 심리학에서는 ‘안전기지(Secure Base)’라 한다.



애착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안전기지


영국의 심리분석가인 존 볼비(John Bowlby)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이 보육원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아픈 데를 치료받는데도 신체 발달과 정서적 안정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 원인이 양육자로부터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해서라고 분석한 그는 ‘애착 이론’을 주창했다. 주 양육자와 형성하는 애착이 아이의 생존 및 신체, 심리, 사회적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다. 그가 말하는 애착이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깊고 지속적인 정서적 유대’이자, ‘당장 옆에 있지 않아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안전기지’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안전기지는 성장기 아이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안전기지가 기능하지 않으면 불안과 우울감,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위축된 심리로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외부의 자극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쉽다. 안전기지를 대신해 물건에 집착하거나 건강하지 않은 습관에 중독되기도 한다. 유아기의 애착 경험은 성인기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유년 시절 부모와의 애착이 불안정했더라도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대상을 만나 서로 안전기지가 되어주면 안정적인 애착 유형으로 바뀐다.

안전기지는 모든 인지 활동의 토대가 된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 행동을 잘 다루고 조절하려면 정서적인 안정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대인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이나 실패에 대응하는 능력도 조건 없이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존재가 있을 때 성숙해진다. 안전기지가 확보되면 문제가 되는 증상과 행동이 자연스레 해결되므로, 문제 행동을 하는 사람을 교정하기보다는 안전기지가 되어주는 편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신뢰의 대상과 좋은 감정을 나누는 경험이 반복되어 애착이 안정적으로 형성되면 안전기지가 내면화된다. 후로는 안전기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을 받으므로 실제로 그 대상에게 의지할 일은 줄어든다. 건강한 자립이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이것이 안전기지의 궁극적인 역할이다.



서로의 안전기지가 되어주는 가족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안전감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집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기능은 가족 구성원들이 심리적 안전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가족은 단순히 한 공간에 거주하는 사이가 아니라 서로의 심신을 보살피고 돌보는 관계다. 모두가 외면해도 받아주는 곳,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곳, 안전기지가 되어주는 것이 가족이 서로에게 해주어야 하는 가장 중대한 임무다.

자녀의 안정과 불안은 가정 분위기, 특히 부모의 심리 상태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어린아이는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도 엄마나 아빠가 사라지면 장난감을 내팽개치고 불안감에 눈물을 터뜨린다. 그러다 부모가 돌아오면 다시 장난감에 눈을 돌린다. 아이에게 부모는 절대적 안정을 주는 존재이고,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 다른 데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청소년의 가출 원인 1위는 가정불화이다. 부모로부터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면 그것을 집이 아닌 외부에서 찾으려 하게 된다.

영아부터 청소년기까지는 대개 부모가 안전기지 역할을 하고, 성인기가 되어 결혼하면 안전기지는 배우자로 바뀐다. 부부는 부모가 아이에게 미치는 것만큼이나 큰 영향을 주고받는다. 배우자와 안정된 애착으로 안전기지가 형성될지는 부부간의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 안전하다고 느껴지느냐에 달렸다. 애착은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부부 중 한 사람이 바뀌면 배우자도 개선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 부부가 안정된 애착 관계로 안전기지가 되어주면 갈등 상황으로 가는 경우도 줄어든다.

생애 주기에 따라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유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항상 보살핌이 필요하다. 흔히 의지하는 것을 나약한 행동으로 여겨 남에게 의지하지 않아야 자립심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남에게 잘 의지할수록 자립심이 강해진다.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 언제든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믿음이 정신을 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가족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가족이라는 안락하고 포근한 안전기지에서 나오는 안도감은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안전기지가 안전하게 유지되려면?


안전기지의 역할을 잘 해내는 가정은 지배 관계에 놓이지 않고 가족이 평화롭게 공존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안감을 유발하는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불안은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결핍에서 비롯되는데, 이는 물리적인 강압은 물론 언어·감정적 박대를 받을 때 생겨난다.

안전기지라면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스스럼없이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그로 인해 비난이나 핀잔이 돌아올지 모른다는 걱정이 필요 없는 곳이어야 한다. 가족 간에 의견 불일치와 차이를 경험하는 일은 서로의 욕구가 다름을 이해하는 기회다. 분쟁이 날까 봐 자기 생각과 가치관을 말하지 못하는 환경이라거나 상대방의 말에 동의만 해야 한다면 일시적으로는 소통에 도움이 될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이롭지 않다. 각자의 가치관을 유지하되 누군가 다른 의견을 내더라도 수용적인 태도로 공감해야 하는 이유이다.

가족이 청할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일도 안도감을 주는 행위다. 도움은 상대방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주어야 한다. 사람은 상대방의 반응을 보고 애정의 정도를 판단하므로, 가족을 대하는 태도와 반응에는 일관성이 따라야 한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반응이 달라져 버리면 상대방은 두려움과 불신을 갖게 되어 안전기지의 기능이 떨어지고 만다.

안전기지는 아프고 힘든 일을 겪거나 잘못과 실수로 비판받을 여지가 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가족이 고민을 털어놓으며 걱정거리를 말할 때는 잘 들어주고, 설령 부족한 면을 보이거나 실망을 주더라도 따듯하게 감싸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행동을 용납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행동의 결과로 존재를 부정해서는 안 되며, 어떤 행동을 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음을 알아주라는 뜻이다. 가족에게 언제나 지지받고 있다는 믿음이 안전기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문제는 가족이 주는 안전감 때문에 다 이해해 줄 거라 믿고 함부로 대하는 것이다. 사람은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에서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곤 하는데, 그러한 솔직함이 때로는 상대에게 부담과 고통을 준다. 따라서 안전기지가 안전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으로 꾸준히 자신의 내면을 가꾸어나가야 한다. 웃는 표정은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가장 손쉬우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므로, 언제나 미소 띤 얼굴을 보여주는 것도 잊지 말자.



가정이 안전기지라면 세상은 그 반대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 학교와 직장 등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 대인관계를 맺고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렇게 바깥 활동으로 소진된 에너지는 집에 돌아와 애착 대상이자 안전기지인 가족을 통해 충전된다.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었어?”, “뭐 먹고 싶어?”, “잘했어”, “수고했어”, “사랑해”라는 대화로 가족과 함께 사랑과 위로를 나누며 휴식할 때, 또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힘이 생긴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가 불안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부부가 서로에게, 장성한 자녀가 연로한 부모에게 안전하다고 느끼게 하는 건 사랑을 확인시켜주는 일과 같다. 집이 따뜻하려면 연료를 태워야 하듯, 따뜻한 사랑 역시 베푸는 사람의 수고와 헌신이 요구된다. 그러한 가족의 사랑으로 세워진 안전기지는 불안이 침투하거나 행복이 새어나갈 염려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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